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세고 탐스러운 야생의 붉은 백합

날씨는 개었다. 지난 길고 긴 비의 끝이어서 숲 속은 아직도 수분들로 꽉 차있다. 초록 일색의 여름 숲에 들어가자니 그 초입에 참나리가 눈에 띈다. 하긴 오는 길에도 참나리 피어나는 작은 마당들이 여럿 있긴 했다. 한여름인 것이다.

사람들에게 좋아하는 꽃을 물으면 백합이라고 하는 이가 많다.

순결을 상징한다는 백색의 꽃송이와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진한 향기에 매료 되었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말하는 그 백합은 자연에서 자라는 야생의 꽃이 아니라 사람들이 꽃을 크게 혹은 향기를 진하게 육종하기위해 만든 원예품종의 하나이다.

영어로는 릴리(Lily), 학명으로 말하면 릴리움속(Lilium)에 해당하는 식물들이다. 이 백합류의 우리꽃말 이름은 나리이다. 우리 나라에는 참으로 다양한 야생백합 즉 나리꽃들이 자라고 있다.

대부분의 나리류는 주황색 꽃송이를 가지지만 더러는 분홍색 솔나리나 흰색의 흰솔나리와 같은 개체도 발견되곤 한다. 그러니 서양의 백합은 좋아하면서 우리의 나리꽃을 모르는 이가 있다면 곤란하다.

그러나 막상 식물도감의 색인을 뒤적여보면, 나리꽃이 나오지 않는다. 대신 참나리, 하늘나리, 말나리, 따나리, 섬말나리, 솔나리 등등 ‘나리’라는 글자를 꽁무니에 매어단 깜짝 놀랄 만큼 다양한 종류들이 등장하고 있다.

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참나리이다. 숲에서 혹은 들에서 그 붉고 큼직한 꽃송이를 무리지어 피어내는 모습은 너무도 인상적이어서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자세히 보면 백합을 닮은 꽃의 모양새와 꽃잎에 점점이 박힌 까만 점들이 얼마나 귀엽고 정다운지 모른다. 산에 흔히 있어 산나리, 꽃잎에 점이 있어 호랑나리라고도 한다.

일제시대에 만든 조선어 사전에 ‘농요(農謠)를 뫼나리라고도 한다’라는 기록이 있어 어떤 이는 뫼나리 즉 산나리가 농부가를 연상시킬 만큼 우리와 가까웠다는 추측을 하기도 한다. 그밖에 알나리, 야백합(野百合), 권단 등은 산나리의 또 다른 이름이다.

■ 호랑나비의 군무 인상적

참나리는 백합과에 속하는 여러해 살이 풀이다. 비늘줄기가 있는 주먹만한 크기의 알뿌리가 땅 속으로 뿌리를 내리고, 굵고 튼실한 줄기가 쭉쭉 뻗어 길쭉 길쭉한 잎들이 줄줄이 달린다.

여름이 무르익는 7~8월이면 한 줄기에 3~10송이 정도의 많은 꽃송이 들이 주렁주렁 달려 여섯 갈래로 깊이 갈라진 꽃을 피워 낸다.

어른 주먹만한 큼직한 꽃송이는 활짝 펼쳐져 뒤로 젖혀 질 듯 입을 벌린다. 그 꽃 잎 위로 주근깨 같은 점들이 다닥다닥 드러나고, 그 사이에 길쭉한 수술과 암술이 뻗어나와 매력을 더한다.

대부분의 나리 종류들은 그 키가 무릎 정도로 올라오지만 나리중의 진짜 나리, 참나리는 다 자라면 일 미터를 훨씬 넘곤 한다. 아름다움과 함께 힘찬 기상을 자랑하는 우리의 꽃인 것이다.

게다가 유독 참나리꽃을 즐겨 찾는 호랑나비들의 군무도 일품이다. 결실은 거의 안하지만, 잎 겨드랑이에 생기는 검은 구슬 같은 주아가 떨어져 어미 참나리와 똑같은 복사품을 수없이 만들어 내므로 어려운 꽃가루 받이를 점차 잊어버리는 것만 같다.

이름에 ‘참’자가 붙는 식물들이 대게 그러하듯이 참나리는 먹을 수 있는 식물이다. 구근은 나물이나 밥에 섞어서 찐 다음 단자를 만들어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직접 찌거나 구워 먹기도 하지만, 가루로 녹말을 만들어 죽도 쑤고 국수도 만들어 먹는다. 그밖에 조림이나 국거리 재료로도 많이 사용한다.

한방에선 붉은 꽃잎이 뒤로 말렸다 하여 ‘권단’이라 불렀고, 여러가지 증상에 쓰임새가 많다. 참나리는 이래저래 참 좋은 식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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