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현실의 맨얼굴 카메라로 포착… 난해한 영화 문법도 깨뜨려

영화제는 축제이며 상품 교환의 창구다. 축제는 영화인을 위한 유희의 자리를 마련해주며 시상식은 영화제 출품작의 품질을 보증해주는 공적인 절차다.

영화제의 폐막식은 돌풍을 일으키는 감독의 등장과 한 세대의 획을 긋는 문제작을 발견하려는 언론의 눈들이 집중된다. 영화제의 수상이라는 공적인 검증절차를 통해 흙속의 진주로 거듭난 감독들은 허다하다.

1990년 중반의 서울 단편영화제는 무명의 임순례, 정지우, 정윤철을 발굴하여 현재 한국영화계의 중심에 서게 하였다. 1999년 한국 독립단편영화제는 공고생 출신 영화감독인 유승완을 발견하여 충무로에 진입시켰다. 이 같은 정황을 살펴보면 국제영화제 보다 국내의 단편영화제가 미래의 영화감독을 발견하는 창구 역할을 소리없이 수행했다.

2004년 제 30회 서울 독립영화제에서도 주목할 만한 사건이 일어났다. 그것은 무명의 영화감독이 대상을 거머쥐면서 독립영화인들이 출렁거린 일이다. 그 감독이 바로 <배고픈 하루>를 연출한 김동현이다.

당시 김동현은 배용균 감독의 두 번째 작품인 <검의나 땅에 희나백성>(2005)의 조감독 출신이라는 한 줄의 이력이외에 독립영화판에서 알려진 바 없는 새로운 틈입자였다.

하지만 그는 한 번의 충격을 던지고 사라지지 않았다. 해를 거듭하면서 그는 오래 묵힌 내공에서 뿜어져 나오는 저력으로 독립영화계의 위상을 굳혀나갔다. 그는 영화의 장으로 다시 편입되기 위해 너무 오랜 세월을 준비의 시간으로 차곡차곡 쌓아두고 있었던 것이다.

이듬해에 영화진흥위원회에서 디지털 장편 제작 지원을 받아 <상어>를 완성하여 서울 독립영화제에 다시 나타났다. 그의 작품은 개막작으로 선정되어 언론에 주목을 받게 되었다. 그 후 그는 자신의 필모그라피를 거침없이 써내려가며 올해 <처음 만난 사람들>이라는 35mm 장편영화를 완성하여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을 받았다.

영화 <처음 만난 사람들>

필자는 그의 이력과 영화적 태도가 궁금하여 강력계 형사가 강력한 용의자를 조사하듯이 그의 행적에 대해 한 두 차례 질문을 던진 적 있다.

그의 영화적 이력은 그의 영화보다 훨씬 드라마틱했으며 그의 영화를 설명하는 단서를 제공해주었다. 필자가 독립영화 정신을 강조하는 자리에서 그의 이력과 영화적 열정을 밝혔던 글을 다시 약술하자면 이렇다.

김동현 감독은 종로의 한 극장에서 영화 한편을 보았다. 하지만 그 영화의 주제와 이야기가 손에 잡히지 않자 한 번 더 보는 것을 반복하다가 하루 종일 한편의 영화만 보고 말았다.

그 영화가 바로 배용균 감독의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이었다. 정통 불교영화가 쉽게 해독되지는 않았다. 그는 영화가 극장에서 간판이 내릴 때 까지 매일 영화를 보고나서 대사와 서사와 사운드와 편집을 노트에 메모하여 한권의 노트를 완성하였다.

수십 번의 관람과 한권의 노트 완성으로도 여전히 영화가 잡히지 않자 급기야는 열차를 타고 대구에 거주하는 배용균 감독을 방문하였다. 한편의 영화가 한 인간을 온전히 사로잡은 것이다. 그의 모든 관심은 한 편의 영화에 집중되었으며 한 편의 영화와 소통이 유일한 삶의 존재의의였다.

그 후 독립영화 제작 방식을 고수한 배용균 감독의 연출부 생활을 시작하였으며 영화에 대한 변함없는 애정으로 미완의 시나리오를 집필하면서 10여년을 기다렸다.

영화진흥위원회에서 단편영화 제작 지원을 받아 완성하게 된 영화가 <배고픈 하루>였다. 영화에 대한 10년의 허기는 한 편의 영화로 인해 조금 달래졌을 뿐이다. 그는 자신의 영화사인 김동현 필름을 차려 <상어>와 <배고픈 하루>를 연출하여 충무로와 일정한 거리를 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는 스스로 주말영화 세대라고 지칭하면서 충무로 현장과 거리를 두며 또한 학교와 영화 집단을 기반으로 한 독립영화에 편입되는 것도 불편해 한다.

영화 <상어>

한때 한국독립영화계의 거물인 조영각 서울 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이 독립영화 워크숍을 부탁했지만 독립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행위는 사양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고 한다. 독립이라는 접두사를 뺀 영화 자체에 집중하고 싶다는 감독의 의지 표명은 영화가 삶의 중심에 서 있음을 웅변적으로 보여준다.

스스로 독립영화로부터 자유롭고 싶지만 그는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독립영화인으로 규정된다. <상어>는 디지털 장편 독립영화이며 <처음 만난 사람들> 역시 35mm 독립영화다.

필자가 독립영화라고 거듭 강조하는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다. 첫 번째는 제작 자본이 충무로 상업자본이 아닌 국가 지원금을 재원으로 하여 감독의 독립성이 확보되었기 때문이다.

즉 자본으로부터 독립한 것이다. 두 번째는 대안적 서사와 개인적 영화언어의 사용이다. 즉 영화의 경향이 기승전결의 딱 들어맞는 서사가 아닌 열린 결말을 보이며 현실과 환상을 개인적 영화언어로 구사한다는 점이다. 두 가지 사실을 놓고 볼 때 김동현의 영화는 순도 높은 독립영화다.

그는 스스로도 인터뷰에서 “여러 길로 쫙 퍼져있던 이야기 들이 어느 순간 한 곳으로 모이는 서사”를 지향한다고 했다. <상어>는 상어를 들고 대구에 온 주인공과 집으로 귀가하려는 유수와 도박하는 준구와 성폭행의 상처로 길을 잃은 여자가 각자의 이야기를 끌고 간다. 그러나 결말에서는 한 곳으로 모이며 감독의 서사적 전략에 딱 들어맞는다.

<처음 만난 사람들>도 역시 친구를 만나기 위해 부산을 가는 탈북자와 애인을 찾아 부안에 내려가는 외국인 노동자와 이들을 관찰하는 형사와 택시운전하는 여자가 각자의 이야기를 펼친다. 그러나 결말에서 한두 장면으로 이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하나의 이야기로 수렴된다.

김동현의 독립영화는 한국독립영화의 장에서 하나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독립영화는 난해한 영화라는 오랜 등식을 깨뜨렸다는 점이다.

그의 영화는 독립영화의 조건을 갖추었지만 한국 현실의 맨얼굴을 카메라가 포착함으로서 가독성을 높였다. 독립영화의 난해성은 그의 등장으로 일정부분 해소가 되었다. 또 하나 그의 상징성은 사적인 이야기에 매몰되었던 독립영화의 경향을 망치로 가격하면서 타자에 대한 시선의 깊이를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한국 독립영화가 충무로 상업영화의 상투성을 예방하는 견제구였다면 김동현의 존재는 한국독립영화의 난해함과 사유화된 서사에 대해 성찰의 거울을 던져주었다고 볼 수 있다.

■ 문학산 (본명 문관규) 약력

영화평론가. (스포츠서울 신춘문예 등단) 영화학 박사. 현 세종대 강사, 영등위 영화등급 소위원, 전주영화제 한국단편의 선택 비평가 위원, 한국영화학회 이사. 저서 <10인의 한국영화 감독>, <예술영화는 없다><한국 단편영화의 이해>의 저자. 영화 <타임캡슐 : 서울 2006 가을>, <유학, 결혼 그러므로 섹스>의 연출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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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산 cinemh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