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운명을 건 전쟁이 시작됐다지구에서 벌어지는 행성로봇의 싸움… 가장 진화한 할리우드 CG의 집합체

<스파이더맨3>, <캐리비안의 해적3: 세상 끝에서>, <슈렉3>으로 이어지는 여름 블록버스터의 행렬에 강력한 후속 주자가 나타났다. ‘여름의 사나이’라 불리는 감독 마이클 베이의 <트랜스포머>가 그 주인공이다.

<트랜스포머>는 7주 연속 박스오피스 정상 자리를 한국영화에 내주지 않은 여름 외화들 중에 가장 블록버스터다운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엄청난 물량을 쏟아부었지만 스타급 배우(샤이아 라보프와 메간 폭스라는 무명에 가까운 남녀 주인공을 발탁)를 찾아보기 힘든 캐스팅, 넋을 놓고 바라볼 수밖에 없는 몰아적 액션 장면들로 러닝 타임의 상당 부분을 채우는 것, 할리우드 기술력이 도달할 수 있는 최전선을 보여준다는 점 등 여름 영화에 기대할 만한 모든 게 담겨 있다.

■ 프로도를 지키기 위해 온 터미네이터

장소는 카타르의 미군기지. 정체불명의 비행물체가 침입해 기지를 쑥대밭으로 만든다. 괴물체의 습격에 겨우 살아남은 부대원들은 사막을 떠돌다 미국 국방부에 도움을 요청한다.

한편 얼치기 고등학생 샘(샤이어 라보프)는 어느 날 아버지로부터 고물차를 선물로 받는다. 주인의 마음을 읽는 듯 분위기 파악을 잘하는 이 고물차는 실은 ‘범블비’라는 변신합체 로봇이다.

카타르의 미군기지를 초토화시킨 괴물체 역시 같은 행성에서 온 변신 로봇이다. 이들이 지구에 오게 된 내력은 이렇다. 100여 년 전 외계로부터 물체의 외형을 자유자재로 변형시킬 수 있는 엄청난 에너지를 지닌 물질 ‘큐브’가 지구상에 떨어진다.

변신 로봇들의 행성에서 온 ‘큐브’는 19세기 탐험가의 손에 넘어가 그의 안경에 좌표가 그려져 있다. 100년 후, 큐브를 찾으려는 악한 로봇과 이를 막으려는 선한 로봇들 간의 쟁탈전이 지구에서 벌어진 것이다.

이야기만 보면 유치찬란한 권선징악의 영웅담이다.

인류의 미래가 달린 선지자적 인물을 처치하기 위해 온 터미네이터와 그에 대항하는 기계인간의 대결을 담은 <터미네이터>의 묵시록적 비전과 <반지의 제왕>시리즈가 만든 절대 권력에 대한 상징(여기서는 ‘큐브’라는 에너지 발생 물질)을 골고루 취한 것 같은 <트랜스포머>의 스토리라인은 너무 평범하다.

흡사 프로도를 지키기 위해 지구에 온 터미네이터 이야기 같다. 선한 로봇과 악한 로봇이 인류의 명운을 걸고 싸운다는, 초등학생 수준의 이야기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물론, 거창한 이야기나 주제 의식은 이런 시간죽이기용 여름 영화에 관객들이 기대한 바가 아닐 것이다.

마이클 베이는 그 기대심리가 무엇인지를 너무 잘 알고 있다. 할리우드 테크놀로지의 발전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트랜스포머>는 할리우드 기술력의 진화가 어디까지 왔는가를 확실히 각인시킨다.

<트랜스포머>의 기술혁신은 <스타워즈>, <반지의 제왕>, <300> 등 테크놀로지의 기념비라 불리는 이전 작품들과 종류부터가 다르다.

<반지의 제왕>, <300>이 인격화된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기술을 사용했다면 <트랜스포머>는 인간의 향기가 거세된 기계들이 그것을 대체한다. 선악 집단으로 나뉘어진 변신합체 로봇들이 인간 주인공보다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 남성 로망의 실현

엄밀한 의미에서 <트랜스포머>는 실사영화라기보다 그래픽 혹은 메카닉 디자인 영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만큼 기술의 역할이 결정적이다.

1984년 미국 마벨 선보이 프로덕션에서 선보인 만화 시리즈를 실사로 옮기겠다는 결정부터가 그랬다. 제작자로 나선 스티븐 스필버그를 비롯, 마이클 베이 감독, 컴퓨터 그래픽(CG)과 특수효과 작업에 참여한 수많은 스태프들이 모두 이 시리즈의 열렬한 팬들이었다.

당시 로봇 만화를 실사로 옮길 수 있으리라 생각한 사람은 없었겠지만 할리우드의 진화된 기술력은 이제 상상 속에서만 존재했던 일들을 가능하게 만드는 수준으로까지 도약했다.

굳이 성별을 분류하자면, <트랜스포머>는 남성들이 열광할 영화다. 유년 시절 남성들의 로망을 실현시킨 꿈의 프로젝트이기 때문이다. 만화나 조립식 완구, 변신합체 로봇의 추억을 가지고 있는 이들에게 <트랜스포머>는 감격 그 자체다.

그런 의미에서 변신합체하는 로봇들이 마치 세상에 실제로 존재하는 영웅들이라고 믿었던 순진한 '동심'을 자극하는 판타지다. 이런 그림을 실사영화로 보게 되다니라는 흥분을 자아내기에 영화의 비주얼은 손색이 없다.

자동차나 핸드폰, 카세트 라디오, 헬리콥터 등으로 모양을 바꾸는 다양한 캐릭터의 로봇들을 보는 것만으로 본전 생각이 나지 않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그 옛날 <트랜스포머> 시리즈에 참여한 성우들의 로봇 목소리 연기를 감상하는 것도 가외의 즐거움 중 하나다.

하지만 이런 즐거움도 그리 오래가지는 못한다. 2시간이 넘는 러닝타임 중 메카닉 디자인의 혁명적인 결과에 경탄하게 되는 건 절반 정도다. 보기 좋은 그림도 한두 번이라는 말이다.

인간의 향기가 사라지고 차가운 로봇들이 금속성 소음을 내며 몸을 부딪히는 일이 잦아질수록 비주얼에 대한 경외심도 무뎌진다.

선한 로봇인 오토봇 군단과 악의 세력은 디셉티콘 군단으로 갈려 많은 로봇들이 등장하지만 각 캐릭터가 살아나지 못하는 것은 가장 큰 아쉬움이다.

개별 로봇의 캐릭터들에까지 신경쓰기에 이야기의 한계가 분명하고 스펙터클에 모든 걸 건 영화답게 드라마 자체는 순도가 떨어진다. 어쨌든 <트랜스포머>는 별 어려움 없이 박스오피스 왕좌 자리를 이어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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