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마르뜨 언덕의 프랑스식 사랑예찬

하나의 원작이 외국 무대로 번안, 각색돼 옮겨질 때 그 성공률은 얼마나 될까?

서울 동숭아트센터 동숭홀에서 상연중인 뮤지컬 <벽을 뚫는 남자>는 올 가을부터 국내의 프랑스 뮤지컬 애호가들에게 많은 관심과 기대를 모았던 작품이다. 지난 2006년 2월 국내에 처음 소개된 이래 한국 관객들을 만난 지 이번이 두 번째다.

프랑스의 국민작가 마르셀 에메의 동명 소설을 뮤지컬로 옮겨 1996년 11월 파리에서 초연됐다. 프랑스의 토니상으로 불리는 몰리에르상 최우수 뮤지컬 상과 최우수 연출상을 수상한 수작으로도 유명하다. 미셀 르그랑 작곡, 디디에르 반 코웰레르 각본, 이번 국내 공연에서는 정영두 연출로 선보인다.

이번 공연 역시 미리 출처를 알지 않아도 금세 눈치를 챌 수 있을 만큼 작품색이 프랑스답다. 핵심 설정부터가 기상천외하다. <벽을 뚫는 남자>는 1940년대 프랑스 몽마르뜨를 배경으로 한다.

우체국 민원 처리과의 듀티율은 따분하도록 평범한 독신남이다. 언제나 같은 일상이 되풀이되고, 동료들은 성실한 그를 바보 취급한다. 어느 날 듀티율에게 믿지못할 사건이 벌어진다. 갑자기 벽을 뚫고 통과하는 초능력이 생긴다. 벽을 뚫는 남자 듀티율의 삶이 통째로 바뀐다. 그는 못된 상사를 혼내주고, 빵집과 보석상 등을 털어 가난한 이들을 돕는다.

‘의적’이라는 존재로 언론을 연일 장식하게 되면서 그는 전 국민적인 영웅으로 떠오른다. 그런데 와중에 사랑에 빠진다. 야비하고 인정사정없는 검사 남편으로부터 학대당하며 불행한 삶을 살고 있는 이사벨을 구출하기로 마음먹는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게 된 두 사람. 탈출과 도피를 감행하기로 한 그 날, 둘만의 약속대로 듀티율은 평소처럼 벽을 뚫고 이사벨의 집으로 들어간다. 그런데 진짜 ‘가공할’ 사태가 바로 이때 벌어진다.

공연에서는 주연 듀티율 역에 고영빈, 남경주가 공동배역을 맡은 것을 비롯해 해이, 정명은, 김성기, 임철형, 김영주 등이 등장해 열연한다.

기발한 상상과 우아한 코미디가 빛나는 정통 프랑스 뮤지컬이라는 부제나 원작의 명성과는 달리, 아쉽게도 이번 공연은 기대치에 밑돈다. ‘대체 어디에서 오차가 벌어졌는가’를 공연 내내 고민 또는 궁금하게 한다. 스토리는 매력적이나, 어딘가 공연이라기보다 문학적 범주에서 미처 다 빠져 나오지 못한 인상이다.

그야말로 두 장르 틈에 끼어 석고로 굳어가는 주인공을 보는 듯 안타깝다. 스토리의 압축력과 강약, 가창력, 음악 등이 전반적으로 평이한 느낌을 준다. 딱히 ‘정점’이라 꼬집을만한 부분이 있었던가, 되묻게 한다. 이국의 낯선 사막을 하염없이 걸어가는 기분이다. 오아시스도, 신기루도 없는 사막이다.

하지만, 조연들의 호연과 무대미술에의 과감한 투자는 아낌없는 찬사를 받을 만 하다. 수시로 다양한 장치로 등장하는 세트가 제작진의 남다른 성의를 보여준다. 기대 이상이다.

그 중에서도 방향과 범위, 기법 등에서 화려하고 실험적인 기술을 구사하는 조명은 특히 주목해 볼 만 하다. 번안 뮤지컬로서의 완성도에는 다소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아름다운 삽화가 함께하는 프랑스식 화법의 ‘몽마르뜨 언덕의 사랑예찬’으로 즐기기에는 흠이 없다. 내년 2월3일까지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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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주 pinplu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