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길을 가노라면 산과 들이 이어지는 초입에 진분홍빛의 아름다운 꽃무리를 만나고 그 화려한 꽃마다 팔랑이는 호랑나비가 찾아드는 장관을 보게 된다.

초여름의 평화스러운 풍경에 취해 꽃에 앉아 꿀을 빠는 나비 모습을 휴대폰에 남기고 싶어 이리저리 꽃 사이를 드나들다 보면, 장자의 ‘호접몽’처럼 내가 꿈 속에서 나비가 된 것인지 나비가 꿈 속에서 내가 된 것인지 모를 정도로 환상에 사로잡혀 길고 긴 산행길을 앞에 두고도 발길을 떼지 못하고 오래 머물게 되는데, 그 꽃이 십중팔구는 엉겅퀴이다.

엉겅퀴는 깊은 산골짜기에 자라는 희귀한 식물이 아니다. 마을 뒤 야산이나 풀이 돋아난 너른 들판, 야생화 애호가들의 집 마당이나 공원에서 그리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아주 친근한 꽃이다.

꽃송이가 하도 반가워 가까이 다가가면 어김없이 굳은 가시에 손을 찔려본 아픈 추억이 오래 동안 남아 있기도 하거니와, 찔릴 것을 염려하여 범접하기를 머뭇하다가도 엉겅퀴 순을 넣어 끓인 달싹한 된장국을 다시 한번 먹고 나면 어여쁜 엉겅퀴는 이내 정겹고 반가운 우리네 들꽃으로 돌아오곤 한다.

엉겅퀴는 다 자라면 키가 0.7m에서, 높게는 1m 넘게 크는 다년생 초본이다. 줄기와 잎에는 까실한 백색의 털이 있고, 서로 어긋나게 달리는 잎새는 길쭉한 타원형에 깊은 결각이 나있고, 잎 가장자리에는 딱딱한 가시가 촘촘히 달려 스스로를 보호한다.

여름이 시작되면서 피기 시작하는 꽃송이는 작은 꽃들이 모여 지름이 3~5cm에 달하는 꽃차례를 이룬다. 이를 둘러싸고 있는 총포의 뒷쪽에는 끈끈한 점액이 묻어 있어 많은 곤충들이 모여드는 이유를 직감하게 해준다. 가을에 맺는 열매는 마치 민들레 씨앗처럼 부풀어 하얀 솜털을 달고 바람에 날아간다.

왜 엉겅퀴란 이름이 붙었을까? 작명의 비밀은 바로 약효에 있다. 이 식물은 출혈을 멈추게 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피를 엉키게 한다는 뜻에서 엉겅퀴가 되었다고 한다. 게다가 이 식물의 라틴어 학명 중 속명인 서시움(Cirsium)은 그리스어 서시온(Kirsion 또는 Cirsion)에서 유래되었는데 이 말은 정맥확장이라는 뜻을 가진다.

엉겅퀴와 유사한 외국의 식물이 정맥종(靜脈腫)이라는 혈관에 생기는 병을 치료하는 데 탁월한 효과가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 밖에도 우리나라에서는 키가 크고 가시가 있고 꽃이 붉은 특징들과 연관되어 항가시, 항가새, 황가새, 가시나물, 야홍화, 마자초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서양에도 엉겅퀴 종류가 있는데 이에 얽힌 이야기가 전해져온다. 옛날에 외딴 마을에 사는 한 소녀가 우유를 짜서 항아리에 담아 시장에 팔러가면서 번 돈으로 식구들에게 옷 등을 선물할 꿈을 꾸며 걷다가 그만 엉겅퀴 가시에 찔리고 말았다. 놀라서 이고 있던 항아리가 떨어져 깨지고 우유도 모두 쏟아졌다.

소녀는 너무 슬픈 나머지 쓰러진 후 목숨까지 잃고 말았으며 소로 환생해 원망스러운 엉겅퀴를 모두 뜯어먹었다는 이야기이다. 지금도 소들은 가시가 많은 엉겅퀴를 잘 먹는다나.

엉겅퀴 중에는 간혹 잎에 흰무늬가 있는 변이들이 있는데 바로 그때 엎지른 우유의 흔적이 남은 것이라고도 전해진다. 이 때문인지 엉겅퀴의 꽃말은 소녀의 한(恨), 위급, 경계라고도 한다.

집에서 두고 보려고 뜰에 심기도 하고, 키를 키워 꽃꽂이를 위한 절화로 기른다고도 한다. 한방에서는 엉겅퀴의 생약명을 ‘대계’라 하여 오래 전부터 여러 증상에 약재로 사용해왔다.

어린 잎은 나물이나 국거리로 식용하고 연한 줄기는 껍질을 벗겨 된장이나 고추장에 박아 두었다가 먹기도 한다. 잎을 찹쌀가루에 튀겨 먹으면 가시까지 바삭바삭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연자줏빛 꽃송이를 매어 단 엉겅퀴가 무리를 지어 피고 벌과 나비가 찾아 드는 우리의 여름 들녘은 참으로 꿈 속의 그림인 양 싱그럽고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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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g.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