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세 없는 연기가 눈부시게 빛났습니다"

놀랐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던 그 ‘정성화’가 아니었습니다. 공연이 끝난 뒤 무대로 쏟아지는 기립박수를 지켜보았습니다. 그것도 여러번의 커튼콜이었지요. 이 날은 당신의 날이었습니다. 아니, ‘당신들’의 날이었습니다. 그럴 자격이 있었습니다.

당신을 재발견하게 해 준 뮤지컬 ‘맨오브라만차’는 4백년에 걸쳐 사랑을 받아온 세계적 소설 ‘돈키호테’와 그 저자 세르반테스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지요.

당신은 극중 돈키호테인 동시에 세르반테스의 역을 맡았습니다. 적임자를 골랐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공연을 통해 그간 우리가 상상해왔던 돈키호테의 이미지가 추상화가 아닌 구상화로 바뀌었습니다.

인간적이고도 진지한 접근이 새로웠습니다. 게다가 구부정한 노인 특유의 걸음걸이에서부터 발성, 억양, 제스추어까지 너무나 자연스럽고 시원한 당신의 연기가 빛났습니다.

동료 배우들에게도 인사를 전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김선영, 권형준, 최민철을 비롯해 심지어 대사 한마디 없는 역할의 배우들까지도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했음을 무대에서 보았습니다.

무엇보다 허세를 부리지 않아서 가장 좋았습니다. 작품도 연기도 과욕을 부리지 않아 더욱 감동적이었습니다. 연출자 데이빗 스완(David Swan)에게도 말씀을 전해주실 수 있을까요?

공연 곳곳에서 그의 개성과 철학을 만났노라고 말이지요. 스토리의 호흡이 이렇게 느긋하면서도 조바심을 보이지 않았다는 건 대단한 지구력이자 자신감입니다. 단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이 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가장 손쉽고 만만하게 ‘폭소 제조용’으로 써먹을 수 있었을 지정 배역 ‘산초’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의 말과 행동을 상당히 아끼신 걸 보았습니다. 의외였고, 탄복했습니다.

대극장의 공간적 강점도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있더군요. 중심배경을 이루는 대형 지하감옥을 비롯해 수시로 자동 접이식 장치를 이용해 만든 대형 계단 등 무대장치와 미술도 흥미로운 감상거리 중 일부였습니다.

의상도, 시(詩적)인 조명도 눈에 선합니다. 극의 감흥을 더해준 오케스트라의 음악도 훌륭했습니다.

공연장이 LG아트센터였지요? ‘맨오브라만차’는 미국의 극작가 데일 와써맨과 작곡자 미치 리, 작사가 조 대리언의 손으로 만들어진 미국 브로드웨이의 히트작을 국내로 옮겨 온 공연으로 압니다.

중심 줄거리는 다들 짐작할 만한 내용이지만, 구성이 다소 독특합니다. 스페인의 어느 지하감옥. 신성모독죄로 끌려온 세르반테스가 죄수들과 함께 감옥 안에서 즉흥극을 벌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바로 그 돈키호테 이야기지요. 나머지는 생략하겠습니다. 누구나 아는 스토리도 뮤지컬로 만들어지면 어떤 빛을 뿜어내게 되는지 관객들이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맡깁니다.

제가 찾아간 날에는 당신을 보았지만, 공동 배역으로 영화 ‘말아톤’의 주연 조승우와 윤공주, 이훈진이 각각 돈키호테와 알돈자, 산초 역으로 출연한다고 하더군요. 못지않게 기대되는 팀입니다.

극중 안토니아와 신부가 부르던 노래 ‘그 분의 생각뿐’이라도 좀 배워 올 걸 그랬습니다.

아직 9월2일까지 공연된다니 기회가 남아있긴 하군요. 당신의 노래도 낱낱이 아름다웠지만, 너무나 웅장해서 엄두가 안 나는 것 뿐이니 서운해하시지는 않으리라 짐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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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주 객원기자 pinplus@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