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인천여성미술 비엔날레

차학경 '눈 먼 목소리'
장르가 무엇이든, 국적이 어디이든, 명작을 만날 수 있다는 건 언제나 행복한 일이다. 국내외 여성 작가들의 명작 축제가 인천에서 한창 펼쳐지고 있다. 지난 10일 개막한 ‘2007 국제 인천 여성 미술 비엔날레’. 다양한 장르와 짜임새있는 구성으로 시선을 모으고 있다.

발을 딛기 전, 잠깐의 안내. 이번 비엔날레는 국제 여성 미술사에서 주목 받는 10개국의 원로, 중견 여성작가 33인이 참여한 본전시를 중심으로, 특별전과 부부전, 참여전 등이 펼쳐지고 있다. 사진, 회화, 조소 등 여러 장르가 다채롭게 어울린다.

체험(Experience), 신화(Myth), 발견(Found Out)이라는 세 개의 방으로 이뤄진 본전시는 초입부터 주목을 끈다. 체험의 방은 작가이자 여성으로서의 삶의 체험이 미술을 통해 서사적으로 배어나온 작품들을 모아놓고 있다.

작품 한 점, 한 점으로부터 삶의 숨이 와 닿는다. 할머니와 소녀를 대비시킨 수잔 앤드류스의 사진은 쉽고 명료하게 눈에 띈다. 여성으로서의 생애가 한 페이지에 압축한 연대기처럼 명징하게 다가온다.

삶에 대한 야요이 쿠사마의 시선은 보다 이채롭고 따사롭다. 세부적으로는 복잡하고 오밀조밀한 바탕 속에서도, 그 각 요소들이 서로 조화된 군집을 통해 보다 큰 눈으로 세상을 껴안으려는 다짐이 묵묵히 엿보인다.

일상적인 사물에 대한 작가의 풀이와 묘사 또한 인상적이다. 캐테 콜비츠의 소묘는 삶에 대한 의문의 여지를 다시 한번 툭 건드려놓고 지나간다. 마리 로랑생의 ‘세 소녀’는 서로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일까?

맑고 원색적이면서도, 여러 풀이가 나올 수 있는 눈빛으로 관람자 앞에 서 있다.(그 눈빛에 대한 해석은 결국 관람자 자신의 인생관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외에도 막달레나 아바카노비치, 니키 드 생팔 등이 참여했고, 국내 작가로는 한국의 미술사를 지켜온 1960,70년대 대표적 화가인 천경자 화백을 비롯해 조숙진, 정연희, 박상숙 등의 작품과 대면할 수 있다.

신화의 방은 낡은 신화의 틀을 깨고 살아간 여성 작가들의 삶과 고뇌를 표현하고 있다. 고단한 결단 그리고 투쟁을 우회적으로 시사하는 차학경의 ‘눈 먼 목소리’도 그 중 하나다. 국내작가 민영순을 비롯해 알렉사 라이트, 칸디다 회퍼, 쉬린 네샤트, 신디 셔먼, 세튼 스미스 등의 미술적 철학이 펼쳐져 있다.

특별전은 감수성(Sensibility), 핑크빛(Pink), 사이보그(Cyborg), 불완전한 구조(Imperfect Structure)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만약 당신이 작가라면 이 주제 아래 무슨 장르로, 무엇을, 어떻게 표현하고 싶어질지 미리 한번 상상해보기를.

마리 로랑생 '세 소녀'

그 후 작가들의 세계와 만난다면 훨씬 감흥이 배가될 것이다.) 여기에서는 회화, 조각, 섬유, 비디오, 디지털 테크놀로지, 홀로그램, 건축, 패션, 디자인 등 거의 모든 미술의 표현방식이 동원 또는 합성된다. 유수코 이바, 고자영, 장희신, 패트리시아 엘리스 등 15개국 62명의 작가들의 작품으로 구성돼 있다.

이 행사의 최대 장점은 지명도 높은 세계 여성작가들의 작품들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여성 작가들의 기량과 깊이, 넓이를 한번에 이만큼 풍족하게 접할 수 있는 기회란 그리 흔치 않다.

이번 비엔날레의 대표 주제는 ‘Knocking on the door(문을 두드리다)’다. 일상의 덤불에 뒤덮여있던 우리 의식의 문을 확실히 두드려주고 가기를 바랄 뿐이다. 비엔날레는 12월 30일까지 펼쳐진다. 인천종합예술문화회관 전시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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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테 콜비츠 '숙고하는 여인'

정영주기자 pinplu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