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소 알게 되는 시간

이제는 제법 ‘오래 전’이라 말할 수 있는 그 때, 그 해, 좀처럼 눈이 내리지 않던 가문 겨울, 그래도 충분히 추웠던 강원도의 시린 겨울, 뱀처럼 구불구불 쉼 없이 휘어진 왕복 2차선의 산간 지방도로, 해가 짧은 오후의 한 나절, 나는 자동차 조수석에 앉아 길을 달리고 있었다.

아직 운전면허가 없던 때였다. 그러나 직접 운전을 하지 않는 드라이브였기에 차창 밖 먼 곳으로 시선을 주며 마음껏 몽상에 잠길 수 있었던 것이리라.

군용차량의 행렬을 만나면 번번이 속도를 줄이고 그 끝자락에 붙어 느리고 지루하게 달려야 했다.

얼마든지 더 빨리 달릴 수 있음에도 그것을 애써 금지하고 있는 이해할 수 없는 세계를 추월하려면 비상등을 켜고 아슬아슬 중앙선을 넘어야 했다. 그러나 오가는 차가 많지 않은 겨울 오후의 지방도로, 그것은 그다지 아슬아슬한 일이 아니었다.

아슬아슬하지 않게 중앙선을 넘으며 바라본 트럭 속, 열을 맞춰 앉은 젊은 군인들은 모두 같은 얼굴을 한 여러 사람처럼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춥고 느리게 흘러가는 것에 부대끼고 있을 그들의 뜨겁고 빠른 청춘.

그 때, 멀리, 산의 숲, 낙엽을 떨군 맨몸의 나무들이 탁한 암갈색 얼룩처럼 번져 있던 황량한 겨울 숲, 참 춥겠다, 나무도, 청춘도, 참 춥겠다, 그 때, 내가 ‘자작나무’를 알게 된 것은 바로 그 때였다. 어디에도 눈(雪)은 없었다.

그러나 희었다. 눈의 흰 빛과는 엄밀히 다른 존재감의 흰 빛, 탁한 암갈색 숲 속에 드문드문 맑고 부시게, 그러나 고통과 인내임이 분명한, 흰 빛, 흰 나무가 있었다.

군용트럭의 행렬은 뒤쳐져 느리고 지루하게 달렸다. 끝내 아무 것도 추월하지 못할 듯, 흰 나무. 암갈색 겨울 숲 속에 추운 흰 나무들이 있었다 - 자작나무였다.

인생의 어느 순간, 어떤 대상을, 어떤 진실을, ‘비로소’ 알게 되는 순간이 있다. 자작나무를 알게 되는 순간이 있고, 느티나무를 알게 되는 순간이 있고, 버드나무를 알게 되는 순간이 있다.

목련을 알게 되는 순간이 있고, 모란을 알게 되는 순간이 있다. 담배를 알게 되는 순간, 하이힐을 알게 되는 순간, 바다를 알게 되는 순간, 기다림을, 배신을, 열망의 부조리함을 알게 되는 순간, 바흐를, 세잔을, 김광석을 알게 되는 순간, 혹은 피붙이를, 피붙이가 주는 상처를, 비로소, 알게 되는 순간······. 그 순간은 시(詩)의 순간이다.

시인은 언제 어떻게 자작나무를 알게 되었을까. 정끝별의 첫 시집 제목은 <자작나무 내 인생>이다. 그리고 10년쯤 뒤 그녀의 세 번째 시집 <삼천갑자 복사빛>에 다시 ‘자작나무 내 인생’이란 시가 등장한다.

왜 하필 자작나무일까. ‘내 인생’이란 말을 얹어놓을 만큼 자작나무는 시인에게 각별한 것일까. 예의 순간, ‘내 인생’이란 말을 얹어놓을 수 있는 나무 한 그루 내게도 있는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는 순간!

“(······) / 길가에 벌(罰)처럼 선 자작나무 / 저 속에서는 무엇이 터졌기에 / 저리 흰빛이 배어 나오는 걸까 / 잎과 꽃 세상 모든 책들 다 버리고 / 해 달 별 세상 모든 빛들 제 속에 묻어놓고 / 뼈만 솟은 서릿몸 / 신경 줄까지 드러낸 헝큰 마음 / 언 땅에 비껴 깔리는 그림자 소슬히 세워가며 / 제 멍을 완성해 가는 겨울 자작나무 / (······)” - (정끝별의 시, ‘자작나무 내 인생’ 중)

시인 정끝별은 스스로 생각하기에 그다지 유별날 게 없었다는 어린 시절에 대해 들려주었다. 6남매의 막내 - ‘끝별’이란 남다른 이름이 버거웠던 수줍고 얌전한 소녀.

대단한 교육열을 보이셨던 아버지는 철저히 가부장적인 방식으로 자식들을 키우셨다 했다. 그녀가 열 살이 되던 무렵, 가족은 오직 교육을 이유로 고향을 떠나 서울로 이사를 왔다. 퇴근하신 아버지가 대문 안으로 들어오시면 나란히 책상 앞에 앉아 공부를 하고 있던 6남매는 자리에서 일어나 함께 아버지를 맞았다.

아버지는 귀가 길에 사 오신 여섯 개의 사과를 하나씩 6남매의 손에 들려주셨다. 잠들기 전까지 직접 자식들의 공부를 챙기시는 걸 잊지 않으셨다.

아버지의 지극한 교육열 덕이었는지 6남매 모두 나름의 좋은 결실을 맺었다.

그러나 대학생이 된 시인이 자신이 ‘다시 자라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막내딸, 여동생, 여성, 가부장적인 환경과 사고방식이 만들어놓은 자신의 고루한 틀을 깨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다. 부지런히 책을 읽었다. 문학을 만났고, 시를 썼다

. 사람을, 사회를,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눈을 갖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그 시절, 주변에 그런 노력을 기울이던 스무 살 청춘은 자신만이 아니란 걸 알았다.

“당시의 많은 여학생들이 그러했듯이 페미니즘에 심취했고, 아버지와 오빠들의 세계에서 벗어나기 위해 의식적으로 발버둥을 쳤어요. 가부장적인 모든 것,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장식적인 아름다움을 풍기는 모든 것들을 경멸하고 혐오했죠. 의식적인 노력 때문이었는지, 나중에는 여러 면에서 굉장히 중성적인 이미지를 갖게 되었어요.”

의식적인 발버둥으로 다시 자라야 했던 시간. 그러나 시인은 돌이켜보면 그 과정이 온전히 ‘자연스러웠다’고는 할 수 없는 시간이라 했다.

예의 ‘비로소’ 알게 되는 시간은 20대를 거의 다 지나온 뒤, 사랑과 결혼, 직업을 갖고, 두 아이를 낳아 엄마가 되고, 다시 10여 년의 시간을, 아플 것은 아파하고, 버릴 것은 버리고, 치러야 할 것은 치르고, 그런 와중에도 끝내 지켜야 할 것은 필사적으로 지켜낸 뒤에야 찾아온 것 같다고 시인은 말했다.

“새파란 마음에 / 구멍이 뚫린다는 거 / 잠기고 뒤집힌다는 거 / 눈물바다가 된다는 거 / 둥둥 / 뿌리 뽑힌다는 거 / 사태 지고 두절된다는 거 / 물 벼락 고기들이 창궐한다는 거 / 어린 낙과(落果)들이 / 바닥을 친다는 거 / 마음에 물고랑이 파인다는 거 / (······)” - (시, ‘오래된 장마’ 중)

강하고 아름답고 자연스러운 존재. 굳이 남성적일 것도 없이, 굳이 여성적일 것도 없이, 온전히 자기 자신인 순간. 물론 갈등과 고민과 괴로움은 여전히 존재한다. 하지만 어느덧, 아니 비로소, 조급해 하거나, 걷잡을 수 없이 들끓거나, 자신을 무의미하게 소모시키지 않게 된 것이다.

“예전에 꽃에 대한 좋은 시들을 모아서 소개해달라는 주문을 받은 적이 있어요. 이런저런 시들을 한참 들춰보던 중에, 문득 내 시들 중에 꽃에 대한 시가 유난히 없다는 걸 깨달았죠.

개인적으로 꽃보다 나무를 더 좋아하기 때문이라 스스로 이유를 붙여보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무언가가 있었어요. 유난히 연시(戀詩)가 없다는 깨달음도 결국 같은 맥락이었죠. 세 번째 시집에 와서 비로소 꽃과 사랑을 자연스럽게 얘기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그렇게 말하는 시인 정끝별은 차분하고 은은한 느낌의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그녀는 시를 쓰는 일 못지않게, 시를 통해 사는 일에도 어울리는 시인이다. 후배들과 제자들에게 시적 자극과 영감을 주고, 여러 사람들에게 좋은 시와 좋은 책을 권해주는 일. 그녀는 대학에서 시를 가르치고, 여러 매체를 통해 좋은 시들을 널리 알리는 일에 누구보다 열심이다.

정끝별의 세 번째 시집 <삼천갑자 복사빛>의 ‘삼천갑자’란 그녀가 시집의 자서(自序)에도 썼듯이 ‘18만년’이란 시간을 가리킨다. ‘비로소 18만년’이다. 서럽도록 두렵도록 아프고 기나 긴 시간이겠지만, 문득 눈부신 복사빛, 더없이 아름답기도 한 것이다.

“기다리고 기다리면 / 입처럼 항문도 막혀 / 온몸이 둥그렇게 말리기도 하겠지요 / 오지 않고 오지 않으면 / 오랜 천불 맘불이 / 타 들어가기도 하겠지요 / 가지 못하고 가지 못하면 / 웅 웅 울다 진 다 빠져 / 딱딱해지기도 하겠지요 / 뒤돌아보고 뒤돌아보면 / 그 자리에 우뚝 서버리기도 하겠지요 / 죽고 나면 뼈만 남겠지요 / 썩는 것들 더디기도 하겠지요 / 그렇게 한 백 년 / 먹먹한 눈물 냄새 피우며 / 모래와 바람과 더불어 살다 가겠지요 / 모래 되고 바람이 되겠지요” - (시, ‘돌의 사랑’ 전문)

커피를 마시며 얘기를 나누는 사이 그녀는 열 살배기 둘째 딸의 전화와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시인은 전화기 액정화면 속 딸의 문자메시지를 보여주었다.

곧 수영을 배우러 갈 시간이라는 걸 엄마에게 알리는 딸의 애교스러운 문자와 이모티콘 뒤에 ‘꼰꼰꼰꼰꼰’이라는 의성어 같기도 하고 의태어 같기도 한 암호(?)가 붙어 있었다. 꼰꼰꼰꼰꼰, 그것은 그것을 말하는 아이를 낳은 엄마만이 이해할 수 있는 온전한 시어(詩語)였다.

막연히 느낄 수는 있었지만, 확실히 알 수는 없었다. 꼰꼰꼰꼰꼰, 예의 자작나무처럼, 그것을 ‘비로소’ 알게 되는 순간이 내게는 언제쯤 찾아올지, ‘삼천갑자’의 시간을 가늠해보는 뜨거운 여름 오후였다.

● 시인 정끝별 약력

1964년 전남 나주에서 태어나 이화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동대학원 박사 과정을 마쳤다. 1988년 <문학사상>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으며, 199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평론부분에 당선되었다.

시집 <자작나무 내 인생>, <흰 책>, <삼천갑자 복사빛>, 시론집 <패러디 시학>, <천 개의 혀를 가진 시의 언어>, <오록의 노래>, 산문집 <행복>, <여운>, <시가 말을 걸어요>, <그리운 건 언제나 문득 온다> 등을 출간했다. 현재 명지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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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사진 - 이신조 소설가 zovenbang@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