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의 성적 권력과 자유연애의 방정식

바람둥이의 어설픈 자유정신은 여럿을 위험하게 한다. 여기, 결혼한 지 10년된 부부가 있다.

남편은 바깥에서 수시로 상대를 갈아치우며 자유연애를 즐긴다. 하지만 아내에게는 부부로서의 어떤 성적 요구도, 관심도 없다. ‘나를 단 한번이라도 사랑해달라’고 울부짖는 아내에게 남편은 ‘당신은 내게 엄마같은 존재’라 구스르며 되레 당당히 자신을 변호한다.

남편의 ‘한없이 자유롭고 서정적인’ 외도에 아내는 고통에 못 이겨 하며 여러 차례 자살을 기도하지만, 그때의 위기만 모면할 뿐 남편은 아내를 방치한다. 남편은 차라리 서로의 사생활에 간섭하지 않는 ‘개방 커플’이 되어보자고 아내를 설득한다. 아내에게도 무한한 이성관계의 권리를 주겠다는 협약이다.

아내는 마침내 힘겹게 ‘오픈 커플’의 첫 걸음을 디딘다.

종전의 옷, 헤어스타일, 액세서리, 심지어 성격까지 버리고 새로운 모습으로 사회 생활을 시작한다. 그리고 한 남자를 만나게 되고, 남편에게도 이를 알린다.

자신과 오붓한 밤을 보내기 위해 상대 남자가 찾아오기로 한 저녁. 아내는 남편에게 자리를 비워줄 것을 요구한다. 얼마 전 자신이 남편으로부터 요구 받았던 상황 그대로다. 남편은 예상치 못했던 질투와 불안감에 휩싸여 아내의 ‘허락된 외도’에 저항하기 시작한다.

특히 아내의 상대남이 자신보다 사회적 지위와 능력이 우월한 남성임을 알게 되면서 지병인 만성 천식이 심해지면서 생명의 위험에까지 이른다. 남편의 절박한 설득, 호소와 함께 결국 상황이 기울어진다.

아내는 모든 것이 거짓말이었다고 말한다. 이로써 극은 해피엔딩으로 끝날 듯하지만, 남편의 기세등등한 반전, 그리고 누군가 초인종 소리에 치명적인 결말이 찾아 든다.

연극 ‘오픈 커플’이 서울 대학로 열린극장 무대에 오르고 있다. 실제 부부 사이인 이탈리아의 극작가 다리오 포와 프랑카 라메의 원작을 이성열 연출로 옮긴 작품이다.

다리오 포는 1997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유명하다. 이 공연에서는 부부 사이에 일어날 수 있는 보이지 않는 성적 권력, 희생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기존의 부부관계에 숨어있는 관습과 편견에 대해 지극히 ‘이상적’인 해법을 제시하면서, 이것이 과연 인간의 본질상 수용 가능한 것인가를 관객에게 되묻고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작품이 관객들에게 말하려 하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이 무대에선 명백히 드러나지 않는다. 배우자의 외도로 인한 부부의 성적ㆍ 심리적 갈등은 그닥 새롭지 않은 전제다.

‘쿨(cool)하고 인텔리전트(intelligent)한 연애관’이든 아니든 외도의 본성은 사실상 거기에서 거기까지다. ‘개방연애’라는 발상 또한 그 자체로 남성우월주의가 던져 온 해묵은 타협으로 비친다.

이번 공연이 의도한 것이 일방적인 신뢰 파기와 허울좋은 ‘자유연애주의’에 대한 고발인지, 배신당한 배우자의 고통의 심도에 대한 호소인지, 아니면 ‘역지사지의 섭리’인지 극의 초점이 다소 모호하다. 미혼에겐 부담스럽고, 기혼에겐 이미 진부할 수 있는 스토리와 평이한 전개법이 객석에 어딘가 허전함을 던져준다.

연극계와 영화, 방송가를 통해 많이 알려진 배우 이호성, 그리고 모델 출신으로 역시 방송과 광고계 등에서 활약중인 배우 박리디아가 부부(류태호, 이항나 공동 배역)로 출연한다.

사실상 모놀로그에 가까우리만큼 대사와 역할의 비중이 절대적인 박리디아의 선전이 돋보인다. 젊은 날의 연기자 김혜자를 연상시킬만큼 섬세하다.

부부의 성적 권력 구도와 자유연애는 좀처럼 해답을 정하기 쉽지 않은 인류의 화두다. 한번이라도 결혼과 사랑, 자유와 소유의 개념 안에서 고민해 본 관객이라면 오히려 이 참에 되물어보고 싶다. 오픈 커플에 대한 당신의 소감은 무엇인가를. 19세 이상 관람가. 25일까지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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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주 기자 pinplu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