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 잡초라 하기엔 너무 청아한 자태

인식에 따라 가치가 변한다. 때로는 가치가 변하여 인식이 바뀌는 것이 더 적합한 경우도 있다.

실체는 언제나 그대로이지만 새롭게 인식되면서 가치도 의미도 모두 바뀌곤 하는 것이다. 세상사가 모두 그러하듯 이 이치는 식물의 세상에도 적용된다. 질경이에게도 그러하다.

정말 잡초처럼, 아니 실제로 잡초로 살아온 식물이 질경이가 아닌가 싶다. 따지고 들어가 보면 이러저러하게 질경이를 이용했다는 기록이 속속 나오곤 하는데도 사람들은 길에 지천인 질경이를 눈여겨보지 않았다. 지금도 그 가치를 새롭게 인식하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여전히 잡초에 불과하다.

질경이는 질경이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풀이다. 이 집안에는 털질경이나 창질경이 같은 식물이 있기는 하지만 보기가 그리 흔하지는 않으니 전문적으로 식물공부를 하는 이가 아니라면 특별히 관심을 둘 필요는 별로 없다.

나란히맥을 한 달걀 모양의 잎은 아랫부분이 긴 잎자루까지 넓게 흘러 서로 감싸 안으며 뿌리 근처에 둥글게 모여 방석처럼 퍼져 달린다. 밟아도 밟아도 견딜 수 있도록.

꽃은 6월부터 피기 시작하여 여름 내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낸다. 흰색의 아주 자잘한 꽃들이 둥근 막대기처럼 모여 달린다. 수술이 길게 나온 것을 볼 수 있다. 꽃이 누렇게 지면 그 자리에 열매가 달린다.

익은 열매는 옆으로 뚜껑이 열리듯 벌어져 그 유명한 질경이의 씨앗 차전자(車前子)가 6~8개 정도 나온다. 검은색이다.

질경이의 생약 이름은 바로 이 씨앗 이름이다. 말 그대로 수레바퀴 앞에서도 살 수 있는 씨앗 혹은 식물이다. 자라는 곳이 풀 속이 아니라 길가, 논둑, 들판, 마당이나 숲 가장자리의 길이다. 질경이가 이런 곳에 살게 된 것은 나름대로의 선택과 적응을 해온 결과이다.

안락한 숲에서 길로 나온 것이다. 길은 여러 가지 위험 요소가 많고, 땅도 딱딱하고 척박하지만, 대신 경쟁자가 없어 햇볕과 땅을 충분히 차지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물론 이러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질경이는 적절히 변신했다. 사람들의 발자국에 견딜 수 있도록 스스로 잎은 땅바닥에 납작하게 퍼져 있고 줄기와 더불어 질기고 유연하여 꺾이지 않으면서 그대로 누워 있을 수 있다. 씨앗은 작지만 납작하여 아무리 밟혀도 찌그러지지 않고 바닥에 잘 퍼진다.

무엇보다도 땅 속의 습기가 전달되면 끈적거리게 되어 사람들의 신발이나 차의 타이어 사이에 잘 달라붙어 멀리멀리 퍼져나가게 된다.

질경이의 이런 특성을 요즈음 사람들은 다이어트식품으로 이용한다. 주변의 수분을 많이 흡수하여 조금만 먹어도 포만감을 준다는 것이며 또한 여기에 식이섬유를 많이 함유하고 있다는 소문이 퍼졌기 때문이다.

예로부터는 신장에 매우 유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어 특히 나이 드신 여성들은 이 질경이를 많이 찾는다. 나물로 데쳐 먹어도 맛이 좋다. 오랫동안 먹으면 몸이 가벼워지고, 위에도 좋다는 기록도 있다. 목이 아프고 기침이 날 때도 질경이차가 도움이 된다.

길가에 하찮은 잡초였던 질경이가 알고 보면 사람을 이롭게 하는 소중한 자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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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