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숲속에서 피서 즐기고 문화유산의 향기도 만끽

송계팔경 중 하나인 망폭대.
무더운 여름엔 뭐니뭐니해도 높은 산을 끼고 있는 깊은 계곡이 최고다. 짙은 숲에서 시원한 물소리 들으며 땀을 식힐 수만 있다면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거기에 가족과 함께 여유롭게 둘러볼 수 있는 유서 깊은 문화유산이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 피서와 문화유산 답사를 곁들일 수 있어

한국의 5대 악산(嶽山)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월악산(1,094m)은 경치 좋은 계곡을 여럿 거느리고 있다.

그중 월악산 서쪽 한수면 송계리를 거쳐 충주 미륵리까지 이어진 8㎞의 송계계곡은 기암절벽을 휘돌아 흐르는 맑은 물길 주변에 성문·불상·석탑 등 유물이 흩어져 있어, 물놀이와 문화유산 답사를 함께 곁들일 수 있는 최고의 피서지로 꼽힌다.

우선 송계계곡의 여덟 절경을 이르는 송계팔경부터 짚어보자. 월악산의 최고봉인 월악영봉, 넓은 암반과 깊은 소가 절경을 이루는 송계계곡 입구의 자연대, 30m의 3단으로 이루어진 월광폭포, 신라시대에 사당을 설치하고 하늘에 제사를 올리던 수경대, 한 쌍의 학이 월악산을 오가며 살았다는 학소대, 기암의 계곡을 굽이도는 맑은 물과 어울린 절벽이 일품인 망폭대, 용이 승천하였다고 하는 와룡대, 하늘나라 공주가 하강하여 목욕을 했다고 전해지는 팔랑소가 그것이다.

이런 절경으로 둘러싸인 송계계곡은 전설의 공간이다. 옛날엔 문경~하늘재~충주 수안보를 잇는 큰 길에서 송계계곡으로 들어서려면 샛길로 닷돈재를 넘어야 했다.

그러면 계곡을 따라 나있는 길은 남한강과 곧바로 연결되고 사방으론 험한 바위산들이 솟아있으니, 좁은 계곡 길에 성벽만 버티고 있다면 그야말로 천혜의 요새가 된다. 그래서 쌓은 게 덕주산성(德周山城)이다.

통일신라시대에 처음 쌓은 덕주산성은 문경과 충주를 잇는 도로를 차단하는 역할을 해온 석성이다. 당시 둘레가 9,800m에 이르렀다는 성벽은 거의 무너졌으나, 조선시대에 세운 남문·동문·북문 이렇게 3개의 성문이 남아 있는 송계계곡을 돌아다니다 보면 마치 과거의 한때를 거닐고 있는 듯한 즐거움에 빠져들게 된다.

북문은 송계계곡 입구인 새터말 민가 가운데서 오가는 이의 눈길을 끌고, 하늘재로 통하는 길가에 있는 남문은 발길을 멈추게 한다. 남문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사자빈신사지석탑(보물 제94호)은 고려시대의 탑인데, 돌사자 4마리가 탑신을 받치고 있는 모습이 특이하다.

돌사자의 안쪽 공간엔 두건을 쓴 비로자나불상을 모셔 두었는데, 이는 통일신라시대의 화엄사 사사자삼층석탑(국보 제35호)을 모방한 것이다. 기단의 기록에 의해 1022년(고려 현종 13)에 만들어진 연대를 정확히 알 수 있는 이 탑은 다른 석탑의 조성연대를 추정하는 데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다.

■ 마의태자와 덕주공주 전설이 서린 마애불

한편, 덕주골 입구의 좁은 바위 계곡 양쪽에 쌓은 동문은 덕주사를 지켜주는 든든한 관문 역할을 한다. 성문을 지나 풍경 소리 그윽한 덕주사 둘러보고 호젓한 산길을 따라 영봉으로 향하다 보면 월악산 중턱 바위에 새겨져 있는 덕주사 마애불(보물 제406호)을 만나게 된다. 이 불상은 고려 초기의 작품이지만, 역사적·예술적 가치보다는 전설이 더 가슴에 와 닿는다.

민초들은 신라 마지막 왕자인 마의태자와 누이 덕주공주 남매가 망국의 한을 품고 금강산으로 가던 도중 하늘재를 넘다가 충주 미륵대원지의 대불과 덕주사 마애불을 세웠다고 믿었다.

그러고는 대불은 마의태자 상이요, 마애불은 덕주공주 상이라 여겼다. 대불의 시선은 북향이고, 마애불은 남향인 까닭도 두 남매가 마주보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마애불 발끝에 서서 남쪽을 고즈넉이 바라본다. 그러나 기대했던 미륵대원지 대불은 뵈지 않는다. 눈앞을 가로막고 있는 덕주봉과 용암봉 때문이다. 아쉽게도 두 남매는 전설과 달리 서로 마주보고 있지 않았지만, 나라 잃은 남매의 넋을 달래기 위해 민초들이 퍼뜨린 애틋한 사연은 다시 한 번 가슴에 울려왔다.

마의태자 누이인 덕주공주 상이라는 덕주사 마애불.

덕주골 입구 주차장에서 마애불까지 도보로 왕복 2시간 정도 걸린다. 내친김에 월안산 정상인 영봉까지 오르려면 마애불 왼쪽으로 나있는 등산로를 따르면 된다. 덕주골~덕주사~마애불~960고지~영봉(정상)~동창교를 돌아오는 코스가 총 4시간30분 정도 걸린다.

● 여행정보

교통

△자가운전=서울→영동고속도로→중부내륙고속도로→충주 나들목→3번 국도→월악산 송계계곡 <2시간 소요>

△대중교통=동서울터미널에서 월악산 송계계곡까지 시외버스 매일 8회(06:40~18:40) 운행. 인천종합터미널에서 매일 19회(06:30~20:00), 부산종합터미널에서 매일 1회(07:00), 대구북부시외버스정류장에서 매일 2회(10:55 18:10), 대전동부시외버스터미널에서 매일 8회(08:30~17:55) 운행하는 시외버스 이용해 제천까지 간 다음, 제천에서 수시(05:25~21:20)로 운행하는 송계행 90번 시내버스 이용. 1시간30분 소요. 요금은 1,150원. 현지교통은 제천운수(043-646-2955), 제천교통(043-646-8601)에 문의.

숙식

송계계곡에 월악유스호스텔(043-651-7001)을 비롯해 60여 가구의 민박집(문의 한수면사무소 043-641-4468)이 있다. 또 송계휴게소(043-651-1086), 덕주휴게소(043-651-1930), 월악산장(043-651-5615), 월악산산채식당(043-643-7505) 등 식당이 많다.

송계계곡에서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하려면 송계계곡 입구의 송계오토캠핑장(승용차 기준 1일 9,000원)이나 덕주야영장(3~4인용 소형 3,000원), 닷돈재야영장(소형 3,000원) 등을 이용하면 된다. 문의 월악산국립공원 043-653-3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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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계계곡 상류에 있는 덕주산성 남문.

글·사진 민병준 여행작가 x 글·사진 민병준 여행작가 sanmin@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