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의 전설- 서양의 이야기, 과거-현재 등 중구난방으로 섞여CG- 실사의 결합 완성도 떨어져… '할리우드서 성공할까'의문

영화를 판단하는 통념적인 기준을 벗어나는 영화들이 있다.

즉, 스토리의 됨됨이나 영화의 만듦새와는 별개로 특정요소가 과도하게 부각되는 경우들이다. 심형래 감독의 <디 워>도 그런 영화 중 하나로 취급된다. 대대적인 사전홍보전 이후 공개된 영화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엇갈린다.

이 영화가 화제를 모았던 이유는 SF 액션영화에 바쳐 온 심형래 감독의 집념의 세월이 응축된 결과물이라는 영화 외적인 요소 때문이었다.

<영구와 땡칠이>의 바보 ‘영구’를 기점으로 시작된 심형래 감독의 도전사는 한국 장르영화 지형에서 불모지로 여겨지는 SF 시각효과 영화의 장을 열겠다는 야심으로 요약된다.

하지만 수백억 원에 달하는 (한국영화로서는) 천문학적인 제작비와 미국 시장에서 1500개에 달하는 스크린에서 개봉한다는 이 영화의 외형적인 모습을 봤을 때 <디 워>를 심형래 감독 개인의 집념과 의지의 산물로 평가하는 것은 어딘지 모르게 적절치 않아 보인다.

■ LA를 활보하는 조선 시대 이무기

<디 워>의 컨셉은 ‘퓨전’이라는 한 마디로 요약된다.

동양의 전설과 서양의 이야기가 섞이고, 과거와 현재가 섞이며, 우리에게 익숙한 각종 액션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마구잡이로 섞인다.

영화의 무대는 현재 미국의 LA. 도심에서 벌어진 의문의 참사 사건을 취재하던 CGNN 기자 이든(제이슨 베어)는 이 미스터리한 사건이 500년 전 조선에서 벌어진 이무기들의 싸움과 관련이 있다는 걸 알아낸다. 5

00년 전 용으로 승천하기 위해 여의주의 현신으로 태어난 여자를 두고 쟁투를 벌였던 선한 이무기와 악한 이무기의 싸움이 500년 후에 다시 시작된 것.

현재의 골동품상 잭(로버트 포스터)은 악한 이무기에게 쫓기는 이든과 여의주를 지닌 신비의 여인 사라(아만다 브룩스)의 탈주를 드러나지 않게 돕는다.

이무기 군단 ‘부라퀴’는 끈질기게 이든과 사라 커플을 쫓고 마침내 생포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마침내 악한 이무기와 부라퀴 군단의 소굴에서 여의주를 두고 최후의 대결이 펼쳐진다.

외형상 <디 워>의 규모는 한국영화로는 최고 수준이다.

수백억원(정확한 제작비를 추정하기 힘들다)에 달하는 제작비와 7년 간의 제작기간, 미국 1500개 관에서 와이드릴리즈 방식으로 개봉하겠다는 목표 등 여느 한국영화가 도달하지 못한 기록을 넘보고 있다. 하지만 이런 영화 밖 확인되지 않은 사실들이 <디 워>의 가치를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

장기간 CG 테크놀로지를 갈고 닦아온 영구아트무비의 집념이나 심형래 감독의 SF 장르에 대한 식지 않은 열정, 한국영화계에서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전인미답의 영역에 대한 도전이라는 사실도 <디 워>의 진짜 모습과는 하등 상관이 없다.

그래서 영화가 어떻단 말인가?

시사회 직후 여러 매체를 통해 알려졌듯, <디 워>의 드라마는 엉성하기 짝이 없다

. 500년 전 조선시대에 뿌리를 둔 이무기 전설과 현대 미국 도심에서 벌어지는 괴수 액션을 연결시키는 이야기의 이음매는 성기고 어느 인물도 제대로 형상화된 캐릭터를 찾아보기 힘들 뿐 아니라, 개연성을 잃은 상황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이어진다.

혹자는 CG가 드라마의 약점을 충분히 보상할만 하다지만 중반 이후에 집중된 액션 장면의 CG도 경탄할만한 수준은 아니다.

CG 자체도 문제지만 CG 와 실사의 결합이 문제적이다. 나름대로 공력이 들어간 CG컷과 대충찍은 화면을 뻔뻔하게 붙여놓은 장면 연결은 부조화스럽기만 하다.

'한국영화치고 훌륭하다'는 억지 칭찬은 여기서 통하지 않는다. 심형래 감독이 지난한 세월을 와신상담한 것은 '한국영화 치고 괜찮은 그림'을 만들어내기 위함이 아니었잖은가?

수백억원을 들여 1500개 미국 극장에서 개봉하겠다고 호언하는 것 또한 한국영화 수준에서 그나마 나은 CG로 이룰 수 있는 수준은 아닐 것이다. 모든 면에서 퓨전을 노린 <디 워>의 야심은 여기서 넘기 힘든 장벽에 부딪히고 만다.

■ 메이드 인 코리아의 환상

누군가의 말처럼 드라마와 캐릭터 보다 CG 기술의 완성도로 평가받아야 하는 영화는 세상에 없다. 한국영화건 미국영화건, 드라마 중심의 영화건 CG 중심의 영화건, 영화는 그 자체로 관객에게 심판을 받는다.

관객들이 영화를 즐기는 기본 요건은 '재미'이거나 '감동'이다. 경탄할만한 한 두 장면으로 그걸 만족시킬 순 없다.

<디 워>를 둘러싼 또 하나의 이상한 기류는 '애국심'과 '민족주의'에 대한 호소다. 미국 배우를 기용해 영어 영화를 만든 심형래 감독은 마지막 장면에 '아리랑'을 편곡해 넣었다.

뿐인가? 영화가 다 끝난 후엔 심형래 감독이 직접 쓴 에필로그가 나온다. 영화 사상 유례가 없는 이 감독의 후기에는 영화인으로서 심형래 감독 본인이 걸어온 고난의 역사와 세계 최고가 되겠다는 비장한 의지가 자료화면을 통해 보여진다.

<영구와 땡칠이>의 ‘영구’로 시작해 유치한 아동용 괴수영화를 만드는 B급 감독 취급을 받았던 설움, 그 모든 고난의 세월을 너머 마침내 세계가 인정하는 영화를 만들게 됐다는 말까지. 심형래 감독이 왜 그런 에필로그를 영화에 넣었는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대단한 뭔가를 이뤄낸 사람에게나 어울릴법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자화자찬은 아무리 봐도 시대착오적이다.

이 영화를 지지하는 일부 네티즌들은 '한국영화의 저력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무조건 봐야 하는 영화'로 <디 워>를 선전한다. 과연 그런가?

무엇이 '메이드 인 코리아'의 환상을 심어줬는지 알 수 없지만 '한국산'이라고 앞뒤 제쳐두고 응원을 보내야 할 이유는 없다.

영화의 절대적인 판단 기준으로 봐도 그렇고, 제임스 카메론이나 스티븐 스필버그와 겨룰만한 상품을 만들겟다는 심형래 감독의 광대한 야망에 비춰봐도 <디 워>는 격려할만한 영화는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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