배우의 지나친 열정에 주제 '흐릿'

배우가 땀을 뻘뻘 흘린다. 그러나 땀의 대가는 그리 확실치 않아 보인다. 관객은 조용한데, 배우 혼자 숨이 찬다. 객석에 앉은 심정이 극중의 다친 병사처럼 어딘가 불편하다. 왜일까?

작품은 대장정에 나섰던 중국 병사의 고백 형식으로 꾸며져 있다.

병사는 국민당과 벌어진 전투에서 부상을 당하고, 동료들에게 버림받은 뒤 동굴로 숨어든다. 이곳에서 사나운 암호랑이 한 마리와 대면하게 된 병사는 서로 어려운 처지를 도와가며 가족처럼 지내게 된다.

병사를 통해 인간의 습성에 길들여진 호랑이는 원래의 생식(生食) 습관 대신 익힌 고기를 찾게 될 만큼 야성을 잃는다. 자신이 속한 세계로 되돌아가려 하는 병사를 따라 호랑이는 민가로 내려온 뒤 인간사와 새롭게 얽혀든다.

배우 권철의 모노드라마 <호랑이 아줌마>가 무대에 올랐다. 서울 대학로 두레홀1관에서 상연중인 이 공연은 이태리 출신의 노벨문학상 수상자 다리오 포의 원작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는 부제와는 달리, 그러나 이 1인극의 색깔은 매우 애매하다. 성인용이라 하기에는 주제의 핵심이 흐릿하고, 12세 이상 관람가로 보기에는 불필요한 Y담의 낌새가 사족으로 끼어든다.

배우 권철은 지극히 많은 능력을 가진 연기자임에 틀림없지만, 그 때문에 자충수에 빠진 듯하다. 전반적으로 스토리 전개법이나 표현방식이 어수선하다. 다소 과장된 율동과 대사, 굳이 필요치 않은 표준어와 사투리의 병용, 정극과 코미디 사이를 어정쩡하게 오가는 스토리 풀이법이 극의 어색함을 부른다.

병사가 고백하는 모양새만 해도 일관된 것이 없다. 때로는 방송 다큐멘터리 나레이션처럼 진지했다가, 어느 때엔 발성도 명확치 않은 ‘약장수’ 스타일로 바뀐다. 대사 또한 중언부언의 나른함을 준다. 병사가 처한 상황을 일일이 먼저 해설한 뒤, 방금 말한 내용을 다시 연기로 재연해주는 식이다.

마치 배우로서 가진 모든 끼를 무대에 한꺼번에 쏟아내려는 듯한 절제되지 못한 열정이 고스란히 객석의 부담으로 넘겨진다.

공연 내내 배우는 단 한시도 쉴 틈 없이 열연을 벌이지만, 관객과의 의사소통에는 역효과인 듯하다. 너무 많은 방식, 너무 많은 장기를 욕심 낸 결과로 보인다. ‘한 번에 한 가지!’라는 가장 단순하고 중요한 원칙이 깨졌을 때 결과는 어떻게 될까를 이번 무대는 재확인시켜준다.

하지만 연기에 대한 정열과 탄력있는 음향 효과, 스모크를 비롯한 특수효과 등 무대 곳곳에 섬세하게 쏟은 정성은 분명 높이 살 만하다. 개인적으로는 배우에게 정극에의 집중을 권하고 싶다. 극중 눈물과 절규의 연기, 정통 방식의 호소력 있는 연기가 일품이다. 차라리 고전적인 진검승부에 승산이 있어 보인다.

<호랑이 아줌마>는 모노드라마가 요구하는 배우로서의 부담과 결단이 얼마나 간단하지 않은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공연은 10월 20일까지다.

<저작권자 ⓒ 한국아이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정영주 객원기자 pinplus@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