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한 욕망 앞에서 무너지는 중산층 부르주아의 위선 고발인간관계의 허점 냉철하게 포착… 독일 현대 영화 특징 한눈에

한동안 침체일로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독일 영화계가 최근 기지개를 켜고 있다.

지난 해 베를린 국제영화제 황금곰상과 올해 칸 국제영화제 각본상을 수상한 파티 아킨 감독을 비롯한 많은 신진 독일 감독들이 유구한 역사를 지닌 독일영화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필적 고의에 의한 여름 휴가>(이하 ‘<미필적 고의>’) 또한 날로 참신해져 가는 독일영화의 역량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TV 드라마 연출자로 각광 받아 온 슈테판 크로머 감독이 연출한 <미필적 고의>는 유럽 현대영화 특유의 차갑고 냉철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휴가를 떠난 단란한 가족, 아름다운 휴가지의 풍광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 속에서 가까운 것처럼 보였던 이들은 어딘가 삐걱거리고 불안하다. <미필적 고의>는 이렇듯 친밀한 인간 관계의 허점들을 세밀하게 포착해낸다.

■ 질투는 나의 힘?

정치학 연구 파트너이자 동거관계인 미리암과 앙드레는 미리암의 열 다섯 살 난 아들 닐스와 그의 여자친구인 열 두 살 소녀 리비아와 휴가 여행을 떠난다.

아름다운 발트해 연안 별장에서 요트 세일링과 박물관 견학을 즐기며 평화로운 휴가를 만끽한다. 지나치리만큼 완벽해 보이는 나날이 계속될 즈음, 매력적인 옆집 남자 빌이 나타난다.

나이에 비해 조숙한 리비아는 즉시 빌에게 끌리고, 이런 그녀의 마음을 눈치챈 미리암은 보호자로서 책임 때문에 그들을 예의주시한다. 리비아가 빌의 집에 머무는 날 밤, 미리암은 그녀와 연락이 되지 않자 무작정 빌의 집에 찾아간다.

그러나 뜻밖에도 젠틀한 빌을 보자, 미리암도 매력을 느낀다. 미리암은 죄의식 없이 행복감에 빠져들지만, 빌로부터 리비아를 사랑한다는 고백을 듣는다.

질투심과 망가진 자존심으로 불쾌해진 미리암은 닐스와 앙드레, 리비아와 함께 요트를 타러 가고, 리비아와 단 둘이 요트를 타게 된다. 상쾌한 바람과 시원한 바다의 풍광에 마냥 즐거워하는 리비아와 달리, 미리암의 마음은 지옥을 넘나들고, 그 마음의 지옥이 뜻밖의 사건을 부르게 된다.

<미필적 고의>의 시작은 미카엘 하네케(<퍼니 게임> <피아니스트>) 나 클로드 샤브롤(<의식> <악의 꽃>) 감독의 영화에서 보여지는 서스펜스 가득한 실내극을 연상시킨다.

금방이라도 끔찍한 일이 벌어질 듯한 위험한 중산층 가정에 대한 묘사는 부르주아의 위선에 대한 고발이라는 영화의 정치적 의도를 분명히 보여준다.

완벽해 보이는 미리암의 가정에 불쑥 침입한 빌의 존재는 영화의 초반부를 끌어가는 최대 서스펜스 축이다. 이방인이라는 더 없이 불안하고 위협적인 타자 앞에서 긴장하는 미리암의 시점으로 끌어가던 초반부는 뜻밖에 빌과 미리암의 밀회로 이어지며 서스펜스의 축을 불륜 드라마로 변화시킨다.

사랑과 섹스에 대해서 쿨 하고 이성적이던 미리암과 앙드레, 닐스와 달리 애초에 충동적이고 위험해 보였던 리비아와 빌이 오히려 영화 속 사건의 최대 피해자라는 사실은 아이러니하다.

책임감과 양심, 타인의 삶에 대한 존중이라는 인간적인 미덕은 겉으로는 미리암과 그녀의 가족들이 공통적으로 인지하고 있는 원칙처럼 보이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은밀한 욕망과 이기심 앞에서 그들의 관계는 무너져가는 것이다.

<미필적 고의>는 성숙과 미성숙에 대한 시선의 전도를 보여준다.

닐스와 리비아는 겉으로 보기에는 충동적이고 무모한 십대처럼 보이지만 그들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그를 만회하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행한다.

오히려 돌이킬 수 없는 충동으로 주변의 관계를 파괴하고 그것을 은폐함으로써 더 큰 위기 속으로 빠져드는 이는 언제나 성숙한 어른들이다. 이처럼 영화는 우리가 은연중에 당연한 듯 의식하고 있는 몇 가지 편견들에 기초해 이를 뒤집으면서 일종의 성찰을 끌어낸다.

■ 부메랑처럼 돌아오는 아이러니

<미필적 고의>는 타인에 대한 두려움과 의심이 자기자신에게로 되돌아오는 삶의 아이러니를 충실히 재현한다. 다만 부메랑 같은 그 반전의 과정이 너무 무미건조하게 그려진 탓에 감정의 공명이 제대로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은 영화의 흠결이 된다.

초반까지만 해도 긴장감 넘치게 전개되던 영화의 속도가 미리암과 빌의 불륜을 기점으로 지루하게 흘러가고 마는 것이다. 휴가철의 작고 평화로운 마을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소동이 그 만큼의 무게감을 갖지 못하는 건 끝까지 냉정을 유지하게끔 건조하게 영화를 끌어가는 감독의 의도일 수는 있겠지만, 아이러니가 카타르시스에까지 이르는 과정이 지나치게 무난한 탓에 애초에 영화가 의도했던 충격 효과는 그다지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특히 마지막 반전은 영화의 주제를 완성하는 데 필요했는지 몰라도 다소 작위적인 설정임을 부인할 수 없다. <미필적 고의>는 중산층의 위선을 그렸던 수많은 영화들이 걸어왔던 길을 비교적 순탄하게 걸어간다.

후반부에 또 다른 반전을 준비하면서 야심 차게 흘러가는 영화는 냉철하고 지적으로 주제를 설파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그 이상의 새로움을 주는 것에는 실패하고 만다.

미카엘 하네케나 클로드 샤브롤이 항상 영화 속에서 던져주었던 둔중한 충격에 맞먹는 감각적 충격을 찾아볼 수 없는 탓에, <미필적 고의>는 그 주제에 걸 맞는 영화적 가치를 획득하는 데는 실패한 것처럼 보인다.

부르주아의 은밀한 매력, 그 어두운 그림자를 보여주는 이 영화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절반의 성공을 거둔 영화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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