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은 전시 '수를 헤아리다'

작고 일상적인 것들이 가진 향수와 아름다움을 본다. 대형전시관으로 통하는 길목 한 귀퉁이에 작은 추억의 유물들이 가지런히 앉아있다. ‘수를 헤아리다’라는 주제의 서울역사박물관 작은전시회다. 이름그대로 아주 작고 소담하다.

이미 우리 곁에서 사라졌거나, 사라지고 있는 것들이 모여 있다. 일상 생활 속에서 무게를 달거나, 수를 세거나, 부피를 재는 데 쓰였던 옛 생활소도구들이다. 일부는 낯이 익고, 일부는 이름도, 모양도 전혀 생소한 것들이다. 마치 잃어버린 과거의 기억을 돌려받는 듯하다.

산가지(算木)는 낯설다. 조선말기에 쓰였던 도구이니만큼 그럴법도 하다. 근, 현대사를 넘으면서 자취를 감춘 지 오래. 당시엔 이것으로 자릿수를 번갈아가며 가로놓기와 세로놓기로 구분하여 숫자를 표시했다. 세로로 놓으면 일,백,만 등의 수, 가로로 놓으면 십, 천, 십만 등의 자릿수를 뜻했다. 대나무나 소뼈 등 다양한 재료로 만들어 썼다.

책과 독서를 사랑했던 선조의 면모가 드러나는 독특한 소품도 있다.

자루되, 저울추

서산(書算)이다. 종이를 봉투처럼 만들어 표면을 부분적으로 잘라 접었다 폈다하며 사용했다. 책 옆에다 이를 놓아두고 책을 한차례씩 읽을 때마다 횟수를 표시했다. 표면에 예쁜 문양이 만들어져 있어 선인들의 숨은 미학을 엿보게 한다. 한겹씩 표지를 벗길 때마다 그 안의 다른 속지가 나타나게 함으로써 책을 읽은 횟수를 나타냈다.

헝겊으로 띠처럼 만든 줄자나, 접었다 폈다 하며 사용해 휴대하기 쉽도록 만든 접자는 20세기 초에 주로 쓰였던 도구들이다. 원형줄자는 특히 요즘 철제와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현대형 원형 감기용 줄자와 모양새와 기능이 비슷해 제법 친근하다. 접자는 1970,80년대까지도 양장점이나 건설현장 등에서 주로 사용됐던 소품이다. 하나씩 펴다보면 큰 W모양이 된다.

되나 말은 비교적 근자에도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소품이다.

말, 원형줄자

자루가 달린 되는 일반 사각형 되에 비해 흔치 않지만, 모양이 예뻐 눈길을 끈다. 후일에 사회 씀씀이가 나아져서일까? 10되들이 양을 담는 말(斗)은 20세기 초에 특히 빈번히 쓰인 도구다. 이들은 곡용과 액용으로 나눠 쓰였다. 쌀 등 곡물을 재거나, 간장이나 기름 등 액체용 계량 도구로 사랑받았다.

무게를 재는 데 쓴 저울과 저울추도 다양하다. 조선말기에 약재의 무게를 재는데 쓰인 작은 약저울에서부터 천칭저울 등 저울과 저울추가 여럿 시선을 모은다. 저울추의 모양도 멋스런 종 모양에서부터, 안에는 돌을 넣고 밖으로는 직물을 짜듯 끈을 예쁘게 엮어 감싼 수제 공 모양의 저울추까지 고루 볼 수 있다. 작은 것에 깃든 나름의 정성과 멋이 느껴진다.

이외에도 조선왕조의 도량형 규정이 기록된 경국대전(經國大典)을 비롯, 왕실이나 사대부 등 지체높은 양반가에서 사용한 관혼상제 및 예식용 자인 예기척(禮器尺), 옷감을 재단할 때 사용하는 자인 포백척(布帛尺) 등 조선말기의 생활 흔적을 만날 수 있다.

이들 유물중 절반 이상은 개인이나 문중에서 기증한 것들이다. 전시작품은 모두 26건 67점. 12월9일까지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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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주 기자 pinplu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