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을 이고 펼치는 보랏빛 群舞

하나하나 들여다 보면 곱지 않고 의미 없는 식물이 없지만 산수국은 내게 특별한 설레임을 준다.

신비스러운 남빛 혹은 보랏빛 꽃 빛이 좋고, 하늘을 반쯤 가린 숲에서 무리지어 피어나는 모습은 좋은 풀, 멋진 나무를 수없이 보고 다니는 내게 있어서도 오래오래 기억에 남는 가장 멋진 자연 풍광의 하나이다.

숲속에서 혹은 숲가에서 혹은 물가에서 피어나는 이 아름다운 꽃나무는 언제나 자리에 적합한 모습과 품격으로 자라나지만, 가장 근사한 곳은 제주도 한라산 자락이 아닐까 싶다.

깊은 숲으로 발길을 옮기지 않더라도 한여름 한라산을 가운데 두고 제주시와 서귀포시를 건너다니는 오래된 도로변에 구름을 이고지고 피어 있는 산수국은 꼭 한번은 보시라고, 아니 느끼시라고 권하고 싶다.

사실 산수국은 우리나라 대부분의 지역에서 자란다. 꽃이 무리지어 핀 모습을 보고, 조금 크고 풍성하게 자라며 꽃이 아름다운 풀로 생각하는 이가 많지만 다 자라야 높이 1m를 넘지 못하는 분명 작은 키 나무이다.

잎은 마주 나는데 깻잎처럼 생긴 잎이 다소 두텁고, 꽃은 한여름, 7~8월에 핀다. 새로 난 가지 끝에 접시를 엎어 높은 것 같은 둥글고 큰 꽃차례(산방화서)가 달린다. 산수국의 가장 큰 특징은 유성화와 무성화를 함께 볼 수 있다는 점이다.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접시처럼 생긴 둥근 꽃차례(산방화서)의 가운데 쪽에는 꽃잎은 퇴화하고 암술과 수술이 발달한 작은 유성화(有性花)가 달리고, 가장자리에는 지름 1~3cm 정도의 무성화(無性花)가 달린다는 것이다.

화려한 무성화를 보고 꽃가루받이를 도와줄 곤충이 찾아오면 기능적인 꽃인 유성화에서 결실이 이루어진다. 말하자면 꽃들이 효율을 위해 분업을 하는 셈이다. 야생의 산수국에서 유성화는 없애고 화려한 무성화만을 가득 만들어 공처럼 크고 둥글며 화려하도록 한 것이 바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수국이다.

수국속(Hydrangea)은 세계적으로 워낙 알려져 있는 종류인데 꽃 색 혹은 꽃잎의 모양에 따라 수 백 가지의 원예품종이 나와 있다.

산수국은 한자로 산수국(山水菊)으로 쓴다. 말 그대로 산에서 피는 그리고 물을 좋아하는 국화처럼 풍성하고 아름다운 꽃이어서 붙은 이름이다. 영어로는 마운틴 하이드란지아(Mountain Hydrangea)라고 한다.

산수국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꽃빛이 아닐까 싶다. 제주도의 아주 큰 산수국 무리에서 꽃색의 변화를 조사한 일이 있는데 그 변화무쌍함과 아름다움에 놀란 기억이 있다.

생각 같아서는 수 십 가지의 품종을 만들어 낼 법한데 이는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다.

색의 변화를 고정시키기 어렵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흰색으로 피기 시작했던 꽃들은 점차 시원한 청색이 되고 다시 붉은 기운을 담기 시작하여 나중에는 자색으로 변화하는 경향이 있다.

또 토양의 조건에 따라서 알칼리 성분이 강하면 분홍빛이 진해지고 산성이 강해지면 남색이 더욱 더 강해진다. 이러한 꽃의 특성 때문에 인위적으로 토양에 첨가제를 넣어 꽃색을 원하는 대로 바꾸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이 꽃의 꽃말도 변하기 쉬운 마음이다.

한방에서는 수국류를, 그 중에서도 수국의 기본종이 되는 종류를 수구(수球), 수구화(繡毬花) 또는 팔선화(八仙花)라고도 부르며 뿌리와 잎과 꽃 모두를 약재로 쓴다. 심장을 강하게 하는 효능을 가졌으며 학질과 가슴이 두근거리는 증세에 처방하고 열을 내리는 데도 많이 쓰인다.

일본에서는 수국차라고 하여 마시는 차가 있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산수국과 비슷한 잎으로 만든 것인데 잎에 단맛이 있어 농가에서는 부러 재배하여 마시기도 한다.

산수국 보기가 점차 어려워지는 것은 너무 우거진 숲에서 밀려나기 때문이다. 희귀식물은 아니어도 우리나라에서 한 두 곳 정도는 멋진 산수국 군락을 두고두고 유지되도록 숲의 흐름을 약간 더디게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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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 ymlee99@fo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