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든 파워' / 찰스 더버 지음 / 김형주 옮김 / 두리미디어 발행 / 1만2,000원

2004년 미 대선에서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했을 때 민주당은 충격에 빠졌다.

9ㆍ11 테러 후 아프가니스탄(2001년)과 이라크(2003년)를 잇따라 침공한 부시 대통령의 인기는 당시 그렇게 높지 않았다.

그러나 공화당은 2000년 미국의 독특한 선거제도 덕을 보면서 앨 고어를 재검표 끝에 이겼을 때보다 훨씬 쉽게 백악관을 지켰다.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존 케리는 대중적 인기가 그렇게 높지는 않았지만 큰 흠결 없는 무난한 후보였다. 그런데 왜 민주당이 패한 것일까.

공화당의 칼 로브 같은 책사가 없어서? 선거운동이 중구난방이었기 때문에?

보스턴대 사회학 교수인 저자는 민주당이 ‘선거의 덫’에 걸렸기 때문에 실패했다고 본다.

체제 변동을 이끌어내는 진정한 동인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한 채 미국을 실제로 지배하는 기득권 세력이 심어놓은 법치주의의 환상에 빠져 ‘선거에서 이기면 체제 변동이 된다’고 착각했다는 것이다.

‘부시만 아니면 된다’는 안일했던 선거 전략의 핵심은 민주당의 전통적 지지층인 노동자, 농민, 빈민층, 사회운동 세력(시민단체 등)의 요구를 등한시하고 더 많은 유권자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중도적 정책을 제시해 선거에서 이기는 것이었다.

반면 공화당은 칼 로브의 지휘 아래 전통적 지지층인 중ㆍ남부 지대의 기독교적 농민층과 도시노동자들에게 가족주의와 종교적 가치관 등을 지키기 위해서는 공화당을 지지해야 한다는 인식을 심어주면서 그들을 완전한 자기들 편으로 결집시키는 데 성공했다.

더버는 이 같은 공화당의 전략이 2004년 대선 전후에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라 40여년에 걸쳐 공화당이 추구한 장기적 계획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파악한다.

이 동안 공화당의 대중 정치가들은 한두 번의 선거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남부의 보수적 기독교 세력 및 기업가들과 연대해 무한경쟁과 무제한적 이윤을 추구하는 ‘법인체 체제(기업체제)’를 기획했다. 이 체제 안에서 미국을 실제로 지배하는 것은 기업들이지만 이들의 권력은 철저히 은폐돼 있다.

사람들은 ‘선거’를 통해 체제 변화가 일어나는 줄 알고 있지만 이는 기득권 세력이 심어 놓은 이데올로기일 뿐이다. 민주당 정치가들조차 장기적 비전 없이 눈앞의 선거에 연연해 하는 상황에서, 2008년 대선에 민주당이 이기더라도 수십년을 이어 온 법인체 체제가 바뀔 가능성은 낮다.

저자는 소수의 기득권자들이 아니라 노동자와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체제를 만드는 일은 ‘제2의 은폐된 권력’인 사회운동 세력에 의해 가능하다고 역설하면서 시민사회의 적극적 정치참여를 촉구한다.

우리나라도 연말 대선을 통해 진보 대 보수의 이념 대결이 펼쳐질 것으로 예상된다. 대선 필승의 전략과 필패의 원인을 제시한 이 책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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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주 기자 pariscom@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