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기 살인-코미디의 어설픈 동거

연극 ‘조선형사 홍윤식’은 반듯한 모범생같은 작품이다. 천재파보다는 노력파에 가깝다. 근면하고 성실한 것이 장점이지만 ‘끼’는 보이지 않는다. 노력의 양에 비하면 결과는 기대치에 밑돈다. ‘코믹물’이라는 일부 홍보물의 문구는 어쩐지 부담스럽다.

성기웅 작, 김재엽 연출의 ‘조선형사 홍윤식’은 1933년 5월 서울에서 벌어진 끔찍한 유아살해사건을 소재로 다루고 있다. 극중 사환이기도 한 소녀 손말희의 해설과 함께 이야기가 펼쳐진다.

경성의 한 고갯길에서 아기의 잘려진 머리통이 발견되는 엽기적인 사건이 일어난다. 일본 경찰은 즉각 수사에 나선다.

서대문경찰서 사법계에 마침 조선인 형사 홍윤식이 부임해오고, 홍 형사 곁에는 일본어 실력이 뛰어난 이노우에 주임이 보조를 맞춘다.

항간의 흉흉한 속설 속에서 수사는 난항을 거듭한다. 서대문 밖 일대의 하층민들 가운데 조선인 용의자들이 끌려오지만 일본인 경찰간에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아 혼란만 일어난다.

홍윤식은 현미경을 동원해 나름의 과학수사를 추진하고, 한편에서는 형사 임정구가 행동거지가 다소 이상한 용의자 뻐꾸기를 범인으로 몰아간다. 사건 발생 열이틀째. 미궁 속에 빠져버린 경찰 수사를 질책하는 여론에 밀려 홍윤식 일행과 임정구 일행은 근처의 염리 공동묘지에까지 직접 찾아든다.

형사 홍윤식 역의 이상혁을 비롯해 이소영, 백운철, 우돈기, 정원조, 김주령 등 다수의 배우가 출연한다. 모든 배우들이 성실히 자신의 배역을 연기하지만, 가장 눈에 띄는 아쉬움은 ‘스타’의 부재다. 주연의 존재조차 주연으로서의 스타성을 스스로 확보하지 못하여 안타깝다.

그나마 개성있는 두세명의 조연을 빼고는, 전반적인 연기력이 평준화 되어 있는 인상이다. 무엇이 이유인가는 간단할 수도 있고 복합적일 수도 있을 듯 하다.

전반부는 다소 느슨하고 심심하다. 스토리의 전개 속도가 더디다. 극중 구성원이자 해설자라는 독특한 이중 배역을 맡은 사환 소녀의 연기는 상대적으로 도드라져 균형이 기울어진다.

특히 초반에는 구연동화에 가까운 해설투와 제스처로 본 무대보다 존재가 튄다. 마치 단체 흑백 사진 속에 한 사람만 칼라판으로 서 있는 분위기다. 물론 본인의 잘못은 아니다.

그러나 이같은 이질감 때문에 특히 상황 전개가 느슨한 극의 초반에서는 해설을 사이에 둔 각 장면간의 연결이 의도와는 달리 토막토막 호흡이 끊어지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본 무대의 색깔을 좀 더 강렬하게 살리거나, 아니면 해설의 톤을 좀 더 희석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어쩐지 주객이 전도된 인상을 남긴다.

관객들의 웃음을 불러내는 코믹 소재의 상당부분 또한 일본인과 조선인의 대화 사이에 벌어지는 언어 문제를 매개체로 삼고 있어 한계다. 대사와 스토리의 밀도가 전반적으로 약하다. 군데군데 군더더기가 눈에 띈다.

정작 마무리 준비가 시작될만한 후반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제 가속도가 붙는다. 이때부터 제법 볼만하다. 상황이 빠르게 전개되고, 무대 양쪽의 조명을 이용해 두 무리의 상황을 긴박하게 교차 묘사하는 등 비로소 연출의 맛이 드러난다.

무대 위에 긴장이 감돈다. 처음부터 최대한 군살을 빼고 이만큼만 스피디하게 움직인다면 훨씬 역동적이고 박진감나는 공연이 될 듯 하다.

뒤늦게 적정 속도를 찾은 무대는 빠르게 결말로 진행해 나아간다. 애초에, 끔찍한 엽기살인사건과 코믹은 함께 병행되기에는 너무 많은 위험부담을 지고 있다.

실제로도 그리 적절한 배합에 성공하지는 못한 듯 하다. 정곡을 찌르는 날카로움이나 진지함, 재미와 웃음, 두가지 모두에서 다소 엉거주춤하다. ‘조선형사 홍윤식’의 수사 무대는 서울 대학로 문화공간 이다. 2관에서 9월2일까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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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주 pinplus@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