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삼천사지서 출토한 희귀유물 500여 점 공개

고려사의 신비가 또 한 겹 베일을 벗었다. 지난 6일 서울역사박물관(관장 김우림)은 북한산에서 발굴, 출토한 고려시대 사찰 삼천사지(三川寺址) 유물 500여점을 공개했다.

이는 2005년부터 진행한 발굴조사 작업의 성과로, 10~13세기 고려시대 전ㆍ 중기에 해당하는 희귀 유물들이다.

북한산 증취봉 능선 중단에 위치한 삼천사지는 고려 시대 법상종의 중심사찰이다. 이 절은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려 법상종 종찰인 개경 현화사의 초대 주지를 지낸 대지국사(大智國師) 법경(法鏡)이 주지로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려 현종 시대인 11세기 고려 왕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크게 융성했다가 임란이후 폐사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고려사>, <동국여지승람>, <북한지> 등에 극히 간략한 언급만 남아있을 뿐 이에 관련된 정확한 문헌기록이 없어 그간 역사의 뒤안에 묻혀 있었다.

이번에 공개된 유물들은 이같은 삼천사지의 실체를 가시적으로 증명, 관련 역사 연구에 새 활기를 심어주고 있다.

고려전기 법상종 승려인 대지국사 법경의 자취를 담은 250여점의 명문비편(銘文碑片)을 비롯, 탑비전(塔碑殿)으로 추정되는 고려전기 건물지 등을 확인시켰다.

청동사리합(靑銅舍利盒), 가순궁주 명금니 목가구편('嘉順宮主'銘金泥木家具片), 은제투각칠보문장식(銀製透刻七寶文裝飾), 철제공구류(鐵製工具類), 고려석조보살두(高麗石造菩薩頭) 등 고려 시대 전ㆍ중기에 해당하는 희귀 유물들을 다량 드러냄으로써 고려시대 삼천사를 둘러싼 사찰의 실재와 이를 둘러싼 생활의 흔적을 고루 보여주고 있다.

이번 발굴작업을 지휘한 최형수 유적조사팀장은 “원래 비석받침과 비편을 찾는 것을 주 목적으로 약 두세달간 발굴 후 철수할 예정이었으나 이를 위해 위에 덮인 바위를 제거하는 과정에서 그 아래에 묻혀있던 예상치 못한 많은 유물들이 계속 발견돼 발굴기간이 3년으로 연장, 기대 이상의 성과를 얻게 되었다”고 밝혔다.

이번에 주목 받은 유물은 크게 5가지로 나뉜다. 탑비전지와 고려석조보살두, 대지국사 명문비편, 청동사리합, 그리고 가순궁주 명금니목가구편 등이다.

청동사리함, 청자상감용문호, 석조보살두

○ 탑비전지 (塔碑殿址)

북동-남서 방향으로 위치하고 있다. 고려 말에 발생한 대규모 산사태로 인해 탑비전지의 상당부분이 무너져 내렸다. 건물지의 구체적인 규모를 단언하기 힘들지만 대칭적인 구조를 감안하면 탑비전지의 경우 정면 3칸(210x340x210cm), 측면 1칸(340cm)의 규모로 추정된다.

배치방식은 원주 법천사지 탑비전과 유사하다. 고려시대 와편과 막새류가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햇무리굽 청자편, 상감청자, 청자용문호, 청동대발, 철제발 등의 유물들이 출토됐다.

○ 고려석조보살두 (高麗石造菩薩頭)

높이 3.7cm의 소형으로, 이제껏 출토된 바 없는 특이한 도상이다. 대개 오불이나 칠불을 표현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반하여 이번에 출토된 보살두는 삼불보관을 갖추고 있어 불교미술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입술부분과 화불의 일부분에 채색하였던 흔적이 보이며, 머리 부분에도 검은색으로 채색한 흔적을 살펴 볼 수 있다.

○ 대지국사 명문비편(大智國師銘文碑片)

대지국사 법경은 고려 현종 시대(1009~1031) 현화사의 창건과 함께 고려 전반기 법상종파의 일가를 이루었던 주도적 인물.

그러나 그의 생애와 활동을 입증해줄 유일한 자료인 비문이 일찍이 파손되어 있던 중 이번 조사를 통해 총 255점(630여자 확인 가능)의 명문 비편이 출토됨으로써 고려전기 불교사 연구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발견된 명문비편을 통해 대지국사 법경의 출신지와 나이 등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그의 행적이 재조명되고 있다.

○ 청동사리합(靑銅舍利盒)

지름 8.9cm, 높이 8.3cm, 뚜껑의 윗면에 2조의 원형 음각선을 2.1cm 간격으로 2줄 장식하였고, 뚜껑과 몸통 옆면에도 약 0.1cm 정도의 촘촘한 간격으로 음각장식을 하였다.

몸통의 옆면에는 섬유와 종이가 일부 겹쳐진 채로 남아있다. 바닥면에도 2조의 음각선을 1.7cm 간격으로 2줄 장식하였다. 사리합의 양식 및 연대로 보아 대지국사 법경과 연관되는 유물로 추정된다.

금니명문(위), 금동목가구파편(아래)

○ 가순궁주 명금니목가구편 ('嘉順宮主' 銘金泥木家具片)

삼천사와 왕실간의 밀접한 교류를 뒷받침, 추정케 한다. 출토물은 목가구편의 일부분으로 추정되며 목가구 겉면 칠기막에 금니로 “嘉順宮主王氏 我嘉ㆍ新安公 ○○世時○○”라는 문구가 남아있다.

<고려사>에 따르면, 가순궁주는 고려 21대 희종의 4째 딸로서, 신안공 왕전(?~1261)과 혼인하였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이 금니가구편의 연대는 적어도 13세기경에 해당되는 것으로 추정되며, 고려시대 목칠공예 편년 및 기법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다양한 문양의 금동목가구장식 또한 여러 점 출토되어 고려중기 목가구 및 문양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삼천사지 발굴작업 시도는 사실상 여러 차례 있어왔다. 1963년 정영호 교수 등의 첫 현장답사가 있은 후, 그 이듬해에 중앙박물관에 의해 본격적인 삼천사지 조사가 추진된 바 있다.

그러나 1968년 1.21사태로 인해 삼천사지를 포함한 인근 북한산 일대가 군사지역으로 지정돼 민간인 출입이 통제되면서 사실상 답보 상태로 이어졌다.

이후 1999년 조계종부교문화재발굴조사단의 북한산 불교유적 지표조사와 1999~2004년 서울역사박물관의 서울시 문화유적지표조사에서 다수의 와편과 도기편 및 건물지 등이 잇달아 발견되면서 삼천사지에 대한 발굴조사의 필요성이 정식으로 제기되었다.

이에 따라 문화재청의 허가 아래 서울역사박물관은 서울지역 문화유적에 대한 순수학술발굴조사사업의 일환으로 삼천사지 관련 발굴지역을 크게 2개 지구로 나누어 작업을 진행, 그 첫 성과로 이번 유물들을 찾아내었다.

2005년 9월부터 착수된 현장 발굴 작업에는 서울역사박물관 자체 연구진을 비롯, 연인원 수백 명이 투입됐다.

조사 대상지가 평지가 아닌 산 중턱이라 중장비를 사용할 수도 없어 일일이 인력을 모아 수작업으로 큰 바윗덩어리를 제거하는 등 발굴 과정 중 많은 어려움을 거쳤다.

“작업 당시엔 힘들었지만, 사실상 산사태로 뒤덮여있던 큰 바위 덕에 그 아래의 귀중한 유물들이 그간 일반인들에게 전혀 노출되거나 훼손당하지 않고 보존될 수 있었던 것으로 본다”고 최형수 유적조사팀장은 덧붙였다.

이번에 출토된 유물들은 향후 보존방법 등에 대한 논의와 함께 내년 하반기경 서울역사박물관에서 특별전시회를 통해 일반에 공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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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주 기자 pinplu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