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락주의란, 인간의 행복을 위해 감각적 쾌락이나 만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입장을 의미한다. 쾌락은 인간의 삶에서 필요한 것이지만, 최고선으로 간주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왜냐하면, 우리가 쾌락을 최고선으로 추구하게 되면, 개인의 보람된 삶과 공동체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 요청된 많은 선(善)들이 피해를 입거나 희생당하기 때문이다.

-교육인적자원부, 고등학교 도덕

감각적 쾌락주의자는 행복을 쾌락의 총합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감각적 쾌락은 그 정도에 비례해서 고통이나 불쾌감이 따른다. 오히려 육체적 쾌락을 멀리함으로써 고통이 없는 쾌락을 느낄 수도 있다.

-교육인적자원부, 고등학교 시민윤리

“남자들은 야동을 많이 봐요.” 고등학교 1학년을 대상으로 아니무스(남성성)과 아니마(여성성)에 대한 강의를 할 때 터져 나온 한 여학생의 대답이다.

원래 질문은 “남성과 여성은 어떻게 다른가?, 그리고 왜 다른가?”였다. 엉뚱한 답변에 반 전체가 웃음바다가 됐지만, 나는 순간 벌개지는 몇 남학생의 얼굴을 놓치지 않았다.

나는 짓궂게도 한 남학생에게 “OO야, 넌 일주일에 몇 번이나 보냐?”라고 물었다. 그 학생의 얼굴은 더욱 빨개졌고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나는 그 학생의 모습에서 십 수 년 전의 내 모습을 보았다.

물론, 나의 학창시절에는 요즘처럼 손쉽게 ‘야동’을 구할 수 없었다. 간혹 몇몇 앞서가는 친구들이 무엇인가 구했다는 소식이 들려오면 우리는 방과 후 그 친구의 집에 가서 단체로 그 ‘쑈’를 관람했고, 집으로 돌아오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그 자극적인 영상들을 곱씹으면서, ‘스스로를 위로’하곤 했다. 그리고 왜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묘한 죄책감과 두려움을 느꼈다. 얼굴이 벌개진 위의 남학생처럼.

남자고등학교에서 수업할 때, 암울한 분위기를 일신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야동에 대한 ‘썰’을 푸는 것이다.

그러면 병든 닭처럼 졸던 인간들도 벌떡 일어선다. 이 방법은 시간과 장소를 불문하고 잘 먹힌다는 사실을 여러 차례의 개인적 실험을 통해 확인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학생들과 야동과 관련된 음담패설이나 즐기는 건 절대로 아니다.

나는 위에서 언급한 내 경험을 이야기해주면서 성욕을 충족시킬 때의 쾌감과 그 뒤에 찾아오는 알 수 없는 죄책감을 너희도 느끼느냐고 묻는다. 몇몇은 그렇다고 대답하고, 몇몇은 또 얼굴이 빨개진 채 고개를 숙인다.

물론 죄책감 따위는 전혀 모르는 순수한(?) 영혼들도 여럿 존재한다. 결론적으로, 죄책감은 야동 때문이 아니라 야동을 보면서 했던 수음(手淫) 때문이다.

포르노그래피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자가 아니고서야 야동을 그 자체로 감상하는 사람은 드물다.

야동은 결국 자위를 위한 수단이다. 포르노그래피는 성관계의 대상이 부재하거나 성관계가 금지된 상황에서 인위적으로 성적 자극을 촉발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발전해왔다. 물론, 섹스를 둘러싼 사회적 분위기에 따라서 시대마다 포르노그래피를 허용하는 폭은 달랐다.

18세기 유럽의 <동부르그 이야기>처럼 포르노그래피를 사회비판의 수단으로 사용했던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최근의 경향을 볼 때 포르노그래피는 성적 상상력을 자극하여 자위를 돕는 수단 그 이상은 아닌 듯하다.

포르노그래피의 주된 소비자는 성적 파트너가 없는 남성이다. 일반적으로 2차 성징 이후, 남녀가 모두 정상적인 성행위가 가능하다는 점을 생각해 볼 때(춘향과 몽룡은 16세의 나이에 온갖 체위를 무리 없이 소화해내었다는 점을 상기하자), 사춘기의 남성들에게 포르노그래피와 자위는 미쳐 날뛰는 테스토스테론(남성호르몬)을 잠재울 수 있게 해주는 안전밸브와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평범한 남성이라면 사춘기부터 자위에 심취하는 게 정상이다.

인간 남성들은 다른 어떤 동물들보다 맹렬하게 자주 자위를 한다. 그런데 이러한 행위에는 성욕을 해소하여 테스토스테론의 혈중농도를 조절하는 것 외의 어떤 기능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자위를 통해서는 후손을 얻을 수도 없을 뿐더러, 엄청난 양의 순수 단백질인 체액과 정자들을 헛되게 손실시키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자위는 몸의 어딘가가 가려우면 긁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행위이다. 성욕 자체가 죄악이 아니고서야 성욕을 해소하기 위한 자위가 죄일 까닭이 없다.

또한 자위를 한다고 해서 누구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자위는 성욕이 엉뚱한 곳으로 튀지 않도록 조절해주는 긍정적 기능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사회는 청소년의 자위에 대해서 일관적으로 억압정책을 취해 왔다.

성욕 관리는 푸코가 말한 생체권력(bio-power)이 택한 전략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청소년들의 성욕을 통제하여, 그들을 이 사회가 원하는 주체로 빚어내라!’

창세기 38장에는 인류 역사상 최초로 자위를 한 ‘오난’이 등장한다(그래서 자위를 오나니(onanie)라고 한다). 과부가 된 형수와 아이를 만들라는 율법을 거부하기 위해서, 형수와 동침 전에 자위를 한 오난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죽었다.

이 때문인지 기독교 문명권에서는 자위를 금기시한다. 오난의 경우에는 자위를 이용해 하나님의 명령을 어겼기 때문에 저주받았지만, 기독교에서 자위를 금기시하는 주된 이유는 육체적 욕망이 죄악의 근원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심지어 일부 성직자들은 청소년들에게 자위를 하면 지옥에 떨어진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한편, 잘못된 의학 지식들은 자위에 대한 부정적 편견을 널리 유포시켰다. 예컨대 자위를 하면 머리가 나빠진다거나 정신병에 걸린다는 것이다.

교과서도 마찬가지다. 교과서 어디를 찾아보아도, 자위에 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사회의 온갖 문제들을 다루는 교과서에서 청소년들이 보편적으로 경험하는 성욕과 그 해소 방법에 대한 설명이 빠져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한국 사회가 청소년의 성욕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를 반영한다.

교과서에서는 그저 감각적 쾌락이나 만족을 지나치게 추구하는 경향을 ‘쾌락주의’라고 정의하면서, 감각적 쾌락만을 추구하지 말라고 경고할 뿐이다. 더 나아가, 감각적 쾌락을 멀리하고 고통 없는 쾌락을 추구해 볼 것을 권고하기도 한다(학생들을 모두 수도승으로 만들겠다는 말인가?).

자위조차도 금지하는 분위기 속에서 성관계는 오죽하랴! 이래저래 한국 사회에서 청소년들의 성욕은 철저한 통제의 대상이다.

육체적 욕망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학생들이 자위에 대한 죄책감을 갖도록 만들기에 충분하다. 그렇지 않아도 고민거리가 많은 한국 청소년들은 전혀 쓸데없는 고민거리를 하나 더 안고 살아가는 셈이다.

그러나 자위를 긍정하는 것과 포르노그래피를 긍정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는 점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수업시간에 야동과 관련된 이야기를 할 때도 항상 이런 점을 강조한다. 시각적 자극에 민감한 남성은 다양한 성적 만족을 위해서 다양한 시각적 자극을 추구해왔다. 이 때문에, 포르노그래피의 시각은 철저히 남성 중심적이다.

성적 욕망을 위해서 여성을 대상화하고, 여성의 수동성을 강조하며, 여성의 욕망에 대한 왜곡된 정보들을 양산한다. 심지어는 성인들조차 야동에서 보고 배운 대로 했다가 짐승 취급받기 일쑤다(남성들을 위한 고민상담 게시판에는 이런 내용의 상담이 꽤 있다).

하물며 다양한 이성 관계를 경험하지 못한 청소년들에게 야동은 심하게 왜곡된 이성관을 심어줄 수 있다.

단지 사정(射精)을 위해서만 달려가는 시각적 자극의 파노라마 속에 등장하는 여성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단백질 인형일 뿐이다. 야동 속에는 두 인격체가 맺는 성관계는 없다. 단지 발정 난 수컷과 그를 위해 준비된 ‘섹스머신’만이 존재할 뿐.

야동을 보지 말라고 해도 학생들은 야동을 보려 들 것이다. 아니 반드시 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턱대고 야동을 못 보게 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과 제대로 대면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

자신의 욕망을 긍정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인간은 반드시 타인에게 고통을 주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렇게 가르치는 게 낫다. “청소년이여 자위권(自慰權)을 누리라! 그러나 야동 속의 거짓 성관계에 속지 말라!”

● 심원 TOPIA 논술 아카데미 선임연구원 약력

- 1977년생 - 서울대 종교학과 졸(2004년) - 서울대 대학원 언론정보학과 졸업(2006년) - 현 TOPIA논술아카데미 강사 - TBS 교통방송 <윤은기의 굿모닝 서울> 문화 평론 프로그램‘이반의반격’진행 - EBS 손석춘의 <월드FM> 문화 평론 프로그램‘이반의 천변풍경’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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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원 http://creativelab.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