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를 이어온 진하고 담백한 육수 일품신세대도 즐겨찾는 평양식 냉면… 22개월 만에 옛 자리서 다시 문 열어

서울 신촌 로터리에서 이화여대 후문 방향. 이름난 냉면 집 하나가 한 때 보이지 않았다. 바로 평택 고박사집 냉면.

‘왜 문을 닫았지?’ ‘임대 계약이 만료돼 나갔나?’ 속사정을 알리 없는 고객들은 냉면 맛을 보러 왔다가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자취를 감췄던 기간은 정확히 22개월. 하지만 지난 2005년 4월 예전 그 자리에 그대로 다시 문을 열었다. 그런데 아직도 신촌에 고박사집이 없어진 줄 알고 있는 이들이 적지 않다.

평택 고박사집 냉면의 뿌리 역시 평양식이다. 평북 강계 출신인 고순은(84) 옹이 평택에서 처음 가게를 낸 이후 지금까지 3대째 맛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신촌은 고순은 옹의 장녀인 고옥순씨가, 평택은 아들인 고복수씨가 맛을 책임진다. 고씨 남매의 할아버지는 이북에서 냉면집을 운영했다.

왜 냉면집 이름에 ‘박사’가 들어갔을까? 고순은 옹은 워낙 음식에 대한 지식과 관심이 남다르기로 유명했다. 어느 날 냉면집을 평택에 차리니 친구들이 ‘그럼 고박사집으로 이름 지어라’고 해 그렇게 붙여졌다.

여러 유명한 평양식 냉면 집들 중에서도 고박사집 냉면 육수 맛은 차별화 된다. 담백하면서도 진한 맛이 특징. 한우 양지와 소 앞다리살을 넣어 푹 고아 기름을 걷어낸 뒤 동치미 국물 등과 잘 배합해 낸 맛이다.

육수 자체에 적당히 간이 배인 듯해 한편으로 걸쭉한 느낌마저 돈다. 소위 ‘밍밍하다’고도 표현되는 일반적인 평양식 냉면의 육수와는 궤를 달리 한다.

그래서 그런지 이 집에는 어르신들 사이사이로 젊은이들이 많이 눈에 띈다. 보통 평양식 냉면 전문점에 가면 중장년층이 대부분인 경우가 적지 않은데 여기만은 색다르다. 젊은이들의 입맛에도 이 집 냉면 맛이 맞기 때문인 듯. 꼭 젊음의 거리에 위치해 있다는 이유 만으론 설명하기에 부족하다.

안주인 고옥순씨는 냉면 맛은 3대 째 그대로라고 소개한다

. 맛의 기본 바탕은 여전하지만 신세대 젊은이들도 좋아할 수 있는 요소들이 더불어 반영됐다는 것이 비결. 같은 평양식이지만 육수 맛이 더 진하고 면발이 쫄깃하면서도 질기거나 무르지 않다. 면은 메밀과 전분을 6대4 내외로 섞어 주방에서 직접 뽑아 내는데 계절별로 조금씩 배합 비율이 달라진다고.

냉면을 먹기 전 시키는 일품요리로는 빈대떡과 제육이 인기 높다. 100% 녹두로만 지져내는 빈대떡은 고소하면서도 바삭하다. 간장에 풋고추를 얹어 찍어 먹는다. 삼겹살을 껍질째로 양념과 함께 삶아 썰어 내는 제육도 이 집의 자랑거리. 수육이라고 쓰인 것은 소고기다.

냉면을 시키면 풋고추를 썰어 놓은 그릇도 같이 나오는데 냉면에 고명처럼 얹어 먹는다. 아삭 씹히면서도 비타민C를 공급해 주기 때문에 맛과 영양 만점이다. 반찬으로 나오는 양배추 백김치도 이 집만의 별미거리. 소금으로만 절여 새하얀 색깔에 씹히는 질감이 부드러우면서도 새콤상큼하다.

육수를 맛보려고 수저를 찾다가는 낭패(?)를 보기 십상. 수저가 테이블에 아예 없어서다. 육수를 들이켜 마셔야 맛이 더 나기 때문에 수저를 갖다 놓지 않았다고 한다.

■ 메뉴

물냉면 7,500원, 비빔냉면 6,500원, 빈대떡 6,000원, 제육 1만4,000원.

■ 찾아가는 길

연세대와 신촌로터리 사이길로 신촌기차역 방향 굴다리 전 50m. (02)392-7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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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사진 박원식 차장 park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