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몸으로 익힌 '육탄 스릴러' 신선한 감동스턴트맨 출신 감독의 스펙터클한 연출… 독립영화 내공도 쌓여 스토리 탄탄

싸움은 정식으로 배우는 자보다 몸으로 때우는 자가 더 잘한다.

아니 온몸으로 배우는 자가 승부근성이 더 강하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이다. 조직폭력배 영화에서는 도장에서 단련한 조직원보다 몸에 칼자국 나거나 주먹에 맞아 코뼈 주저앉으며 실전경험을 몸에 새긴 이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결국 조직을 접수한다.

실전을 통해 몸으로 싸움을 배우는 자는 기계적인 움직임이나 자로 잰 듯한 동작은 거절하지만 상대의 급소가 어디인지를 알며 한 방을 위해 물불 안 가리는 저돌성은 탁월하다. 결국 승부는 야생적인 승부근성이 밴 몸에서 결정난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영화학교 출신은 문법에 맞는 쇼트 구성과 실감나는 연기와 기승전결이 딱 맞아 떨어지는 서사로 매끈한 영화를 뽑아낸다. 관객은 그들의 영화가 볼 만하다고는 생각한다.

하지만 구름처럼 몰려가서 보거나 극장문을 나서면서 영혼을 뒤흔드는 마력적인 힘을 느끼기에는 2% 부족하다는 허기를 느낀다.

이창동, 김기덕, 박찬욱의 영화는 계산된 연출과 군더더기 없는 편집은 부족하지만 관객들의 감정을 헤집고 바슐라르가 말한 영혼의 울림에서 파생되는 종소리를 듣게 한다.

이들의 영화는 배워서 잘 만든 기술이 아닌 자신의 삶이, 자신이 생각하는 예술에 대한 사유의 우물에서 퍼 올린 순수한 일급수의 힘이 존재한다. 이와 같은 영화는 독학의 힘이거나 삶의 성찰이라는 내공이 영화적 기교를 압도한다.

원신연의 영화도 자연산 해산물이 주는 싱싱함이 있다. 그는 몸으로 영화를 한 스턴트맨 출신이며 동시에 <빵과 우유>라는 독립영화로 내공을 다지며 영화 독학생 감독의 계보를 있다.

그는 <가발>이라는 공포영화를 제작하여 충무로 감독으로 입성한다.

하지만 기대에 비해 평가와 성적은 여의치 못하고 말았다. 다음 작품은 제목도 희귀한 <구타유발자들>로, 조폭영화와 코미디와 부조리한 상황을 뒤섞은 장르와 국적 불문의 영화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필자는 원신연 감독이 이런 영화로 힘을 낭비하고 있으면 안 될텐데라는 걱정과 1990년대 최고의 배우인 한석규의 불안한 하향곡선을 바라보는 비애를 동시에 맛봤다.

그리고 올해 <세븐 데이즈>를 만났다. <세븐 데이즈>는 영어 제목이 주는 불편함이 있었지만 역동적으로 치고 올라가는 이야기, 재판에서 이기려는 변호사와 아이를 찾으려는 모성, 아들을 보호하려는 무서운 부성이 쨍쨍거리는 강한 금속성을 내면서 강렬한 이미지가 각인되었다.

원신연의 힘은 몸에서 발원한다. 영화의 몸은 장면과 장면에서 만들어진다. 프레임 안에 담아내는 피사체가 작게 멀리 잡히면 거리감이 생기면서 감정적 유대가 약해진다.

반대로 프레임 안에 큰 피사체가 꽉 들어서면 거리감이 지워지며 심정적 유대가 강해진다. 이 강약의 리듬이 영화의 몸과 근육을 만든다. 짧은 시간의 컷들이 정신 없이 붙어나가면 심리적 시계의 초침이 빨라지고 컷들의 시간이 느려지면 심리적으로 이완되어 성찰의 여백이 생겨난다.

원신연의 영화는 강한 스펙터클의 피사체가 꽉 채워진 근육질에 가깝고 장면 장면이 도미노처럼 줄줄이 이어지면서 하나의 언어와 형상을 만들어내는 긴박함과 남성적 역동성을 보여준다. 그의 영화에서는 남성적 근육과 시한폭탄을 들고 달리는 100미터 단거리 선수의 급한 호흡이 느껴진다.

<세븐 데이즈>는 승률 100%에 도전할 정도의 유능한 유지연 변호사에게 장애물 경주같은 질주를 하게하는 영화다.

유 변호사는 운동회 도중 자신의 딸이 유괴된 사실을 알게 된다. 유괴범은 유 변호사에게 고통스러운 거래를 제안한다. 그 거래는 7일 안에 강간 살인혐의로 구속된 정철진을 무죄 판결 받게 하라는 것이다.

무죄 판결이 날 경우 딸을 돌려주겠다는 것이다. 여기서 범인을 무죄로 만들려는 법조인의 고뇌와 자신의 딸을 구해야 한다는 모성이 충돌하여 1차 갈등을 일으킨다. 하지만 모성은 무엇보다 강하다는 사실을 한국 어머니들이 역사적으로 보여준 바대로 갈등은 짧게 끝내고 정철진 무죄만들기 프로젝트에 돌입한다.

곧 제 2차 장애물과 대면한다. 그것은 자식의 과오를 덮으려는 부도덕한 아버지라는 괴물과의 대결이다. 부성과 모성의 대결이 영화적 긴장도를 높여간다. 한국 사회의 폭력적인 부성애는 이미 모재벌의 폭력사건으로 전 국민들이 경험한 바 있다.

아들을 무죄로 만들려는 검사와 살인자를 무죄로 만들려는 변호사는 부성과 모성, 선과 악의 대결로 장을 옮겨가며 게임을 펼친다. 그리고 결국 선과 악의 대결에서 대중영화의 결말처럼 선의 승리에 심판이 손을 들어준다. 하지만 중요한 반전이 기다린다. 이 반전은 독자들의 관람권을 지키기 위해 함구하겠다.

<세븐 데이즈>는 ‘한국에서 스릴러는 실패하는 대표적인 장르다’라는 세간의 편견을 무색하게 할 가능성이 있다. 이 영화의 장점은 서사가 탄탄하며 계단식으로 한 단계 한 단계 긴장감이 상승하는 맛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또한 인물의 캐릭터가 일관되게 살아있으며 변호사 역의 김윤진과 교수 역의 김미숙이 한몫 거들고 있다. 스릴러 영화는 서스펜스와 스펙터클에서 승부가 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브플롯과 메인 플롯이 엉클어지지 않게 마지막 반전으로 치닫는 치밀한 서사의 구성이 만들어내는 서스펜스는 성공적이나, 장르영화로서 보여줄 고급스런 서스펜스 장면에는 눈을 덜 돌린 것 같아 아쉬웠다. 스펙터클은 촬영과 편집에 힘입어 한국 어느 스릴러 영화와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정도의 수준을 보여준다. 이 영화는 원신연 감독의 토종 연출력의 힘으로 영화적 몸을 단단하게 만든 수작이다.

■ 문학산 약력

영화평론가. 영화학 박사. 현 세종대 강사, 영등위 영화등급 소위원, 한국영화학회 이사.저서 <10인의 한국영화 감독>, <예술영화는 없다><한국 단편영화의 이해>. 영화 <타임캡슐 : 서울 2006 가을>, <유학, 결혼 그러므로 섹스> 연출.

<저작권자 ⓒ 한국아이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문학산 (본명 문관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