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싼 중고품에서 명품까지 '다양한 개성찾기'젊은층은 구제패션 통해 자유욕구 충족… 기성세대는 "향수 느끼고 젊어 보인다" 선호

인터넷 쇼핑몰이 발달한 덕분에 이곳 저곳 발품을 팔지 않고도 마음에 드는 옷을 살 수 있게 됐다.

가격도 만만하고, 대형 온라인 쇼핑몰에 가면 MD(상품기획자)추천 상품이나 그 주에 가장 많이 팔린 베스트상품, 구입자들의 댓글을 볼 수 있는 등 정보가 풍부해 쇼핑이 한결 수월하다. 이제 웬만한 옷은 온라인 쇼핑몰에서 산다.

하지만 인터넷으로 옷을 구입하다 보면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 길을 가다 나와 똑같이, 인터넷에서 산 ‘이 주의 베스트 상품’을 입은 사람들과 마주치는 것이다.

더욱 난감한 건 같은 사무실에서 나와 똑같은 옷 혹은 아주 비슷한 스타일의 옷을 입은 직원과 마주칠 때다. 갑자기 공장에 찍혀 나온 과자처럼 살아가는 자신의 처지가 서글퍼진다.

몰개성의 서글픔은 고가의 명품을 걸쳤을 때도 똑같이 경험하는 일이다. 명품 열기로 너나 없이 유명 브랜드의 가방이나 옷 한가지 정도는 소유하고 있다. 명품을 살 여유가 안되면 하다못해 정교한 짝퉁 상품이라도 사고야 마는 게 작금의 현실 아닌가.

‘내가 입는 옷은 누구나 입는다’는 생각에 맥이 풀릴 때, 그럴 땐 빈티지 숍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전환이 된다. 몇 년 전부터 특이한 중고품 옷들이 즐비한 빈티지 숍을 좋아하게 됐다.

빈티지(vintage)는 포도주에서 유래한 단어로, ‘오래 숙성된 좋은 포도주’를 뜻한다. 결국 빈티지 숍은 잘 숙성된 포도주처럼 편안한 느낌을 주는 옷을 취급하는 상점이라는 뜻이다.

중고 의상 또는 중고 의상을 즐겨 입는 풍조를 아우르는 개념이 바로 빈티지 패션이다. 유럽과 일본에서는 오래 전부터 벼룩시장을 통해 빈티지 패션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았다.

빈티지 패션은 허름한 보세 스타일에서 히피, 럭셔리, 로맨틱 등 다양한 스타일을 갖추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홍대 앞 빈티지 가게‘로미와’는 소녀 풍의 로맨틱 중고제품을 취급하고 있다.
빈티지 패션은 허름한 보세 스타일에서 히피, 럭셔리, 로맨틱 등 다양한 스타일을 갖추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홍대 앞 빈티지 가게'로미와'는 소녀 풍의 로맨틱 중고제품을 취급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1990년 초 대학생들 사이에서 색이 바래거나 구겨진 옷들이 인기를 끌면서 빈티지 유행이 시작됐다. 국내에는 1990년대 미국에서 들어온 중고 리바이스 진을 중심으로 빈티지라는 개념이 싹트기 시작해 몇 년 전부터 빈티지 마니아들이 생겨났다. 패리스 힐튼 같은 할리우드 스타들은 물론 정려원, 서민정 등 국내 연예인들 중에서도 빈티지 패션을 즐기는 마니아들이 속속 생겨났다.

빈티지 시장의 규모도 계속 성장하고 있을 뿐 아니라, 히피룩에서 로맨틱룩, 값싼 중고품에서 고가의 명품 빈티지까지 컨셉도 세분화되고 있다. 제품라인도 청바지, 모피, 가방, 신발, 액세서리 등 다양하다.

값싸고 세련된 새 옷이 넘쳐나는 세상에 복고풍 헌 옷의 인기가 좀처럼 식지 않는 이유는 뭘까?

홍대 앞에서 ‘로미와’(www.romiwa.com)라는 빈티지 숍을 운영하는 이유미 씨는 빈티지의 매력에 대해 “빈티지 제품은 많은 추억과 소중한 사연들을 간직한 먼지가 뽀얗게 내려 앉은 비밀스런 한 권의 일기장 같다”고 표현한다. 빈티지는 공장에서 대량으로 쏟아지는 지루한 트렌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열쇠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옷을 입고, 그것을 나만이 소유할 수 있다는 기쁨. 이것이 빈티지의 가장 큰 특징이자 매력이다. 빈티지의 주 고객층은 20~30대지만, 10대부터 40대이상까지 폭넓은 연령층에서 공유할 수 있는 특징이 있다는 게 로미와 대표 이유미 씨의 설명이다.

‘개성추구’라는 공통점 말고는 빈티지 의상을 좋아하는 이유가 가지각색으로 다양하다. 우선 연령대마다 그 이유가 조금씩 다르다. 젊은 층은 옛 패션이 갖는 희소성과 요즘 기성제품과 다른 독특한 디자인 때문에, 나이가 든 층은 예전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추억 때문에 빈티지를 선호한다.

국내에 빈티지라는 개념이 싹트기 시작한 것은 1990년 초반 미국에서 중고 리바이스 진이 들어오면서 부터다. 사진은 구제 청바지 버커루진의 명동 매장.

젊은층 빈티지 마니아들은 70년대 히피를 연상시키는, 허름한 구제품 패션을 통해 형식에 구애되지 않는 자유욕구를 충족시키려는 경향이 강하다. 기성세대 가운데는 젊어 보이는 코디를 위해 빈티지를 택하는 경우도 많다.

중고 의상, 청바지, 사이키델릭 스타일, 에스닉 의상 같은 히피패션의 특징을 가진 빈티지 제품이 재기 발랄한 분위기를 되찾아주는 매개체인 것이다. 평소 정장을 입고 무게 잡는 중년의 신사가 어느 날 찢어지고 물 빠진 구제 청바지를 입었다면, 그 이유는 뻔하다. 날 잡아 젊은 오빠 분위기 한번 내보고 싶다는 소망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허영에 질린 실속파들에겐 저렴한 가격에 물건을 사는 재미가 쏠쏠하다.

중고시장을 잘만 뒤지면 구찌 핸드백, 샤넬 구두 등 손때가 조금 탄 명품이나 국내에 정식 유통되지 않았던 럭셔리 브랜드를 정품의 절반 이상 싼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 빈티지 패션이라고 다 싸구려 느낌을 풍기는 것도 아니다. 고가의 앤티크 가구처럼 부티나는 빈티지 패션도 있다. 할리우드 스타들이 이런 럭셔리 빈티지 패션을 즐긴다.

뭐니뭐니 해도 빈티지 숍의 가장 큰 매력은 일반 가게에서 살 수 없는 색다른 물건이 많다는 데 있다.

서울 종로5가 광장 수입구제시장이나 삼성역 코엑스몰에 있는 아자플리마켓, 삼청동이나 신사동 가로수길, 홍대앞 등에 있는 빈티지 숍에 가면 홍콩, 일본, 미국, 유럽 등 세계 각지의 벼룩시장에서 건너온 특이한 제품과 만날 수 있다.

내년에는 복고풍의 히피 패션이 유행할 것이라고 패션전문가들은 말한다.

돌체앤가바나, 페라가모, 구찌 등 명품 패션 브랜드들이 앞 다퉈 나팔바지, 편안한 에스닉 스타일 등의 히피 패션을 재해석한 의상을 선보이고 있다. 빈티지 숍에서 혹은 오래된 옷장 안에서 튀어나온 낡고 특이한 패션이 내년 거리를 메울 것을 기대해본다. 그땐 똑 같은 옷 때문에 서글펐던 기억은 잠시 묻어버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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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화 기자 cand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