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는 진화한다

아, 이 사람도 공기(空氣)를 느끼느라 힘겹겠구나, 색도 소리도 맛도 냄새도 질감도 없는 공기를 보고 듣고 맛보고 냄새 맡고 만지느라 힘겹겠구나, 외롭겠구나, 그런 생각을 했었다.

시인 이 원이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고, 맛볼 수도 냄새 맡을 수도 만질 수도 없는 공기를 보고 듣고 맛보고 냄새 맡고 만져서 탄생시킨 공기의 이미지들······.

“세계와의 불화가 에너지인 사람들 / 사이로 공기를 덧입은 돌들이 / 둥둥 떠다닌다”, “떠나온 곳을 알 수 없는 한 떼의 공기 / 주전자의 보리차처럼 그림자에게 쏟아져 내린다”, “너의 이름과 주소에서는 / 온통 수선화의 우주가 만져지겠지 / 공기도 리듬의 붕대를 풀 거야”, “공기의 귀가 떨어져 나가 사방에서 / 바람이 몰려들고 있어”, “하늘이 자주 지퍼를 배꼽 근처까지 내리고 / 레고블럭 같은 공기들은 허공에 끼워지고 있다”, “공기가 알을 낳는다”, “집 안에서 들려오는 피아노 소리가 허공을 재봉틀처럼 박아간다”, “단단한 사과 하나가 새벽의 공기 위에 떠 있다 / 이 사과는 관념에 물든 사과다.”

아, 이 사람도 잠수함의 토끼처럼 전조(前兆)를 느끼느라 힘겹겠구나, 인간보다 더 철학적이고 멜랑콜리한 사이보그들이 등장하는 SF영화의 한 장면 같은 잿빛 세상, 디스토피아로 치닫는 음울한 미래, 시인 이 원이 불길한 예지몽처럼 만들어낸 어둡게 번뜩이는 ‘현대’의 이미지들······.

“나는 그 순간의 ‘나’를 눌러 그 세월을 프린트하기 시작했다 간혹 빛바랬거나 지워진 곳들도 있다 호흡을 중단했던 곳에서는 잠깐 프린트가 중단되기도 한다”, “내 몸의 사방에 플러그가 / 빠져나와 있다 / 탯줄 같은 그 플러그들을 매단 채 /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다”, “휴대폰을 받다 얼굴이 떨어져 깨져버렸다 깨진 조각 하나를 들어 오른쪽 팔목을 그었다 비틀린 혈관 하나 끊어지자 해가 땅에 뚝 떨어진다”, “실습용 재료 같은 사내와 여자가 나란히 검은 주유기를 제 옆구리에 꽂고 서 있다 그들은 서울의 밤이 꿈 대신 선택한 텍스트이다”, “흰 변기에 파탄 같은 알몸의 한 사내가 주저앉는다 / 두 다리 사이에 파묻은 사내의 머리는 납작하다 / 출구가 없는 그의 몸에서 그림자가 흘러내린다”

공기든 전조든 그것은 결국 기운(氣運)이다. 에너지다. 희로애락에 근거하는 소박한 서정만으로는 온전히 아우를 수 없는 거대한 무엇, 복잡다단한 무엇이다. 그것은 어떤 리듬, 감히 우주적인 리듬에 관여하고 있다.

아, 이 사람도 - 짐짓 서글프고 애틋한 느낌. 그러나 그런 만큼 묘한 동질감과 은밀한 연대감을 느껴온 터였다. 시인 이 원이 만들어낸 이미지에 매료된 지 10여 년, 늦더위가 유난했던 여름의 끝자락 그녀를 처음으로 만났다.

이 원은 여리고 차분하고 선명하고 다감하고 사려 깊었다. 그리고 몽상가였다. 나는 그 모두를 좋아한다. 그러나 그로 인해 치러야 할 대가를 알기에 마냥 좋다고만은 하지 못한다. 어쩌면 인간을 말할 수 있는 진짜 권리는 사이보그에게만 있는 것인지 모른다.

“내 도구가 언어라는 걸 꽤나 늦게 깨달은 편이에요. 책벌레 문학소녀는 전혀 아니었어요. 글을 쓰고 싶다고 열망한 적도 없었고요.

그런데 왜 서울예대 문예창작과에 들어갔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데, 대입 원서를 쓸 무렵 잘 알지도 못하는 누군가에게서 우연히 그런 말을 들었어요.

예대 문창과에 가면 꽃잎이 허공을 둥둥 떠다닌다고. 좀 우스운 얘기 같겠지만 이상하게 그 말이 잊히지 않았어요. 마음 속 깊은 곳의 무언가를 건드린 느낌. 물론 그만큼 학과 분위기가 예술적이라는 비유적인 표현이었겠지만 결국 그 한 마디에 원서를 내고 시험을 본 게 되어버렸어요.”

이 원은 중학생이 되던 해 낯선 서울에서 살기 시작한다. 스스로 ‘훼손’이라 부를 만한 신변의 큰 변화를 겪은 직후였다. ‘사춘기’라는 말로는 온전히 설명할 수 없는 자신의 복잡한 내면을 조금씩 감지해간다.

소녀 이 원은 어느 날 집안 어딘가에서 수동카메라를 찾아낸다. 필름을 넣을 줄도, 초점을 맞출 줄도 모른다.

물론 디지털카메라도 폴라로이드도 없던 시절이다. 블로그나 미니홈피란 그야말로 SF이자 사이보그인 시절이다. 그러나 어쨌든 소녀 이 원은 사진을 찍기 시작한다. 단순한 취미 생활이 아니다.

이미지의 시작이다. 표현의 시작이다. 하늘의 구름이 변하는 모습을 시시각각, 책상 위에 올려 둔 사과가 썩어가는 모습을 매일매일, 소녀는 이미지와 표현을 ‘낳기’ 시작한다. 도구가 필요한 삶, 이 원은 막연히 사진을 찍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11년 전 출간된 이 원의 첫 시집 자서(自序)에는 ‘이 막막한 첫 시집을, 스승께 바친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시간이 흐르고, 올해 발표된 그녀의 세 번째 시집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오토바이>의 첫머리에는 ‘제 언어의 맨 처음에 계시는 오규원 선생님 영전에 바칩니다’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언어의 처음’을 시작할 수 있게 이끌어 준, 이 원의 진짜 도구를 찾고 사랑하게 해 준 스승의 죽음. 사제 간의 정을 실감할 수 있는 그럴싸한 일화 한 토막을 청하는 것이 너무 얕은 짓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미 학생문사(文士)로 중고교 시절부터 이름을 날리던 동기, 선후배들이 과에 가득했어요. 그에 비하면 전 문학에 무지하다 싶을 정도였고요. 문학을 알게 되고 시를 흠모하게 되었지만 주눅이 들어 있을 수밖에 없었죠.

이미 시를 잘 쓰기로 소문이 나 있던 학생들에게 오규원은 선생님은 ‘네가 시에 대해 알고 있는 모든 걸 버려라’라고 엄하게 말씀하실 때가 많았어요. 그런데 제게는 늘 좀 다른 차원의 얘기를 들려주셨어요. ‘너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고. 이제야, 이제야 그 뜻을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원의 세 번째 시집에는 무엇보다 거울의 이미지가 가득하다.

“거울에 들어가 거울을 생각하면 거울이 달아난다”, “거울 : 내가 들여다보면 내가 사라져버리는 벽 또는 언어”, “거울의 꿈은 제 내부를 온전하게 텅 비우는 것이다 꿈은 이루어지지 않을 때까지만 꿈인 것이어서 거울은 계속 실존한다”, “거울 : 내가 밖으로 나와도 내가 사라지지 않는 내가 갇혀서 끓고 있는 진창”, “거울로 들어가는 문을 찾지 못해 내게는 오늘의 밤이 계속 된다 얼굴이 낯설어진다 내가 거울 밖으로 고개를 다 돌리기도 전에 거울 속의 얼굴이 뒤통수를 보인다 사랑은 공포여서 나는 거울 밖으로 걸어 나온다 몇 걸음도 걷지 못하고 나를 두고 거울의 밤 속으로 사라진 얼굴이 벌써 그립다”, “거울 속에서 얼굴이 달린다 가도 가도 끝없는 거울이다 거울의 풍경이 바뀌지 않는 것은 안이 온통 사막이기 때문이다”, “방은 거울이다 / 방의 어디에서나 내가 보인다 / 나는 늘 구석구석의 내가 어리둥절하다”

거울 뿐만이 아니라 물론 공기도, 전조도, 초현실적 디스토피아도 여전하다. 그러나 그것은 동어반복이 아니다. 진화(進化)다. 시인 스스로도 밝혔듯이 이미지의 진화다.

“이미지는 스스로 운동한다. 평면적이고 수동적인 풍경들은 스스로의 운동을 통해 입체적이고 능동적인 이미지가 된다. 즉 나만 풍경을 들여다보는 단방향이 아니라 풍경 스스로가 제 속을 열어 보여주는 쌍방향이 된다. 점층적으로 변화하면서, 이미지는 진화한다.”

이 원과 나는 서태지와 자코메티와 존 배와 영화 <아무도 모른다>와 <내 곁에 있어줘>와 키냐르의 소설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예의 ‘입체적이고 능동적인’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우리는 사이보그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사이보그는 말한다. 아니 외친다. 사이보그처럼 존재하는 인간들은 참을 수 없다고, 견딜 수 없다고.

저물녘, 헤어질 곳에 도착하기 위해 그녀와 함께 여전히 더운 거리를 걸었다.

그 시각 미처 알지 못했지만, 해와 달과 지구, 개기일식이 일어나고 있었다. 며칠 뒤 함께 하늘이라도 올려볼 걸 그랬다는 메일을 보내자, 그녀는 애니메이션 <시간을 달리는 소녀>을 보고 ‘미래에서 기다릴게’라는 대사를 메모해 두었다는 답장을 보내왔다.

지난겨울, 시인 오규원 선생의 부음을 들었던 날, 빈소를 찾지 못한 나는 종일 그의 시집들을 꺼내 읽었다. 시인 이 원에 대한 글의 마무리를 시인 오규원의 시로 대신하는 것 - 우리의 도구가 결국, 끝내, ‘언어’이기 때문이다.

“개울가에서 한 여자가 피 묻은 / 자식의 옷을 헹구고 있다 물살에 / 더운 바람이 겹겹 낀다 옷을 / 다 헹구고 난 여자가 / 이번에는 두 손으로 물을 가르며 / 달의 물때를 벗긴다 / 몸을 씻긴다 / 집으로 돌아온 여자는 그 손으로 / 돼지 죽을 쑤고 장독 뚜껑을 / 연다 손가락을 쪽쪽 빨며 장맛을 보고 / 이불 밑으로 들어가서는 / 사내의 그것을 만진다 그 손은 / 그렇다 - 언어이리라” - (오규원의 시, ‘손-김현에게’ 전문)

● 시인 이원 약력

1968년 경기도 화성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성장했다.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와 동국대학교 문예대학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1992년 <세계의 문학>을 통해 등단했으며, 시집 <그들이 지구를 지배했을 때>, <야후!의 강물에 천 개의 달이 뜬다>,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오토바이>를 출간했다. '현대시학 작품상'과 '현대시 작품상'을 수상했다.

<저작권자 ⓒ 한국아이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글, 사진 - 이신조 소설가 zovenbang@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