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우리나라 야생화들은 소박할 뿐 화려하지 않다고 한다. 고향의 꽃이어서 친근감을 느끼지만 그래도 화려함에선 서양꽃을 당하지 못한다는 말을 곁들인다.

하지만 이러한 선입견을 여지없이 무너뜨리는 우리 꽃이 있으니 바로 붓꽃이다. 꽃이 주먹만큼 큼직하고, 화려한 무늬의 보랏빛 꽃잎을 가진 붓꽃을 보노라면 해맑은 청초함에 눈이 부시다.

정원에 심어진 아름답고 큼지막한 붓꽃을 두고 사람들은 어느 외국에서 건너왔을 수입꽃이려니 생각할 정도다. 화단에 심은 여러 원예종 붓꽃류(Iris)들은 실제로는 일본이나 독일을 국적으로 하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 땅에도 개량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면서도 그 아름다움이 외국종에 뒤지지 않는 우리네 붓꽃이 잘 자라고 있다. 토종 붓꽃은 마을 뒤로 이어진 야트막한 산길이나 작은 도로 옆에서 먼지를 뒤집어 쓰면서도 튼튼하게 자란다.

그래서 마음만 먹으면 우리 땅 어느 곳에서든 야생의 붓꽃을 만나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다. 바로 이즈음.

붓꽃은 꽃 모양 자체가 워낙 독특한 아름다움을 주는 데다가 그 신비스런 보랏빛 꽃 색깔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다. 붓꽃은 그 함초롬한 꽃봉오리가 마치 먹물을 머금은 붓과 같다 하여 붙여진 아주 고운 우리의 이름이다.

그러나 이 꽃을 사랑하노라 말하는 이들조차도 대개 붓꽃이란 이름 대신 창포나 아이리스(Iris)라고 부르곤 한다. 붓꽃과 한집안 식구이면서 물가에서 자라는 꽃창포라고 불리는 식물도 있는데 사실 이는 단오날 머리 감는 창모와는 전혀 별개의 식물이다. 또 아이리스란 서양이름도 그렇다.

이 이름은 세계가 함께 부르는 붓꽃류를 총칭하는 속명이니 그리 부른다고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아이리스는 알아도 우리의 붓꽃 이름은 모르고 있으니 이는 뭔가 잘못된 것이 아닐까. 심지어 화투장에 그려진 붓꽃을 난초라고 부르기도 하니 말이다.

붓꽃의 서양 이름인 아이리스는 무지개란 뜻이다. 이 꽃의 꽃말도 비온 뒤에 보는 무지개처럼 ‘기쁜 소식’이며 프랑스의 나라꽃이기도 하다.

여신 주노의 예의바른 시녀 아이리스는 주피터가 집요하게 사랑을 요구하자 자신의 주인을 배반할 수 없어 무지개로 변하여 주노에 대한 신의를 지켰다는 전설을 가진 이 꽃은 그 때문인지 촉촉한 봄비가 내린 후나 혹은 이른 아침 이슬을 머금고 싱싱하게 피어 오를 때 가장 아름답다.

붓꽃은 붓꽃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풀이다. 땅속 줄기가 옆으로 뻗으며 자라 점점 커다란 포기가 둥글게 만들어진다.

봄이면 삐쭉 삐쭉 돋아나온 잎새는 난초잎을 닮은 시원한 모습으로 자라고 여름처럼 느껴지는 늦봄이 되면 그 틈에서 꽃대가 솟아나와 붓솔 같은 꽃송이를 두세 개씩 매단다. 그러다가 어느새 주먹만 한 꽃송이가 환하게 피어난다.

붓꽃의 꽃잎은 모두 여섯 장이다. 하지만 이 가운데 바깥의 3장이 진짜 꽃잎으로 보랏빛 꽃잎에 호랑이 무늬 같은 얼룩이 그려져 더욱 아름답다. 꽃잎 가운데 세 장은 수술이 변하여 꽃잎처럼 되었으니 더욱 신기하다. 열매는 익으면 벌어지는 갈색 삭과로 9월쯤 영근다.

누가 뭐래도 요즈음 붓꽃의 가장 중요한 쓰임새는 관상용이다. 식물체 자체가 워낙 튼튼하여 아무데서나 잘 자라고 적응력도 뛰어나므로 도로변 화단에 줄지어 심기 시작한 지가 이미 오래되었고, 가정집 화단에 심어도 포기를 이루어 아름답다.

이밖에 붓꽃은 뿌리줄기를 약재로도 쓴다. 생약 이름은 마린자(馬藺子)라고 하며 가을에 채취한 뿌리를 말려 쓰는데 피멍을 풀어주고 종기를 낫게 하는 효능이 있으며 지혈과 이뇨 작용도 있다고 한다.

이 땅에 피어나는 붓꽃들을 바라보며 그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면, 자신들은 이렇게 고운데 왜 사람들은 알아주지 않느냐고 외치는 아우성이 들리는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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