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8일 남장 체험' / 노라 빈센트 지음 / 공경희 옮김 / 위즈덤하우스 발행 / 1만1,000원

스포츠와 타잔 놀이를 좋아하는 선머슴 같은 소녀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노라 빈센트. 자라서 페미니스트이자 레즈비언이 된 그는 ‘진짜 남자들의 삶’을 궁금해 한다. 엿보기가 아닌 진짜 남자로서 살아보면 어떨까. 보통 사람이라면 감히 꿈꾸지 못할 이 대담한 생각을 노라는 실행에 옮기기로 결심한다.

가장 먼저 이름을 바꿨다. 노라에서 네드로. 수염을 감쪽같이 붙이고, 헤어 스타일은 상고 머리로 깎았다. 얼굴선이 두드러져 보이도록 각진 안경테를 사서 썼다.

컵이 없는 스포츠 브래지어로 가슴을 누르고 운동으로 근육을 키웠다. 마지막으로 ‘물렁물렁 조’라는 이름의 인공 성기까지 붙였다.

맨 처음 찾아간 남자 볼링 팀에서 네드는 ‘악수’를 통해 처음 남자들의 세계를 접한다. 밖에서는 ‘마초식’으로 보였던 ‘퍽’ 소리 나도록 강한 악수.

이 악수에는 놀랍게도 여성의 인사와 다른 따뜻함과 연대의식이 배어 있었다. 그는 “처음 만난 이 남자가 내 손을 잡자 진정한 뭔가를 받은 기분이었다. 그는 나를 자기들 속에 끼워준 것이었다. 하지만 내가 악수나 포옹을 해본 여성들은 대부분 거리감을 두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첫 탐험지와 달리 이후의 여로는 험난했다. 겨우 12살 때 아버지에게서 “여자에 대해서는 4F만 알면 된단다. 여자를 찾아서(Find) 느끼고(Feel) 잠자고(Fuck) 잊어버려라(Forget)”는 조언을 들은 ‘필’과 함께 네드는 스트립 클럽에 거의 매일 출근하다시피 하면서 남성의 성욕을 탐구한다.

그는 구역질 날 정도의 음담패설을 주고 받고 스트립걸의 서비스까지 체험한 뒤 “아무리 훌륭한 교육을 받고 능력이 뛰어나서 성공했을지라도 남자들은 여전히 머릿속에 누드 영화를 담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네드는 남자들이 자신들의 근본적인 욕망 때문에 오히려 고통스러워 한 것처럼 보였다고 서술한다.

수도원에 간 네드는 그곳에서 남자들의 불행을 느낀다.

그곳에서 남자들은 고통을 하소연하거나 위로와 연민을 바라서는 안 됐다. 남자로서 취직을 하고 영업사원으로 일하면서부터는 여성의 사회 진출에도 불구하고 남자들이 여전히 여자와 가족을 책임져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548일 동안의 남장 체험을 통해 노라는 무엇보다 남성들이 감추고 있는 마음 속 상처를 깨닫게 된다. 그는 “남자들이 사실은 가면 뒤에서 울고 있다”고 말한다.

여성들이 눈물, 환희, 염려, 절망 등 여러 가지 감정으로 스스로를 표현하는 동안 남성은 허세 속에 감정을 감추거나 단 한 가지 감정, 분노만을 표출한다는 것.

노라로 돌아온 저자는 “그들의 고통은 자신들의 노력에 의해서 조금씩 치유되겠지만, 우리 여자들의 보살핌과 진정 어린 관심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결론 내린다.

생생한 체험을 바탕으로 써 내려간 이 책은 빠르고 쉽게 읽힌다.

상당수 여성 독자들은 남성들만의 세계를 엿보는 호기심에 손을 떼지 못할 재미를 느낄 수도 있다. 단 남성 독자들에게는 여성이 남장을 하고 그들의 세계에 들어가서 생활을 해 본다는 생각 자체가 자신만의 공간을 침범 당한 것 같아 불쾌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겨우 1년 반 동안의 체험을 통해 남자라는 존재에 대해 다 안 것처럼 말하는 것 자체가 우습다고 폄하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렇게 논박하기 위해서라도, 한번쯤 책을 읽으면서 노라가 발견했다고 생각한 남자들의 본성이 실제 남성인 자신이 느끼는 것과 얼마나 비슷하고 얼마나 다른지 한번 들춰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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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주 기자 pariscom@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