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기록하고 있다 (1)

정보 사회에 대한 비관론자들은 새로운 사회가 직면하게 될 수많은 위험들에 주목한다. 정치적으로, 국가 권력이 시민들에 대한 각종 정보를 효과적으로 독점하여, 이전보다 더욱 용이하게 감시와 통제를 할 수 있다고 본다.

-금성사, 『고등학교 사회문화』

고등학교 시절, 시화전에 "방"이라는 제목의 시를 출품한 적이 있다.

10년도 훨씬 지난 일이라서 구체적인 내용은 자세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유일하게 방해 받지 않고 혼자 있을 수 있는 자유로운 공간이었던 내 방에 대한 헌사였던 것 같다. 나도 다른 청소년들처럼 방문을 잠그고 그 안에 틀어박히는 걸 즐겼다.

문제는 그 방을 대하는 부모들의 태도다. 유럽이나 미국의 영화를 보면, 아무리 어린 자식의 방이라도 부모가 그 방에 들어가기 전에 노크를 하는 장면을 쉽게 볼 수 있다.

이와는 달리, 한국의 부모들은 상대적으로 자녀의 프라이버시에 대해서 지나치게 간섭하거나 무시하는 경향을 보인다.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물어봐도, 벌컥벌컥 방문을 여는 부모님 때문에 짜증난 적이 있다는 얘기가 많이 나온다.

프라이버시에 관한 수업을 여러 번 하다보니 학생들의 '프라이버시 지표'를 알아내는 나름의 노하우가 생겼다. "가장 간섭 받지 않는 공간이 어디냐?"라는 질문에 "방"이라고 대답하면 그나마 사생활이 잘 보장되는 학생이고, "화장실"이라고 대답하면 사생활이 제대로 보장되고 있지 않은 학생일 가능성이 크다.

현대사회의 정보기술이 발달할수록 개인에 대한 감시는 더욱 주도면밀해지고 감시를 통해 데이터베이스화 되는 정보의 양도 비약적으로 증가해왔다. 사진은 런던 웨스트민스터 성당에 설치된 테러 방지용 감시 카메라. <런던=AP 연합뉴스>

그래서 이런 학생들에게는 사생활 보장은 일종의 권리라고 설명해주고, 부모님들에게 배운 내용을 잘 설명해 드리라고 하면서 수업을 시작한다.

프라이버시는 인간존엄성, 방해로부터의 자유, 개인 자율성의 보존 등과 관련된 주관적 개념이다. 일반적으로 개인주의적 가치들이 보장되는 사회일수록 프라이버시는 잘 보호된다.

즉 사회에 따라서 프라이버시에 대한 관념이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는 말이다. 자식과 부모 사이에 무슨 비밀이 있느냐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프라이버시는 제거되어야 할 어떤 것이겠지만, 반대로 어떤 사람은 프라이버시의 보장이 자녀와 건전한 관계를 맺기 위한 제1조건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프라이버시와 대립되는 개념은 감시이다. 감시는 사람이나 대상에 대한 정보의 수집과 저장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감시는 자율성, 사적 생활, 개인정보, 사적인 영역의 통제, 비밀, 친밀감, 홀로 있음, 침잠 등에 대한 개인의 권리를 의미하는 프라이버시권과 대립할 수밖에 없다. 간단히 말해, 프라이버시권이란 감시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권리, 즉 간섭 없이 혼자 있을 권리를 말한다.

그러나 프라이버시는 어떤 차원에서 바라보는가에 따라서 다양하게 구분될 수 있다.

자신에 대한 정보의 통제와 관련된 정보 프라이버시(informational privacy), 자신의 사적인 세계에 대한 외부의 접근을 제한하는 것과 관련된 영역 프라이버시(territorial privacy), 그리고 개인의 신체에 대한 침해와 관련된 신체 프라이버시(physical privacy) 등. 이와 더불어, 결정 프라이버시(decisional privacy)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는 주로 개인의 선택과 관련되는데, 간섭 없이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개인의 능력과 관련된 프라이버시다. 예컨대, 1975년 미국에서 여성의 낙태권을 프라이버시권적인 관점에서 옹호했던 판례가 있다.

한편, 프라이버시는 침해가 발생하는 영역에 따라서 통신 프라이버시, 작업장 프라이버시, 의료 프라이버시 등으로 구분되기도 한다. 이 중에서도 여기서 주로 다루고자 하는 정보 프라이버시는 네트워크 사회의 도래로 인해서 특히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오늘날 우리는 알든 모르든 끊임없는 감시 속에 살아가고 있다. 이때, 감시는 어떠한 형태로든 개인에 대한 정보를 수집, 저장, 분배하는 과정과 연관된다. 그러므로 정보기술이 발달할수록 개인에 대한 감시는 더욱 주도면밀해지고 감시를 통해 데이터베이스화되는 정보의 양도 비약적으로 증가해왔다.

정보는 대상 자체, 행위 그리고 사건에 대한 기록의 결과물이다. 인간의 몸은 선천적인 기록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이런 의미에서‘몸=일차적 매체’라고 부를 수 있다.

그러나 몸에 저장되고, 몸이 전달할 수 있는 정보의 양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하여 인간은 끊임없이 새로운 방식의 매체를 개발하여, 사건과 행위를 기록함으로써 정보들을 축적해 왔다.

여기서는 프라이버시와 직접적으로 관련된‘몸에 대한 정보’와‘행위에 대한 정보’의 특성을 중심으로 살펴보도록 하자.

몸은 인격권을 위한 물질적인 기초가 되며, 몸에 관한 정보들은 모두 프라이버시권에 의해서 보호받을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출생기록, 병력(病歷)기록, 초상사진 등은 모두 몸과 관련된 정보이며 이러한 정보들은 본인의 동의 없이 공유될 수 없다.

그 이유는 몸에 대한 정보들이 한 개인을 구성하는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정보이며, 이러한 정보를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은 자율권 행사의 기초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인간유전체연구사업(Human Genome Project, HGP)의 결과가 공개되면서, 개인 또는 집단이 가지는 유전자 정보를 여러 가지 목적에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개인의 유전자 정보는 질병의 치료 등의 의학적인 목적에 긍정적으로 이용될 수도 있지만, 특정 개인에 대한 사회적 차별이나 식별의 목적으로 오용될 가능성 또한 대단히 높다.

예를 들면, 보험회사는 특정 질병관련 유전자를 가진 사람에 대해서 보험가입을 거부하거나 높은 보험료를 부가할 수 있을 것이고, 기업은 영화 『가타카(1997)』에서처럼, 고용인에 대한 유전자 검사를 시행토록 하여 특정 질병관련 유전자를 가진 사람을 고용하지 않거나 해고할 수도 있다.

한편, 인간은 특정한 공간과 시간 속에서 행위한다. 이런 의미에서 프라이버시권은 자신의 행위에 대한 정보를 독점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내가 방문을 걸어 잠그고 그 안에서 무슨 행위를 하든지 나의 행위에 대한 정보는 타인과 공유되지 않는다.

이 때, 앞서 언급한 네 차원의 프라이버시는 모두 보호된다. 즉, 방이라는 특정 영역 안에서(공간 프라이버시), 내 신체를 이용한 행위(신체/결정 프라이버시)에 대한 어떠한 정보(정보 프라이버시)도 타인과 공유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정보 프라이버시의 침해란 내가 한 행위들이 나의 동의 없이 기록되고 저장되고 분배되는 것을 일컫는다.

감시자가 통제 능력을 가질 수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감시자의 기록능력 때문이다. 권력은 일방적으로 타인에 대한 정보를 생산, 보관, 분배할 수 있는 기술로부터 나온다.

일반적으로 감시는 소수의 다수에 대한 감시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으나, 오늘날 감시는 다수의 다수에 대한 감시로 변화하고 있다. 이는 감시에 필요한 기록능력을 갖춘 도구들이 상용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카메라 기능을 갖춘 핸드폰, 디지털 카메라, 녹음기 기능을 갖춘 MP3 플레이어, 언제든지 네트워크에 접속할 수 있는 무선 인터넷 등, 이제는 누구나 타인을 감시할 수 있고, 그 정보를 네트워크를 통해 분배할 수 있다.

기존에 국가, 기업 등에서 주로 행해졌던 감시가 이제는 각 개인들에 의해서 수행되고 있으며, 개인들의 감시를 통해 기록된 정보는 데이터베이스에 집적된다.

다음과 같은 시도를 해보자. 자신 주위의 사람 중 누구라도 상관없으니 그가 주로 사용하는 인터넷 아이디나 이메일 주소를 알아내서 구글이나 야후같은 검색사이트에서 검색해보라.

아니면 자신의 아이디라도 상관없다. 네트워크에 접속해서 더 많은 기록을 남긴 사람일수록 더 많은 정보가 나올 것이다. 심지어는 주민등록번호나 핸드폰 번호까지 검색되기도 한다.

공개된 데이터베이스만 잘 활용해도 제공되는 정보들 간의 관계에 기초하여 특정 개인을 구성해낼 수 있다. 기업의 경우에는 잠재적인 고객의 정보를 모으고 그것을 관리할 때 사용하는 개별적인 정보들(나이, 성별, 거주지, 연간 수입 등)을 활용하여 적합한 소비자들을 구별해낼 수 있다.

이런 식으로 개인은 데이터베이스 안에서 분류되고 데이터베이스 관리자는 이를 이익의 원천으로 삼을 수 있다.

문제는 개인들이 네트워크 이면에 존재하는 거대한 데이터베이스의 존재에 대해서 무감한 채, 스스로를 옥죄는 정보들을 자발적으로 생산해내서 갖다 바치고 있다는 점이다.

개인이 생산하는 정보에 대한 보안은 여전히 허술하다. 만약, 당신의 애인이나 가족의 취향을 당신보다 더 잘 아는 기업에서 다음과 같은 메일을 보낸다면 당신은 즐거울까?

"OO님의 소중한 친구인 **님의 생일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저희의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님은 요새 쇼핑사이트를 방문하여 아래의 11개 상품을 사고 싶은 목록에 저장해 두셨습니다. 그 중 하나를 선물하시겠습니까? 선물하고픈 상품을 클릭해 주세요"

TOPIA 논술 아카데미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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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원 i2u4u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