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한 한 최소의 단어 수로 상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면, 그는 고수다. 서울 대학로 틴틴홀에서 상연되고 있는 <휴먼코메디>는 개성있고 재미있는 신개념 광대극이다.

몸짓 대 대사의 비율이 약 8대2. 마임과 연극의 장르가 독특하게 섞였다. 말 없이 유쾌하게 웃긴다. 저예산, 고효율의 상쾌한 작품이다.

무대는 세가지 에피소드로 구성돼 있다. 어떤 배역이든 상관없이 등장인물 전원이 삐에로의 빨간 코를 달고 등장한다. 빨간 코는 제작진이 의도한 한국적 광대의 표징이다. 처음부터 코메디의 비현실성, 해학을 구체적으로 암시하며 무대가 열린다.

첫 에피소드는 <가족>을 주제로 다루고 있다.

실제로는 애절한 상황을 희극적으로 푼 것이 특징. 애지중지 키운 아들이 갑자기 선원이 되겠다고 나선다. 만삭의 아내를 비롯해 이를 조금이라도 더 붙잡아두려는 가족들의 소박하고도 애틋한 실랑이가 이어진다. 아들은 마침내 작별을 고하며 갈 길을 떠나고, 얼마 뒤 아들의 사고 소식이 날아든다.

<냉면>은 일종의 시트콤이다. 5명의 합창단이 노래 경연 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연습한다. 열띤 연습 끝에 드디어 무대에 서지만 연습과 달리 하나씩 어긋나기 시작한다. 실수를 만회하려 할수록 일은 더욱더 꼬인다. 마임과 라이브 연주, 그리고 노래가 코믹하게 섞인다.

<추적>은 휴먼코메디의 하이라이트나 다름없다.

가장 복잡하면서 가장 스피디하다. 한 여관을 중심으로 사건이 벌어진다. 세상의 시선을 피해 불륜행각을 위해 찾아든 정치인과 유명 연예인, 고루한 여관 주인 할아버지, 수다스러운 여관 아줌마, 느끼한 춤 선생과 이에 빠진 여관집 딸 숙이, 강도 최철승과 다방 여종업원, 정치인의 사생활을 캐내려 쫓아온 백기자와 주기자 등 14인이 사건 속에 얽혀있다.

숨고, 숨기며, 달아나고, 쫓고, 쫓기는 숨가쁜 술래잡기가 꼬리를 문다. 제한된 무대 세트 안에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등장인물들이 입ㆍ퇴장을 반복한다.

이 공연은 사다리움직임연구소 임도완이 연출을 맡았다. 그는 1990년부터 집중, 축적해 온 마임의 매력을 이 작품에서 유감없이 쏟아냈다. 특히 휴먼코메디가 던지는 최대의 묘수는 절묘한 호흡 조절에 있다.

연기, 음악, 대사 등 무대 위의 전 요소가 때로는 스타카토, 때로는 안단테 등 제각기의 템포를 갖고 탄력있게 움직인다. 대사와 대사, 배역과 배역 간의 호흡, 질문과 답의 시차 등, 무엇보다 타이밍의 생리를 활용해 관객들을 사로잡는다. 휴먼코메디는 1991년 ‘코메디 휴먼’이라는 이름으로 초연, 오늘까지 긴 수명을 누리고 있다.

무대에는 백원길, 노은정, 권재원, 김재구, 이지선, 방현숙, 총 6명이 출연한다. 그중 배우 백원길의 스타성은 특히 주목할 만 하다. 휴먼코메디에서 재확인된 연극계의 에이스 카드다.

휴먼코메디는 독특한 발상, 이를 뒷받침하는 완성도만 있으면 그 어떤 장르로도 승부를 걸어볼 만 하다는 가능성을 선두에서 보여준다. 정형화된 유머 공식, 식상한 말장난에 이미 질려있는 코메디극 팬들에게는 특히 신선함을 준다.

공연이 끝난 뒤라도 바로 자리를 뜨지 말 것. 마술쇼 못지않은 순간 둔갑술로 관객들을 감쪽같이 속인 6명의 14인 연기가 어찌 가능할 수 있었는지, 막후 5분의 ‘비하인드 스테이지’ 쇼가 보너스로 펼쳐진다. 2008년 3월30일까지 공연된다. (02) 333-7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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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주 기자 pinplu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