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스 씽킹' / 제롬 그루프먼 지음 / 이문희 옮김 / 해냄 발행 / 1만3,000원

“환자의 이야기에서 등을 돌리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진정한 의사가 아닙니다.”

소화기내과 전문의 마이런 팔척 박사가 15년 동안 체중 저하에 시달리던 30대 여성 앤 도지를 구원한 후 한 말이다. 앤은 서른 명 가까운 의사를 전전하면서 ‘거식증과 폭식증’에 ‘과민성 대장증후군’이란 동일한 진단과 치료를 받았지만 전혀 나아지는 기미가 없었다.

체중이 37㎏까지 떨어진 앤은 의식적으로 하루에 3,000칼로리를 섭취하면서도 먹은 후 구역질이 나서 모두 게워낸다고 의사들에게 말했지만, 그들은 그렇게 많이 먹고도 이렇게 지속적인 체중 감소가 일어날 수는 없다면서 앤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러나 팔척 박사는 선입견을 배제한 채 앤과 대화를 나누었고, 많이 먹으면서 체중이 감소하는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눈치를 챘다. 결국 앤이 글루틴 거부반응 때문에 곡물이 들어간 음식을 먹으면 모두 토했던 것이라는 사실을 밝혀 낸다.

팔척 박사를 필두로 수많은 명의들이 겪은 실제 사례를 제시하면서 저자는 의사가 정확한 진단을 내리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선입견이나 순간적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의식과 감정을 잘 조절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전제는 의사도 인간이며, 인간의 판단은 완벽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앤 도지의 사례처럼 중증 환자나 심리적 장애를 겪는 환자에 대해 의사들은 저도 모르게 부정적 감정을 갖기 쉽다. 선입견이 자리하면 의사는 “언제 어디가 아프기 시작했나요?” 같은 ‘열린 질문’을 하는 대신 처음부터 과민성 대장증후군이라 여기고 “배가 찌르듯 아픈가요” 하고 물어보게 된다.

부정적 선입견뿐 아니라 지나친 호감도 정확한 진단을 방해하기는 마찬가지다.

심한 가슴 통증을 호소하며 찾아온 건장한 체격의 젊은 환자에게 한 의사는 수많은 검사를 하고도 별 문제가 없다는 진단을 내렸지만 나중에 불안정 협심증이라는 것이 판명됐다. 젊은 시절의 클린트 이스트우드 같은 건장한 체격과 외모에 압도돼 무의식 중에 ‘건강한 환자’라는 생각을 한 것이 오진의 원인이었다.

멀쩡해 보였던 환자가 갑자기 쓰러진 상황에서 신속하게 올바른 진단을 내리기 위해 필요한 것도 역시 감정 조절이다.

저자가 인턴으로 부임해 야간 당직을 선 첫날, 환자와 대화를 나누던 중 갑자기 환자가 가슴을 움켜잡고 헐떡이는 사건이 발생했다. 너무 놀라 두려움과 불안감에 막막해 하던 때 마침 병원을 방문했던 노련한 의사가 혜성처럼 나타난다.

그는 청진기를 대고 15초 만에 대동맥판막 파열이 일어났다고 진단, 심장외과 전문의를 불러 수술을 함으로써 환자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에필로그에서 저자는 의사가 ‘사고의 오류’ 때문에 오진을 하지 않도록 환자가 할 수 있는 일을 알려준다.

의사가 올바른 의사소통을 이끌어나가지 못할 경우, 환자는 얘기를 처음부터 다시 해보겠다고 먼저 제안할 수 있다. 최악의 경우를 상상하며 두려움에 떠는 경우, 용기 있게 의사에게 먼저 말해보는 것도 좋다.

자신을 포함한 수많은 명의들의 경험과 실수담을 솔직하게 밝힘으로써 후배 의사들에게 진정한 의사의 소명을 다하기 위한 겸허함과 책임감을 가르쳐 주는 저자에게 독자들은 존경심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초등학생마저 “돈을 벌려면 의사가 최고”라고 말할 정도로 자신의 안녕을 위해 의사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한국에서, 환자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귀를 기울이고 ‘환자가 아니라 내 생각에 오류가 있을지 모른다’며 끊임없이 연구하는 의사가 과연 얼마나 있을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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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주 기자 pariscom@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