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란한 무예와 음악… 눈과 귀가 즐겁다

중국어를 한마디도 몰라도 좋다. 무대 위 스크린으로 우리말과 영어 자막해설이 또박또박 흐른다. 독특한 의상과 분장이 내뿜는 화려한 원색감만으로도 내내 시선을 뗄 수 없다. 섬세하고 매혹적인 몸짓이며 손끝, 발끝 표현 하나하나까지 온 움직임새가 눈길을 붙든다.

중국의 경극 ‘백사전(白蛇傳ㆍ 흰 뱀의 전설)’이 서울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을 찾아왔다. 백사전은 우리나라의 구미호나 구렁이 이야기처럼 중국과 아시아 일대에 구전되는 유명한 전설중 하나다.

먼 옛날, 아미산에 천년을 수련한 뱀 두 마리, 백사와 청사가 있었다. 각각 백소정과 소청이라는 이름으로 인간의 여인네 행세를 하고 살던 이들은 항주 서호(西湖)를 노닐다 젊은이 허선을 만난다.

백소정이 허선과 부부의 연을 맺지만, 지나던 승려 법해가 백소정의 정체를 알아채고 허선에게 이를 알리며 경고한다. 법해의 권유에 따라 허선은 백소정에게 단오날 웅황주를 먹였다가 흰 뱀으로 변한 아내를 보고 이에 놀라 죽는다. 백소정은 남편을 살리기 위해 갖은 고생 끝에 선산에서 영지를 구해온다.

되살아난 허선은 아내의 진심에 감동해 백년해로를 맹세한다. 이들 부부는 곧 아들을 낳지만, 아기가 백일을 맞는 날 법해가 찾아와 백소정을 탑에 가둔다. 이를 본 소청이 아미산으로 돌아가 더 기량을 연마한 뒤 마침내 백소정을 구출해낸다.

중국 국립경극원이 펼친 이번 공연은 쑨 꾸이 위엔이 연출을 맡았다.

중국 국립경극원은 중국 문화부 산하 국립예술기관으로, 쑨 꾸이 위엔은 중국내 일급배우이자 현대 경극의 프로듀서로 관록과 수상 경력을 자랑하는 실력파 연출가다. 리 셩 쑤, 장 웨이, 황 화, 양 츠가 각각 백소정, 허선, 소청, 법해 역으로 무대에 섰다.

시각과 청각 모두가 만족스러운 공연이다. 중국어 자체의 볼륨있는 억양에 더하여 경극 특유의 발성법이 그 자체로 음악처럼 다가온다. 무대 오른 편에는 즉석 연주단이 섬처럼 자리했다.

중국 전통의 타악기와 현악기를 다양하게 사용해 극의 긴장을 절묘하게 죄고 푼다. 이야기에서 묻어나는 동양적 정서의 동질감과 감칠나는 재미, 박진감이 있다. 잔잔한 익살도 재미를 더한다.

2부의 서막은 특히 장관이다. 남편을 되찾기 위해 백소정과 소청이 치르는 장장 30여분간의 대결전. 수시로 결투 대형과 인원수를 자유자재로 바꿔가며 온갖 기교를 화려하게 쏟아낸다.

소규모 매스게임을 방불케하는 경극원 단원들의 일사불란하고 역동적인 안무, 중국 무예와 무용, 체조를 한데 녹여낸 듯한 날렵하고도 현란한 기술 등이 객석의 탄성과 환호를 연이어 끌어낸다.

창술(槍術) 대결의 경우, 각 창의 양 끝에 주황빛 깃털뭉치를 달아, 창을 돌릴 때마다 마치 불길이 휘도는 듯한 시각적 효과까지 계산한 점 등 소품 하나에까지 연출의 묘가 엿보인다.

골치 아픈 현실에서 가장 천진난만한 방법으로 달아나기에 옛 전설만한 것이 없다. 그림 일기처럼 단순한 스토리와 독특한 중국풍 무예 쇼가 스트레스를 단번에 씻어준다. 이 공연은 지난 9월 28일과 29일 양일간 펼쳐진 뒤 막을 내렸다.

세계 국립극장 페스티벌의 참가작 중 한 편이었다. 하지만 이와 동급 또는 그 이상의 이국적 전통 공연 수준작들이 계속 무대에 오른다. 남은 기회를 놓치지 말기를 권한다. 극장용 망원경도 챙겨가는 것이 좋다. (02) 2280-4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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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주 pinplu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