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훔쳐보기' 10대들의 엇나간 도발 통해 우리시대 위험한 욕망 그려히치콕 감독의 스릴러 걸작 '이창'을 현대적 상황에 맞춰 재구성

남의 작품에서 받은 영감을 표현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패러디를 통해 경외심을 표하는 소극적인 방법을 쓸 수도 있지만 작품의 모티프와 메시지를 재해석하거나 다르게 각색하는 경우도 있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의 미덕을 오늘에 되살리는 리메이크는 그 중 가장 적극적인 존경의 표시 중 하나다. <디스터비아> 역시 그런 부류에 속한다. <디스터비아>는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스릴러 걸작 <이창>의 모티프를 현대적인 상황에 맞춰 재해석한다.

<테이킹 라이브스> <투 포더 머니>를 연출한 D.J 카루소 감독은 <이창>의 옆집 훔쳐보기 모티프를 차용하면서 관음증이 만연한 우리 시대의 초상을 10대들의 위험스러운 도발을 통해 풀어내고 있다.

■ 옆집 아저씨는 살인범?

명랑쾌활한 소년 케일(샤이아 라보프)은 낚시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교통사고로 아버지를 잃는 불운을 맛본다. 1년 후 케일은 수업시간에 아버지를 들먹이며 나무라는 스페인어 교사를 폭행해 3개월 간의 가내 구속 조치를 당한다.

발목에 센서가 달린 족쇄를 차고 집안에 갇힌 케일은 하릴없이 게임으로 시간을 죽이며 일과를 보낸다. 그 때 무료한 케일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새로운 일이 생겼으니 창문 밖 남의 집 훔쳐보기.

이사온 소녀 애슐리가 옷을 갈아입는 장면이나 이웃집 중년 남자의 불륜 행각, 옆집 아저씨가 언제 잔디를 깎으러 나오는지를 훤히 꿰차고 있을 정도로 케일은 점점 관음의 욕망에 빠져든다.

미칠 것 같은 지루함에서 비롯된 예리한 관찰일 뿐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호감을 가지고 있던 옆집 소녀 애슐리, 친구 로니가 이 충동적인 게임에 합류하면서 이제 멈출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하지만 호기심으로 시작한 훔쳐보기 도중 살인을 목격했다면? 이웃집 남자 머스탱(데이빗 모스)의 수상한 행동들이 살인과 연결되면서 상황은 더 이상 장난이 아니게 된다.

<디스터비아>의 관음증 소년 케일이 처한 상황은 여러모로 <이창>의 주인공 제프리의 처지와 흡사하다.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하는 강제감금의 상태에 놓여있다는 것(물론 제프리는 다리에 기브스를 해 미동도 할 수 없는 처지라는 점에서 더 심각한 족쇄를 차고 있다)은 물론, 한 번 탐닉한 관음증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도착상태에 빠진다는 점, 그리고 이 같은 비뚤어진 욕망에 의해 극한의 위험에 처하는 처벌을 받는다는 점 등에서 그러하다.

모험적인 현장지향형 사진작가 제프리가 초롱초롱 호기심 어린 눈빛을 빛내는 청년 케일로 바뀌었다는 걸 빼면 <디스터비아>는 <이창>의 현대판이라 부르기에 모자람이 없다.

리메이크임에도 불구하고 <디스터비아>는 굳이 오래된 이야기를 다시 꺼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 만큼 영화가 소재로 삼고 있는 '관음증'이 심화, 확대된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훔쳐보기'의 시대라고 해도 좋을 만큼 현대사회는 엿보기의 메커니즘이 일상화됐다. 영화 속에 나오는 망원경, 핸드폰, 비디오 카메라, CCTV, 게임기, 아이팟, 컴퓨터 등 세상은 더 이상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보장하기 힘든 환경으로 이미 변해버렸다.

10대 청소년들은 누구보다 그런 기기들의 조작에 능하고 몰래카메라, 유투브 등을 통해 자신만의 '작품'을 연출하고 만들 수 있다.

휴대폰에 달린 카메라로 몰래 촬영을 해 실시간으로 전송하고 감시 카메라를 몸에 부착하고 살인자의 집을 탐문하는 등 그들이 못할 것은 없다. 망상에 불과할지라도 그들의 상상력은 얼마든지 현실화될 수 있는 것이다.

<디스터비아>는 제목이 뜻하는 것처럼, 영화는 이 같은 '평화를 훼방하는' 현상들이 만연한 우리 시대의 도착적 욕망을 건드린다.

■ 로맨스와 스릴러의 접목

<디스터비아>는 다소 욕심이 많은 영화다. 기본 얼개는 스릴러 관습을 따르고 있지만 이종적인 장르들을 교배한 혼성 장르 영화의 꼴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스릴러 영화로서 장점이 본격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살인자와의 심리전이 고조되는 중반부 이후부터다. 우연히 시작한 엿보기가 병적인 집착으로 바뀌는 순간, ‘호기심의 대가’가 무엇인지를 확인하게 되는 일들이 벌어진다.

물론 위험에 처한 주인공이 다시 안전한 상태로 돌아가는 것으로 귀결되지만 그렇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된 건 아니다. 주체할 수 없는 그 놈의 욕망을 어쩌지 못하는 한 언제고 다시 재앙이 찾아오지 말라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주인공을 10대 소년으로 바꾼 덕에 <디스터비아>는 현대사회의 병리현상에 대한 진지한 탐구에만 머물지 않는다. 10대 소년, 소녀의 풋풋한 로맨스를 한 축에 놓고 그 또래가 가질법한 엇나간 호기심이 어떤 위험천만한 상황을 야기할 수 있는지에 대한 교훈적 메시지가 또 다른 축을 형성한다.

제동장치가 없는 방종한 10대들의 수난을 다룬다는 점에선 10대 공포영화의 관습을 따르기도 한다. 이 모든 요소들을 적절하게 섞어낸 D.J 카루소 감독의 연출력은 기대 이상이다. 자칫 중심이 없는 이야기가 될 법도 했지만 여러 장르의 장점을 황금비율로 배분한 솜씨가 출중하다.

미국 개봉 당시 박스오피스 3주 연속 1위를 차지한 것은 이 같은 조화로운 오락적 감각 때문이다. <트랜스포머>의 얼치기 고등학생으로 국내 팬들에게 얼굴을 알린 샤이아 라보프는 주체할 수 없는 호기심으로 위기에 처하는 소년 케일을 자식 식대로 묘사한다.

호들갑스럽지만 저돌적이고 의외의 순간 용기를 발휘하는 케일의 다층적인 캐릭터를 그 만큼 활기차게 연기할 배우는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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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원 영화평론가 jangping@film2.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