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개월 쓴 컴퓨터 반품요구에 OK

칠년 전 리치몬드 버지니아에서의 일이다. 한국에서 들고 온 IBM 노트북이 고장이 나는 바람에 데스크 탑 컴퓨터를 급하게 장만한 적이 있다.

예산에 없던 일이라 다소 싼 오픈박스(open box -누가 한번 사서 반품한 물건 또는 가게서 상당 기간 진열 됐던 물건을 싸게 파는 것) 컴퓨터를 미국의 한 멤버십 매장에서 구입했는데, 이것이 사온 당일 날부터 툭 하면 먹통이 되어 버리는 것이었다.

아주 치명적인 결함은 아니었고, 또 한창 바쁜 학기 중이라 반품할 엄두도 안나 길래, 그럭저럭 쓰다가 도저히 못 참겠다는 내 인내의 한계에 도달 했을 때는 이미 제품 구입 후 육개월이 훌쩍 지난 후였다.

미국 백화점 계산대 앞에 반품 물건들이 정리 할 틈도 없이 수북이 쌓여있다.

처음부터 시원찮았으니 판 사람도 책임이 있지 않나 싶어 매장에 전화를 걸어 대충 사정을 설명하자, 직원이 대뜸 하는 말이 반품하라는 것이다. 제품이 들어 있던 포장 박스에 넣어만 오면 반품해 준다는 것이었다.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산지 육 개월 된, 거의 중고 다 된 컴퓨터를 반품하라니. 믿을 수가 없어서 묻고 또 묻고, 그 직원 이름까지 적어 그 매장 멤버십이 있는 아는 사모님을 급히 섭외, 부리나케 달려갔다. 비교적 간단한 반품 절차.

‘심문’을 예상 했는데 뭐 변변한 ‘질문’조차 없이 순순히 현찰로 전액을 다 내주는 것이다. 그날따라 마냥 길게만 느껴졌던 반품 줄. 안면 근육마비 일으키기 직전의 긴장한 표정으로 말 한마디 없이 서 있다가, 내 차례가 와 돈을 돌려받자마자, 혹시 그 직원이 다시 보자고 할 것만 같아 꽁지가 빠지게 허겁지겁 매장을 빠져 나왔다.

집에 가는 차 안에서 자초지종을 들으신 당시 미국 경험이 나보다 훨씬 많으셨던 그 사모님의 어이없고 기막힌 표정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러나 그 사모님은 모르신다. 그동안 내가 한국에서 쌓아온 반품불가에 대한 믿음이 얼마나 견고한 것이었는지를.

■ 불량 중고판매 상인에 항의하니 "모른다"

십여 년 전 한국에서 한창 유학 준비에 열중일 때 일이다. 유명한 전자상가에 가서 일제 어학용 녹음기 (IC-repeater) 하나를 당시 돈 이십여 만 원이란 거액을 주고 샀는데, 이것이 산지 며칠 되지도 않아 덜컥 고장이 난 것이다.

바쁜 핑계로 차일피일 수리를 미루다, 결국 용산까지 가는 대신, 학교 근처의 한 전자 가게에 수리를 의뢰했는데, 알고 보니 내가 산 녹음기는 이미 고장 난 것을 수리해서 팔은 불량 중고 녹음기였다. 어째 영수증 써 달라는데 뺀질뺀질 안주더라니.

부르르 떨며 달려가 만난 용산의 그때 그 상점 아저씨. 나 같은 어수룩한 ‘봉’ 하나쯤은 “그런 물건 판 적 없다. 영수증 내놔라” 큰소리치며 내치는 것이 일도 아니었음은 불을 보듯 환한 일. 너무 억울해서 집에 오는 차안에서 줄~줄 울었다. 그리고 다짐했다. 영수증을 꼭 챙기자!

반품에 관한 나의 염세적인 태도에 일조한 또 다른 예 하나. 소형 개인 매장에서 흔한 “배 째라” 식 또는 트집 잡기 식 반품 거부 와 “볼모 잡기” (적당한 물건으로 맞교환 해갈 때까지 돈을 안돌려 주는 것)가 무서워 비교적 반품이 수월한 대형 백화점을 선호했지만, 나의 경험에 의하면 백화점이라고 다 안전한 것은 아니었다.

한국의 대형 백화점에서 세일 할 때 산 우리 아버지 티셔츠를 세탁을 했더니 봉제 불량으로 옷이 사정없이 틀어지기에 반품을 요구했다.

세탁 후엔 원래 반품이 안 되는 거라며, 큰 선심 쓰듯 자사 물건으로 교환 해가라고 했지만, 세일 기간이 끝난 후라 별로 맘에 들지도 않는 색깔만 틀린 거의 같은 질의 제품을 정상가로 사는 바람에 혹 떼려다 혹만 더 붙이고 온 적이 있다.

한국에서의 이런 좋지 않은 기억 때문에, 미국에서는 반품이 소비자가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중의 하나라는 것을 가슴으로 이해하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미국에서의 두 번째 반품의 기억.

미국 매장의 반품 전용창구.

“밝은 방 밝은 마음” 뭐 이런 비슷한 표어를 외치며 큰 맘 먹고 내 키 보다 큰 스탠드 등을 하나 샀는데, 이것이 그만 콘센트에 꽂자마자 “퍽” 하는 소리와 함께 까만 그을음만 남기고 죽어 버렸다.

누구 잘못인지에 대한 확신도 물증도 없었지만- 원래 불량품 이었을 수도 있고 아니면 너무 많은 코드를 한 콘센트에 꽂은 내 잘못일 수 도 있었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심정으로 이번에는 박스도 없는 알 몸뚱이채로 들고 제품을 산 가정용품 전문점으로 갔다. 그런데 아 놀라워라! 역시 이곳에서도 ”묻지 마“ 반품을 해주는 것이다.

사실 미국에서 반품 시 구차한 변명이 필요 없다. 혹 반품 이유를 물을 땐, 남자들은 ”내 부인이 싫어해서“ 또 여자들은 ”마음이 변해서“ 라고 간단히 말해도 된다. 이런 긍정적인 경험들은 나의 뱃심을, 적어도 반품에 관한한, 어느 정도 길러 주었다.

이미 서너 개는 내 뱃속에 집어넣은 곰팡이 냄새 나는 비스킷, 이전 같으면 그냥 쓰레기통에 던져 버리고 손해보고 말았을 테지만, 지금은 당당히 반품을 요구한다.

■ "묻지마 반품" 악용하는 뻔뻔한 미국인들

이참에 한마디 해야겠다. 모든 게 지나치면 안 된다고. 사오자 마자 곰팡이 냄새 나는 냉동새우를 반품하러 갔을 때 목격한 일이다. 내 앞의 중년의 미국 아줌마.

유효기간 며칠 안 남은 냉동식품을 한두 개도 아니고 두 세 봉지를 가져와 반품을 하는 것이다. ”아줌마 여기는 반품하는 곳이지 당신 냉장고 청소하는 곳이 아닙니다“ 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참았다.

아예 반품을 목적으로 비싼 옷을 사서 ‘적당한’ 기간, ‘적당히’ 표시 안날 정도로만 입다가 반품하는 경우도 주변에서 가끔 보았다. 얼마나 입고 싶으면 저럴까 하는 애처로운 마음이 안 드는 것은 아니지만, 그 비싼 옷 입은 그 사람 결코 아름다워 보이지는 않았다. 반품 양심껏 해야겠다. 미국의 후한 반품제도를 아주 유용하게 쓸 수 있는 경우도 있다.

바로 맘에 들지 않는 선물을 받았을 때. 센스 있게 넣어준 액수 안 적힌 ”선물용 영수증“ (gift receipt) 한 장이면 어떤 애물단지 물건도 내가 애용하는 물건으로 탈바꿈 할 수 있다. 영수증 주고받는 것 여러모로 중요하네요.

소비자의 천국 미국에서도 소비자의 권리를 싸워서 쟁취해야만 할 때가 있다. 이번 여름 두 달간 한국에 가면서 내가 다니던 헬스클럽 소비자 센터에 전화를 걸어 그 기간 동안 멤버십을 동결해 달라고 요구했다가 거절을 당했다.

내가 매달 지불하는 돈은 멤버십에 대한 것이지 접근성(accessibility)에 대한 것이 아니라는 내 생각에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말이다.

동생 ”심“이도 지난여름 한국 방문 때 같은 이유로 같은 거절을 당했었다는 생각이 미치자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소비자 센터에 정중한 항의 편지를 보냈다. 결국 동결을 해준다는 답장을 받았다. 왜 전화로는 안됐을까? 너무나 분명한 나의 동양인 악센트 때문이었을까? 찜찜하다.

■ 소비자여! 기죽지 말고 당당해지자

반품된 물건들.

“묻지 마” 반품 같은 미국 대형 매장들의 저자세 사실은 힘의 상징이다. 반품비용을 납품업자인지 매장인지 아니면 소비자 (원가에 포함돼서)가 최종적으로 지불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든든한 재력이 없는 영세 상인들은 시도하기 힘든 일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돈 있는 기업이라고 누구나 다 하는 일은 물론 아니다. “묻지 마” 반품은 불신에 찌들은 현대인의 가슴 깊숙한 곳에 호소하는 ‘무조건적’인 사랑의 상업적인 근사치이요, 이 점에서 수십 년 앞을 바라보는 성숙한 미래형 기업 철학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기업이 살려면 소비자를 감동시켜야 한다. 나의 컴퓨터를 반품해준 그 매장, 처음 몇 년은 남의 멤버십에 빌붙어 다녔지만, 지금은 나도 당당한 유료 회원이다. 일주일전 카메라 구입도 이 회사 온라인 매장을 통해 했다.

문제가 생기면 바로 가져가면 된다는 믿음이 있기에 비교적 신중한 나도 큰 고민 없이 ‘대충’ 구매를 했다. 반품을 감당할 뒷심이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상식적인 선에서의 반품은 반드시 보장되어야 한다.

용산의 그때 그 아저씨 십년 앞을 바라보는 이러한 상인정신 반드시 배우셔야 합니다. 그리고 소비자들이여, 기죽어 살지 말고 당당해 집시다. 그리고 영수증을 꼭 챙깁시다.

나종미 씨는 1998 년 미국으로 유학 와서 프린스톤 신학교 기독교 교육석사, 유니온 신학교 신학석사를 마치고 현재 클레어 몬트 신학교 기독교교육학 박사 과정에 재학 중이며 문화전문자유기고가로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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