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스타 공연장·촬영장에 아줌마들의 환호성예전의 오빠부대, 주부 돼서도 '그 열정 그대로'

‘ 이모팬(姨母 fan)’이 뜨고 있다.

최근 국립 국어원의 신조어 조사 결과 ‘이모 팬(姨母 fan)’이 올라왔다. ‘이모’를 좋아하는 사람?, 혹시 새로운 필기도구? 아니다.

자신보다 한참이나 어린 ‘아이들’, 10~20대 청춘 스타들을 열성적으로 좋아하는 중년 여성. 그들이 보통 연예인의 이모 뻘이 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스타를 좋아하는 중년의 아줌마들이 든든한 지원군이 돼 ‘이모팬’으로 돌아온 것.

‘이모팬’들이 기꺼이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Idol) 스타의 손과 발이 되며 당당하게 부상하고 있다.

예전 가수들의 공연장이나 탤런트들의 촬영장에는 ‘오빠, 사랑해요’ ‘오빠 너무 멋있어요’ ‘오빠, 오빠!’ 하고 외치는 10대 소녀팬들이 대부분이었다. 그 가운데서 점잖게 자리를 차지하고 자식을 바라보듯이 뿌듯하게 그들을 쳐다보는 어르신들도 간혹 찾아볼 수 있었다.

그러나 요즘 공연장이나 촬영장의 풍경은 예전과는 사뭇 다른 모습들이 연출된다. 커다란 현수막과 플래카드에 적힌 ‘ㅇㅇ야, 멋지다!’ ‘누나가 왔다, ㅇㅇ야’ ‘누나가 지켜줄게!’ 라는 과감한 표어들이 그것이다. 이들 표어의 주인공들, 바로 ‘이모팬(姨母 fan)’이다.

오빠가 아니라 ‘ㅇㅇ야~’를 외치며 당당히 문화적 코드로 자리잡고 있는 이모팬. 아이돌 스타에 열광하는 모습을 10대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했었지만 이제 더 이상 그렇지 않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팬 문화’를 접한 세대가 지금 30,40대 이모팬들을 이룬다. 1970년대 당시 아이돌 스타를 향한 팬 문화가 처음으로 형성됐고, 그때의 10대 소녀들이 자라서 지금의 이모팬이 된 것이다.

게다가 요즘의 30,40대들은 과거와는 또 다른 모습이다. 의견표출을 자제하거나 자신의 욕구를 억제하는 그런 세대가 아니다. 오히려 자유롭게 표현하고 과감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요즘 30, 40대들의 특징이다.

이러한 신세대 아줌마들의 특징은 ‘팬 클럽’처럼 집단을 형성하면서 더욱 강해진다. 집단의식으로 뭉친 그들은 주변의 시선에도 용감해지고, 심지어 자신이 누구인지 조차도 잊는다.

연예인들의 점차 낮아지는 연령도 ‘이모팬’ 열풍을 부추겼다.

YG 엔터테인먼트의 빅뱅은 멤버들의 연령이 16세에서 19세까지 평균 연령이 18세가 채 넘지 않는다. SM 엔터테인먼트의 동방신기 역시 평균연령이 19세이다. 얼마 전 데뷔무대를 가진 아이돌 그룹 FT아일랜드 멤버들은 국내남성그룹 중에서 가장 어린 15세의 평균연령을 자랑한다.

이렇게 연예인들의 데뷔 연령이 20세가 채 되지 않고, 준비 기간까지 고려하면 초등학생 때부터 이미 연예계 생활을 준비한다고 할 수 있다. 주로 10대와 20대들을 겨냥한 방송프로그램의 제작 추세가 어린 연예인들을 키워내고 있는 것이다.

동방신기 20대 팬 카페 회원 김희진(27세)씨는 “동방신기의 팬 카페 운영자들은 거의 20대 후반에서 30대다. 내가 아는 이모팬 한모(37세)씨는 딸과 함께 콘서트 관람은 물론 방송 프로그램 모니터링까지 같이 한다.”고 밝혔다.

또 김씨는 “들리는 소문에 빅뱅의 이모팬들은 주로 죽, 인삼, 과일 같은 보양식을 선물하며, 연습이 끝난 멤버들을 끝까지 남아 응원하는 등 더 열성이다. 게다가 그들 중에는 ‘서태지와 아이돌’로 활동을 할 때 양현석의 열성팬이었다가 빅뱅까지 이어서 좋아하게 된 경우도 많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아이돌 그룹 슈퍼주니어의 이모팬 박모(33세)씨는 “나는 ‘평생카아’라는 아이디로 주로 인터넷 상에서 팬 활동을 한다. 그냥 다섯 아이돌에게 시선이 멈춰진 사람이고, 그 이후로 세상을 좀 더 진실되게 바라보고 부단히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한 사람이다.”라고 박씨는 얘기한다.

아이돌 스타를 좋아하는 이모팬들은 스타들을 좋아하면서 생활의 활력을 얻고, 한살 한살 어려지는 기분을 공통적으로 느낀다고 한다. 또 “아침에 일어나 내가 좋아하는 스타들의 음악을 들으며 하루 일과를 정리하는 것도, 습관적으로 팬 카페를 둘러보는 것도 이제는 당연한 일상이다”며 들뜬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이제 이모팬들은 풍부한 경험과 경제적인 여유를 겸비해 아이돌 스타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고 있다. 이들은 음반 구입이나 공연에 아낌없이 돈을 투자한다. 동방신기는 국내외에서 발매된 CD가 50여 가지나 되지만 이모팬들은 구입을 주저하지 않는다.

그들이 MP3나 음악파일 불법복제로 최근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음반시장에 새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숙명여대 정보방송학과 안민호 교수는 “이처럼 아이돌 스타에 열광하는 이모팬 문화는 새로운 스타와 팬의 관계를 형성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칫 무료해 질 수 있는 중년 여성들의 생활 만족도를 높여주고, 그들에게 활력소를 제공한다.

이모팬들은 아이돌 스타를 통해 젊음에 대한 향수와 욕구를 느끼고, 건강한 취미생활도 함께 해나갈 수 있는 것”이라고 진단한다. 이어 “일상 생활에 지장을 준다면 문제가 된다. 그러나 떳떳한 감정 표출로 정신 건강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면 ‘이모팬’ 문화는 권장할만하다”고 덧붙였다.

아이돌 스타의 든든한 지원군이자 더 나아가 건전한 팬 문화 형성에도 기여할 수 있는 이모팬들의 활동, 앞으로 더욱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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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선희 기자 leonelgar@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