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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나무' 흰옷을 입은 늘신한 자태
[이유미의 우리풀 우리나무] 신비를 간직한 숲속의 귀족



자작나무열매

가을빛이 더디다고 조급해 하던 일이 엊그제인데 일제히 물들어 버린 가을 숲엔 벌써 하룻밤의 찬 바람에 우수수 낙엽이 가득하다.

자작나무는 그 중에서도 가장 먼저 겨울준비를 마친 나무이다. 이제 노란 낙엽들도 떨어져 내려 그 신성한 가지들이 희게 드러나기 시작한다. 고향에서의 본성을 잊지 못한 모양이다. 두고 온 북쪽의 산자락들을 말이다.

사실 우리에게 자작나무는 아주 친근하지만 남쪽 땅에 분포하는 나무는 아니다. 우리가 공원이나 길가에서 간혹 만나는 이 아름다운 나무는 모두 가져와 심은 나무들이고 남쪽에서는 저절로 이 나무가 자라는 숲이 발견되지 않았다.

간혹 설악산이나 오대산과 같은 높고 깊은 곳에서 하얀 수피의 나무를 만나 자작나무라고 생각했다면 그것은 사스래나무이거나 거제수나무일 것이다. 물론 이 나무들은 같은 집안의 형제나무들이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백두산에서 만났던 자작나무숲이 떠오른다. 아! 이제 백두산(물론 중국쪽으로 갔으므로 장백산이지만)의 원시림에 들어서는구나 하고 느끼기 시작한 지 얼마나 지났던가, 갑자기 하늘을 찌를 듯 늘씬하게 늘어선 자작나무 숲의 그 하얀 수피가 드러나면서 나는 까닭 없이 벅차 오르는 감격을 남몰래 진정시키느라 애쓴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지 아니한가.

광릉숲에 수 십년 전 북쪽에서 가져와 자작나무숲으로 만들어진 곳이 있는데 항상 아름답긴 하지만 백두산의 자작만큼 순결한 감동을 주진 못한다.

누가 자작나무를 두고 눈처럼 하얀 수피를 가져 숲속의 귀족이요, 가인(佳人)이며 나무들의 여왕이라고 했다. 특히 흰색을 좋아 하는 백의 민족이 그 하얀 수피를 각별히 귀히 생각했음은 얼마든지 짐작할 만 한 일이다.

그러나 자작나무 숲이 주는 신비스러움은 이승의 것이 아닌 듯도 싶다. 신들이 머무는 곳이며 개마고원 아래 마을에서 소원을 비는 신령한 나무로 섬김을 받기도 한다.

자작나무는 자작나무과에 속하는 낙엽성 활엽 교목이다. 대개 20m 정도 자라지만 백두산 원시림에는 이 나무가 하늘 높을 줄 모르고 높이 높이 자라고 있다.

이 자작나무는 역시 그 아름다운 수피로 가장 유명하다. 수피의 겉면은 흰색의 기름기 있는 밀납가루 같은 것으로 덮여 있고 안쪽은 갈색이며 종이처럼 얇게 벗겨지는데 불에 잘 타면서도 습기에 강한 특징을 가지고 있으므로 그저 아름다워서 뿐만 아니라 아주 오랜 세월 여러 용도로 쓰여 왔으며 또 이러다 생겨난 갖가지 풍속들이 있다.

옛 문헌에서 나무에 대한 기록을 찾아내고 해석하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 대개 화(樺)는 자작나무를 지칭하는데 간혹 화(華)자로 쓰기도 한다. 지금도 결혼식을 올리면 화촉(華燭)을 밝힌다고 하며 ‘축 화혼(祝 華婚)’이라 하여 축하의 글을 보내는데, 전기불이 없던 시절 불이 잘 붙는 자작나무 껍질에 불을 붙여 촛불 대용으로 사용한 데서 비롯됐다.

다시말해 화촉을 밝힌다 함은 자작나무 껍질에 불을 붙여 어둠을 밝히고 행복을 부른다는 뜻이 담겨져 있다 한다. 자작나무의 수피는 종이의 역할도 하고 껍질을 태운 숯으로 그림을 그리고 가죽을 염색했기에 그림도구 및 염료를 파는 가게를 화피전이라고도 한다. 물론 목재도 좋은데 천마총의 벽화를 자작나무에 그린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제 저만치 다가온 겨울의 모습이 자작나무를 통해 조금씩 보인다. 자작나무만큼 맑고 밝으며 절개있는 마음가짐으로 남은 2달을 보내야 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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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07/11/07 13:17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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