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스플로전 / 라다 차다ㆍ폴 허즈번드 지음/ 김지애 옮김/ 가야북스 발행/ 2만원

얼마 전 경기 여주에 문을 연 신세계첼시아울렛은 구찌, 페라가모, 아르마니, 버버리 등 세계적인 유명 브랜드 제품을 한데 모아 파는 이른바 명품 아울렛이다. 이곳은 개장 직후 처음 맞은 일요일에 무려 6만여 명의 고객을 끌어들이는 등 명품 쇼핑의 새 명소로 떠올랐다.

서울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 가량 달려가야 하는 등 불편한 점이 없지 않지만 명품에 목마른 사람들은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좋아하는 명품을 싼 가격에 살 수만 있다면 그런 수고쯤은 아무 일도 아니라는 것이다.

바야흐로 명품의 대중화 시대다. 거리에 나서면 루이뷔통, 프라다 제품을 몸에 걸친 사람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특히 20~30대의 젊은 명품족들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한때 일부 상류층의 전유물이었던 명품이 이제 보통 사람들에게도 필수 아이템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것이다.

최근의 명품 소비 확대는 단순히 일부 개인들의 사치욕구 충족으로만 보기 힘든 게 사실이다. 사람들은 왜 명품에 집착할까. 또 명품은 어떻게 사람들을 유혹하는 걸까.

마케팅 분야의 전문가로 오랫동안 활약해온 두 저자는 바로 이러한 의문에 대한 해답을 제공하기 위해 이 책을 내놓았다. 특히 저자들은 아시아 지역에서 세차게 불고 있는 명품 열풍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책의 제목 <럭스플로전>은 Luxury(명품)와 Explosion(폭증)의 합성어다. 말 그대로 아시아에서 벌어지는 명품 소비의 폭발적인 확대 현상을 함축한 표현이다.

아시아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브랜드라는 루이뷔통은 전체 매출의 88%를 일본인들에게 의지한다. 도쿄에 사는 20대 여성의 94%가 루이뷔통 제품을 갖고 있다는 통계가 있으니 충분히 그럴 만하다. 비단 루이뷔통뿐 아니라 모든 명품 브랜드 기업들에게 일본은 가장 군침이 도는 시장이다.

명품 소비가 일상화한 일본 못지않게 다른 아시아 국가들의 명품 소비도 엄청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홍콩과 싱가포르의 명품 열풍은 일본에 거의 근접하고 있으며 그 뒤에는 한국과 대만이 바짝 따라붙고 있다. 해마다 10%가 넘는 고속성장을 하고 있는 한국 명품 시장은 세계 7~8위권 규모다. 무엇보다 오랜 잠에서 깨어나 경제성장에 불을 붙인 중국과 인도인들의 명품 소비 증가세도 심상치 않다.

명품 시장의 규모는 전세계적으로 약 800억 달러에 이르는데 그 절반이 아시아인이 팔아주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몇몇 아시아의 ‘용’(龍)들이 수많은 서구 국가들을 합친 것과 맞먹는 명품 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현재 추세라면 그 비율은 조만간 역전될 것으로 보인다.

20세기 초 무렵 유럽 귀족들의 몸치장을 위한 사치품으로 등장한 명품이 한 세기를 지나 아시아에서 이처럼 득세하고 있는 까닭은 무엇인가. 저자들은 아시아인의 역사적, 기질적 배경과 명품 기업들의 마케팅 전략이 결부한 상승효과를 그 원인으로 분석하고 있다.

개인주의적 성향의 서양인들과 달리 동양인들은 집단주의적 사고 방식이 강하다. 동양인들은 자기 자신의 기호나 의사보다 그가 속한 집단의 규범에 맞춰 정체성을 형성해 간다.

소비생활도 마찬가지여서 명품 시장 확대는 그런 틀로 충분히 해석할 수 있다. 즉 경제성장의 과실로 가처분 소득이 늘어나면서 일부 과시적 부류가 명품 소비를 선도하자 너도나도 그 대열에 합류하는 동조 현상이 자연스레 일어난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저자들은 명품을 “동양인의 정체성과 사회적 위치를 정립하는 현대적 방식의 상징물”이라고 규정한다.

여기에 더해 명품 브랜드 기업들의 마케팅 전략은 아시아의 명품 열풍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이들은 자사 브랜드가 신분을 상징한다는 교묘한 이미지 조작을 통해 아시아 소비자들의 허영심을 손쉽게 파고든다. 또한 소수 상류층만을 타깃으로 하던 전통적 영업 방식에서 벗어나 보다 대중적인 명품을 끊임없이 만들어냄으로써 시장을 팽창시키고 있다.

저자들은 이 책을 집필하기 위해 아시아 각국을 돌며 명품 산업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는 150여명의 종사자를 비롯해 패션기자, 소비자행동 분석가, 광고기획자 등 관련 전문가 집단을 세밀하게 인터뷰했다. 뿐만 아니라 직접 명품 판매가 이뤄지는 매장을 돌며 소비자들의 행태와 심리를 훑었다.

이처럼 두 저자의 발품을 통해 탄생한 책은 아시아 명품 시장을 생생하게 들여다본 최초의 실태 보고서라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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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