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훔친 직지 2권 해외 유통 가능성" 서상복 씨 화제의 옥중서한

광흥사·봉원사서 슬쩍… '직지'보다 50년 앞선 금속활자 불경도 훔쳐
가격 수백억 원대… 국내선 '물주' 찾기 힘들어 해외 판로 개척할 수도
문화재 관리 구멍 많아… 공항엔 단속 전문가 없어 해외 밀반출 용이

올해 5월 한 통의 편지가 기자에게 도착했다. 대구교도소에 수감 중인 서상복(46)씨가 보낸 것이었다.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서씨는 편지에서 현존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라는 직지심체요절(이하 직지) 상권 2권과 직지보다 50년이나 앞선 금속활자 불경을 자신이 훔쳤다고 주장했다.

직지 하권은 구한말 약탈 당해 프랑스 국립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이전에도 서씨는 이 같은 주장을 여러 차례 했지만 출처지에 대해서는 철저히 함구해 왔기 때문에 그의 주장은 신빙성이 없는 것으로 치부됐다. 서씨는 그러나 편지에서 직지 2권은 경북 안동시 광흥사와 서울 서대문구 봉원사에서, 불경은 경북 경주시 기림사에서 훔쳤다고 고백했다.

공소시효가 지났기 때문에 가슴 속에 묻어 두었던 비밀을 밝힌다는 것이었다. 당시 사찰 3곳에서도 ‘큰 도둑’이 들었다고 이미 밝힌 바 있어 서씨 주장을 뒷받침했다.

서씨는 “훔친 문화재를 모두 팔았기 때문에 현재 행방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며 입을 다물었으나 그가 출소해 직지를 세상에 공개한다면 전세계 문화재 역사를 다시 써야 할 판이다.

훈민정음

그렇다면 서상복씨는 도대체 누구인가.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국내 문화재 도굴꾼 1인자로 꼽힌다.

2001년 검거 당시 경찰이 밝힌 것만 해도 사리, 탱화, 불경 등 국보급 문화재 35점을 훔쳤다. 실제로는 1,000점 이상이다. 지난해 9월 삼성리움박물관이 법정소송 중에 경기 가평군 현등사에 반환한 사리와 사리를 담은 그릇도 그가 훔친 것이다.

박물관 관계자는 “고 이병철 삼성 회장이 1981년 구입해 97년 기증한 것”이라고 버텼지만, 서씨가 “1980년 내가 훔쳤다”고 뒤늦게 털어놓으면서 삼성측은 결국 문화재를 돌려줘야 했다.

기자는 지난해 8월부터 1년 동안 서씨에게 100여 통의 편지를 받았다.

교도소 면회도 10차례 이상 했다. 서씨는 알려지지 않은 과거 사건에 대해 털어놓았고 문화재 절도 사건의 심각성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부실한 문화재 관리 실태도 꼬집었다. 그 중에는 귀담아 들을 만한 내용이 상당수 있었다.

편지에서 밝힌 서씨의 주장은 수사기관에 문의한 결과 대부분 사실로 확인됐다. 세부사항에서 일부 부정확하거나 과장된 주장이 있을 수 있지만 기본적인 윤곽은 믿을 만한 것으로 판단된다. 서씨의 동의를 얻어 편지 내용을 공개한다.

● 서상복은 누구인가

서 씨는 자타가 공인하는 문화재 도굴 1인자로 꼽힌다. 2001년 검거 당 시 검찰이 밝힌 것만 해도 사리, 탱화, 불경 등 국보급 문화재 35점을 훔쳤다.

서 씨 자신은 전국 모든 사찰을 돌며 1,000여 점 이상의 문화재를 훔쳤다고 밝히고 있다. 문화재 전문가보다 문화재에 더 정통해 절도 사건만 생기면 수사기관에서 서 씨에게 먼저 의뢰를 할 정도다.

지난해 9월 삼성리움박물관이 경기 가평군 현등사에 반환한 사리와 사리를 담은 그릇(사리함)도 그가 도굴한 것이다.

최근에는 기자에게 편지를 보내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과 직지보다 앞선 불경 2권을 도굴했다고 주장하며 출처지를 밝혀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 직지 2권 더 있고 직지보다 앞선 불경도 있다

직지 상권을 모두 두 권 훔쳤습니다. 안동 광흥사에서 2000년 3,4월께 여러 차례 찾아가서 도굴했습니다.

직지심체요절 프랑스 소장본

표지 일부분이 파손된 직지가 나오더군요. 이 직지는 지금 조선족을 통해 중국에 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보다 앞서 1999년 여름에는 서울 신촌 봉원사에서 파손되지 않은 직지 완질본을 얻었습니다.

봉원사에서 훔쳤다고 하면 일부 학자들이나 고서적을 취급하는 사람들은 저를 미친 사람 취급할 겁니다. 봉원사 같은 절에서 무슨 복장물이 나오고, 조선 초기나 고려활자본 불경이 나오느냐며… 그러나 2001년 검찰 수사 때 조선 초 언해본 불경이 모두 봉원사에서 복장돼 나왔고, 조선 초 금사경과 다라니경 등 어마어마한 불경도 나왔습니다.

직지라 하면 모두 청주에 있는 흥덕사에서 인쇄돼 청주 근교 사찰에서만 전래 됐을 것으로 알겠지만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1998~1999년 겨울 경주 기림사에서 수 차례 도굴한 결과 직지보다 앞선 불경을 찾아서 팔았습니다. 물론 동행했던 사람도 있습니다. 지금 잘 살고 있는 사람에게 피해를 주기 싫기 때문에 누군지는 밝히지 않겠습니다.

현재 직지보다 앞선 불경을 가지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은 지난해부터 수억 원을 줄 테니 저보고 입을 다물어 달라고 전해오기도 했습니다.

제가 거부했습니다. 이제 공소시효가 지났으니 조만간 저를 찾아올 것입니다. 반드시 오지요. 장담합니다. 책자가 곧 유통이 안 되더라도 머지 않아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겁니다.

내막을 알고 있는 저 때문에 소장자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애가 탈 것입니다. 불경을 가지고 있는 쪽에서는 유통을 마음대로 못하기 때문에 제가 없어지기를 바랄지도 모릅니다. 눈엣가시지요. 혹시 제가 의문의 죽음을 당하면 그 쪽 소행이라고 생각해도 됩니다.

직지와 불경의 가격은 수백 억원 대가 될 것입니다. 제가 밖에만 있어도 제 손으로 찾을 수 있겠지만 갇힌 몸이라 어쩔 수가 없네요. 직지와 불경은 이미 해외까지 7,8명이 조직적으로 연루돼 유통망을 구성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국내에선 수백 억원을 주며 책자를 사들일 물주를 찾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제가 연루됐고 정상적인 물건이 아니라고 공개될 경우 시끄럽기 때문에 소장자는 주춤하고 있을 것입니다. 골동품업계의 브로커는 국내든 해외든 매매를 성사시키려고 여러 사람을 접촉하고 있을 것입니다. 커미션만 수십 억원에 이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직지와 불경이 공개되면 어떻게 될까요. 지금은 종단과 사찰이 관심 없는 척 하지만 눈이 뻘개져 난리가 날 것입니다. 그 때가 되면 교도소로 진술조서를 받으러 많은 사법경찰관이 오거나 종단측 간부들이 뻔질나게 드나들 것입니다.

피해자라고 주장하며 소송과 기타 종단측의 힘으로 세계적인 국보를 되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그 동안 직지와 불경을 찾으려고 문화재청, 경찰, 국회의원, 청주시, 언론사부터 일반 시민까지 저를 찾아왔습니다.

■ 호암미술관 보안시스템 뚫어

지금의 삼성리움박물관이 개관하기 이전 에버랜드 안에 있던 호암미술관 시절부터 삼성은 죄인(저)과 악연이 있습니다. 2000년 말로 기억하는데 호암 미술관을 턴 적이 있습니다.

한석봉 친필서

당시 세 차례 사전답사를 했고 도주로 등도 철저히 파악했습니다. 보안장치도 곳곳에 설치됐고 폐쇄회로(CC)TV도 건물 구석구석에 있었습니다. 또 경비원 여러 명이 가스총을 차고 근무를 서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생각을 했습니다.

밤에는 털기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D데이’를 과감하게 다음날 정오에서 오후1시 사이로 잡았습니다. 매우 어려운 절도 작업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개입시키면 안 되겠다 싶어 혼자 절취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후배들에게 연락을 취하면 감시자와 차량이 지원되지만 돈 욕심에 혼자 하기로 결정하고 조직에 연락하지 않고 쏘나타 대포차(훔친 차량 등)를 타고 목적지에 도착한 뒤 차는 주차장에 세웠습니다. 배낭과 공구를 가지고 변장했습니다. 등산복을 입고 모자와 가발 쓴 채 2층 전시실로 갔습니다.

미리 답사한 곳이라 망설임 없이 예리한 레이저 절단기로 10초 만에 유리를 절단하고 안에 있던 금사경을 꺼내 유유히 떠났습니다.

유리관에 감지기가 있었지만 늘 연습해 왔기 때문에 제거가 쉬웠습니다. 금사경 바로 앞쪽에는 족히 20억원은 호가하는 왕실용 상감청자 베개가 있었습니다.

경매자와 재벌 사이에서는 100억원 넘게 거래될 수도 있습니다. 제가 왜 금사경만 갖고 나온지 아십니까.

상감청자 베게도 앞에 있었는데 말입니다. 우선 ‘상선’이 요구하는 물품이 아니었기에 금사경만 가지고 나왔습니다.

하지만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가지고 올 수 있기 때문에 별 아쉬움은 없습니다. 솔직히 리움박물관, 호암미술관, 불교박물관 등에 전시된 사찰용품은 제 손이 아니더라도 제 공범 혹은 제가 아는 사람 등이 거의 절반 가량은 뒷구멍으로 모두 판매한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세종대왕 동생 이담선생 매그림

당시 호암미술관 1층에는 안내데스크와 경비가 있었고 2층에는 수많은 관람객이 있었지만 우리나라 국민 습성이 자기 일 아니면 상관을 하지 않는 것을 너무 잘 알기에 자연스럽게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당시 변장했던 내 뒷모습이 CCTV에 찍혔고 나중에 문화재청 단속반에서 긴가민가해 수 차례 저를 추궁했습니다.

삼성에서는 절도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기를 꺼려 극도로 보안을 유지했습니다. 그 점 때문에 오히려 물건을 매매하기는 훨씬 수월했습니다.

상선에게 1억원을 현찰로 받았습니다

일일이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박물관 및 불교미술관에서 물건을 훔쳤지만 아무려면 삼성만큼 경비가 삼엄했습니까.

전주박물관, 대구박물관, 공주박물관, 부여박물관, 통도사 성보박물관, 대흥사 성보박물관, 목아박물관, 치악박물관 그리고 각 사찰 박물관 등 열거하자면 끝이 없습니다.

이 중에서 언론에 사건 기사화가 된 것은 치악박물관, 목아박물관, 대흥사 성보박물관, 해인사 등 제가 검찰에 진술한 것들 뿐입니다. 물건의 행방 및 처분과정을 이야기하는 조건으로 저를 처벌하지 않고 기소유예 시켜줬습니다.

올해 3월21일 삼성문화재단 앞으로 서신을 한 통 보냈습니다.

대표이사 앞으로 보냈는데 받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내용은 ‘호암미술관에서 내가 훔친 금사경을 자진해서 찾아 주었는데 세월은 흘렀지만 지금까지 고맙다는 말 한 마디 듣지 못해 서운하다’는 것입니다.

저로 인해 언론에서는 쉬쉬해 발표는 안 됐지만 당시 사설 경비원과 책임자가 해고됐다는 이야기까지 들었습니다. 진심으로 사죄 드린다고 말했습니다.

현등사 사리 및 사리함에 대해 제가 도굴범으로 밝혀져 현등사로 반환된 것에 대해서도 죄송하다고 전했습니다.

●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

고려 공민왕 때 승려 백운화상이 1372년 선(禪)의 요체를 깨닫기 위해 부처와 고승들의 문헌을 섭렵해 초록으로 편찬한 것을 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찍어낸 책이다.

정식 명칭은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 이다.

서양에서 가장 오래된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보다 73년이 앞서 제작된 현존 세계 최고 금속활자본이다. 상하 두 권 중 하권 1권만 전해진다. 2001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됐다.

■ 문화재청 강신태 사범단속반장의 말

호암미술관 절도 사건에 대해 당시 서씨를 붙잡았던 문화재청 강신태 사범단속반장의 말을 들어 봤다. “사건을 처음 접하고 나서 누가 과연 국내 최고 보안을 자랑하는 호암미술관을 털었을지 궁금하면서도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대낮에 호암미술관을 찾아가서 대담하게 금사경을 털 사람은 서상복 밖에 없다고 결론 내렸다.

다른 사찰에는 신기하게도 CCTV에 흔적조차 안 잡히는데 호암미술관에선 꼬리가 잡혔다. 그러나 뒷모습이었다. 체격이 건장했다.

벙거지 모자에 카메라 문양이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직감적으로 서상복이라고 생각하고 그의 집을 압수수색 했다. 샅샅이 뒤져 모자와 티셔츠를 찾아냈다. 증거를 들이밀고 서상복을 만나 추궁했더니 그 무거웠던 입을 열더라.

서상복이 누구인가. 의리를 최고로 치기 때문에 웬만한 사건은 절대로 안 분다. 경북 상주시에 사는 누군가에게 팔았다 하길래 찾아가서 회수한 뒤 삼성에 돌려줬다. 이 밖에도 11점의 지정문화재급 절도 사건도 같이 불어 회수에 큰 도움이 됐다.

당시 서상복은 일제 특수 제작 커터 칼을 사용했다. 원래는 크기가 큰 편인데 작게 개조해 가방이나 주머니에 넣고 다닌다.

문화재를 감싸고 있는 두꺼운 유리와 특수 제작된 실리콘도 3번만 왔다 갔다 하면 잘린다. 어쨌든 대단한 놈이다.”

● 복장(腹藏)

불상을 만들 때 불상 안에 사리나 불경 등을 넣는 일. 내용물은 불상 제작 당시 역사적 상황을 알려 주는 귀중한 문화재로 인식된다. 사찰에서는 복장 유물을 신성시해 거의 열어보지 않기 때문에 내용물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하며 따라서 도굴꾼들의 표적이 돼 왔다.

■ 직지 털러 프랑스도 갔다… 프랑스 박물관에 '직지' 원본 없어

다시 서씨의 편지를 살펴보자. 이번에는 직지 하권을 훔치러 도굴꾼들이 프랑스로 원정을 간 이야기다.

2000년께 프랑스 국립박물관에 보관된 직지 하권을 훔치려고 제 일당 몇 명이 다녀 왔지만 실패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당시엔 박물관에 원본은 없었고 복사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후배들과 기회를 봐서 다시 들어가려고 했지만 차일피일 미루다 못 갔습니다. 원본만 전시돼 있었으면 벌써 가지고 왔을 겁니다. 확신합니다. 박물관에서 직지 모조품을 전시했다고 하니까 의아했습니까. 원래 소중한 것은 그렇습니다.

자문은 다른 사람에게 구해 보십시오. 한국에서 건너간 것은 아닙니다. ‘꾼’들이 2000년에 일본과 중국에서 비행기로 이동했습니다. 몇 차례 갔지요. 제가 다음 차례에 가려고 했지만 2001년 검찰에서 문화재 절도 수사가 시작되면서 못 갔습니다.

월인천강지곡

보안이 철저하지 않겠냐구요. 첨단 보안시설이라고 해봐야 삼성리움박물관이나 호암미술관만 하겠습니까. 보안장치는 도굴꾼들이 많은 투자를 하고 연구를 하기 때문에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집이나 사무실 등에 박물관과 똑 같은 보안 시설을 설치해 놓고 경우의 수를 따져 각종 실험을 하고 작동 해제 방법까지 연구합니다. 유리관 등도 만들어 놓고 실험합니다. 쉽게 되는 일 없고 남의 물건 거저 먹기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투자 없이 할 수 없는 것이 이 바닥 일입니다. 실제로 1만원을 벌면 6,000원을 장비 구입과 실험에 투자합니다.

믿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삼성이 저에게 당한 것 생각해 보십시오. 삼성이나 보안업체에 물어 보면 얼마나 철저한지 알 것입니다. 그 사람들 당하고도 놀랐을 것입니다.

프랑스보다는 국내 보안이 더 철저하다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우리나라 박물관은 여러 가지 보안 장치가 있으면서도 경비원들이 낮이나 밤犬?돌고 있습니다. 반면 일본이나 유럽은 대부분 장비에만 의존합니다. 그래서 종종 언론에 보도되듯이 도굴꾼들이 일본 내 한국 문화재를 많이 절취해 오는 것입니다.

솔직히 저도 일본 사찰에 있는 몇몇 국보급 유물을 가져오려고 계획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죄송한 말이지만 정부에서 눈만 감아 준다면 직지 뿐만 아니라 일본에 산재 돼 있는 국보급 유물을 모두 날라줄 수도 있습니다. 자신이 없으면 말하지 않습니다.

■ 문화재 관리 너무 허술하다

서씨는 그가 문화재를 털었던 기발한 방법들을 털어 놓았다.

신기하기도 했지만 역으로 생각하면 문화재 절도가 도굴꾼에겐 얼마나 쉬운 일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떤 곳은 지붕을 뚫고 천장을 타고 들어가 미리 봐 두었던 물건 위치에 접근해 낚시질 해서 건졌습니다.

어떤 곳에선 실물과 비슷한 모조품을 대치해 놓고 유리관에 들어 있는 진품과 바꿔치기 했고, 어떤 곳에선 불상의 복장 속에 들어가서 빵을 먹으며 2박3일 동안 책을 정리한 적도 있습니다.

어떤 곳은 손바닥만한 부처님을 한 배낭 짊어지고 나와 하나에 100만원씩 판매한 적도 있고, 어떤 곳에서는 여건이 좋지 않아 부처님을 등에 업고 나와서 복장을 하고 나서 부처님을 산에 놓고 간 적도 있습니다.

제가 거느리고 있는 조직폭력배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쪽 팔리고 내세울 수 없는 짓’ 많이 했습니다.

지금은 반성하고 있으며 하나라도 주인에게 찾아 주려고 노력하고 있으나 나쁜 시선으로 보는 사람이 더 많이 있습니다. 정말이지 테러라도 당하겠습니다.

아직도 국내에서 판매를 못하고 헤매고 있는 문화재에 대해 많이 문의해오고 판매처를 소개해 달라고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제가 거느리고 있는 조직폭력배가 ‘판권’을 쥐고 있기 때문입니다. 골동품 세상에 거래되기 곤란한 것도 모두 거래를 성사시킬 수 있으니 힘이 생기는 것이지요.

제 출소일(2011년 4월)은 아직 많이 남았지만 그 때까지도 문화재 절도 및 유통은 끊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도굴꾼들이 문화재를 도굴해 성공하는 것도 문제지만 문화재가 일본과 중국으로 가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제가 보낸 지도(서씨가 일간지에 인쇄된 전국 사찰 지도를 오려 보낸 것)에 108개의 사찰이 나오는데 제가 형광 펜으로 체크한 사찰은 모두 복장한 곳입니다.(거의 대부분임) 지도에 표시되지 않은 사찰은 훨씬 많습니다. 이 지도를 토대로 ‘사찰 무방비, 부처님 복장 당하다’ 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써도 될 것입니다.

워낙 문화재 관리가 부실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훔쳤다고 체크한 사찰은 거의 기억하고 그 곳에서 무엇이 나왔는지도 알고 있습니다. 귀중한 책을 여러 곳에서 훔치기도 했습니다.

용비어천가의 경우 창신동 청룡사에서 두 권, 전북 남원시 실상사에서 두 권, 봉원사에서 두 권, 전남 강진군 무위사에서 두 권 등 대충 이렇게 기억되는군요. 2001년 검찰 수사 때 제가 회수해 준 압수품만 1,000여 점 이상 됩니다.

자질구레한 불경을 빼놓고 중요한 품목은 기억하지만 지금 이 곳에서도 저에게 배우고 출소한 제소자들이 사찰에 복장을 하러 또다시 다닐지 모릅니다. 2등이라 소용이 없겠지만 사찰에 경계심을 주어 도난을 예방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복장은 1등만 한몫 챙기고 2등은 자질구레한 것만 가지고 나오지요. 초보자들은 불상까지 훼손시키는 경향이 있어서 수백 년 이어온 불상을 망가뜨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공항이나 항구에 문화재 전문가가 있을까요.

최근 TV나 신문 등에서 문화재 해외 유출 빈번하다는 보도가 나면서 임시방편으로 경고문 비치했겠지만 그 때 뿐입니다. 전문가가 거의 없을 테니 그대로 통과합니다.

그나마 문화재 관리가 지금 많이 강화된 편입니다. 그것도 문화재 사건이 일어난 2001년 이후이고 이전에는 막말로 이야기해서 그냥 손으로 들고 다녀도 어느 누가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조차 없었습니다.

해외로 나가는 것도 어느 비행기를 타고 가더라도 가방 속에 그냥 넣고 출국과 입국이 마음대로 됐습니다.

왜냐하면 공항에 세관이 있고 검사관이 있지만 그 분들의 임무는 마약과 밀수 등 주로 금속제품을 단속하는 것이고 설령 문화재를 검사한다고 하더라도 검사자가 문화재에 대한 지식이 없고 판별을 못하기 때문에 거의 있으나 마나 합니다.

그러니 문화재가 너무도 쉽게 해외로 유출되는 것입니다. 가까운 예를 들더라도 한국에서 도난된 영정 초상화가 일본에 흘러 들어간 뒤 정상적으로 일본에서 거래됐다는 내용의 통관을 받아 국내로 다시 들어오지 않았습니까. 웃기는 일이지요.

■ 처벌 강화하고 단속 전문가 키워야

2000년께로 기억 납니다. 대전의 어느 경찰서에서 문화재에 관해 조사를 받은 일이 있었습니다. 당시 대학 교수가 자동차에 탱화를 숨기고 있었고 집에도 탱화 및 불교유물을 수십 개 소장하고 있었는데 같이 연관이 돼 조사를 받았습니다.

당시 강력반 수사관들이 조사를 했지만 문화재에 대해 무지한지라 의혹을 밝히지도 못하고 그냥 풀려 나왔습니다. 수많은 탱화 및 유물도 대학 교수에게 그대로 돌려 줬고 저도 불경을 되찾고 나왔습니다.

현실이 이렇다는 뜻입니다.

대선 때문에 서로 치고 받고 하는 것이 죄인인 제가 교도소에서 봐도 가관입니다. 대선 주자가 문화재를 되찾겠다는 약속을 대선공약에 넣었으면 하는데 소중한 우리 문화유산 생각하겠다는 사람은 한 명도 없더군요.

말로만 사랑하는 문화 유산이지 실제로는 관심 밖입니다. 그러니 도굴범들이 얼마나 도굴하기 편한 세상입니까.

게다가 문화재 절도처럼 손쉬운 돈벌이를 누가 외면하겠습니까. 형사적 책임도 가벼워 형기가 매우 짧습니다. 인사동 골동품 가게에서 판매하는 도자기 보십시오. 대부분 구린 방법으로 구입 됐겠지요.

그 도자기가 하늘에서 떨어졌습니까. 땅에서 솟아났습니까. 모두 도굴품이고 행방이 밝혀지지 않는 곳에서 나왔습니다.

지난날 구입하게 된 경위를 묻거나 역추적을 하자고 하면 대화도 안 할 것입니다. 도자기를 매매한 사람이 누구냐고 물으면 모두 행불자나 죽은 사람 이름을 거론하겠지요.

사찰도 문제입니다. 도굴을 당했으면서도 복장 유물을 열어보지 않는다는 관습 때문에 무엇을 잃어버렸는지도 모르고 관리하는 주지 스님도 문화재에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도굴범에게 사찰 불상이 복장 당하거나 혹은 탱화 등 기타 중요한 문화재가 분실됐을 경우 책임을 물어 조계종 총무원에서 많은 문책을 받고 주지직에서 물러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쉬쉬하며 불상이 훼손 당했거나 문화재가 분실됐을 때는 원상복귀 하기에 바쁩니다.

스님들도 직위에 연연하기에 승진을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러다가도 귀중한 문화재나 국보급 보물급 사찰 문화재가 공개됐을 때는 ‘내꺼니, 네꺼니’ 하면서 숱하게 법정 싸움을 하고 총무원도 적극적으로 개입합니다.

지난해 문제가 됐던 현등사의 사리 및 사리함, 불교박물관의 백양사 탱화 등 나열하자면 사례는 무지 많을 것입니다. 그래도 도난 됐을 경우 책임을 질까 봐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경우가 더 많을 것입니다. 도굴꾼들에게는 나쁠 게 없는 일이지요.

● 상선

문화재 도굴꾼이 훔쳐온 문화재의 가치를 판단해 주거나 도굴꾼에게 사찰과 박물관 고택 등에 보관된 특정 문화재를 훔쳐 오라고 지시하는 인물을 일컫는다.

상선에게 물건이 넘겨지면 합법적인 문화재 거래로 위장돼 전국적으로 유통되고 최종 구입자는 선의취득을 주장하며 문화재를 소유할 수 있게 된다.

■ 판매 자금은 어디에 썼나

지금까지 돈 번 것 몇 가지 적겠습니다. 저도 돈을 남들만큼 만져봤지만 그 돈은 폭력조직의 자금으로 상당 부분 썼습니다. 고교 다닐 때 충남 서산의 모 폭력조직에 가입해 자금책 및 부두목으로 있었습니다.

조직이 운영되려면 많은 돈이 필요했습니다. 더구나 조직의 간부급으로 있으니까 더욱 책임감이 있었습니다.

다른 폭력 조직은 유흥주점이나 오락실, 사채, 마약 등으로 돈을 벌어 운영을 했지만 저희 조직은 제가 문화재 쪽으로 눈을 떠서 문화재 절도 및 매매 사업을 했습니다.

그래도 조폭인지 못 파는 물건이 없었고 다른 지방에 가서도 안 되는 일이 없었습니다. 지난날 잘못 많이 사죄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조직원들이 일본이나 중국에 많이 있습니다.

폭력조직이기에 장물 알선 및 취득자를 보호해 주고 있습니다. 신임을 많이 얻어 지금도 저를 찾아오고 있는 것입니다. 위험한 현장이나 고난도 기술이 필요할 때는 제가 직접 나섭니다. 그런데 그 많은 돈을 다 어디에 썼냐고요.

제 조직은 일본과 중국에도 현지인이 많이 있기에 그들에게 많은 돈을 투입했습니다. 지난날 판결문에 밝혀진 금액만 하더라도 물건 압수된 것 100억 원대 빼놓고 현금으로 받은 것이 A씨 7~8억원, B씨 12~13억원, C씨 3~4억원, 대전 골동품상 1억원, 충주 골동품상 2억원, 청주 골동품상 4~5억원, 인사동 2억원, 장안동 4억원 등 헤아릴 수 없습니다.

해외판매 빼놓고 대략 판매한 금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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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원기자 strong@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