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소용돌이 헤쳐온 거장부부의 담소

고암 이응노(1904∼1989) 화백과 부인 박인경(81) 여사는 이데올로기로 소용돌이치던 시대에 역사적인 굴곡을 헤쳐온 부부 화가다.

이화여대 동양화과 1회 졸업생인 박 여사는 22살 연상이던 고암과 결혼해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자 1958년 파리에 정착했지만 고암이 ‘동백림사건’(67년)으로 한국에 소환돼 옥고를 치른데 이어 백건우ㆍ윤정희 부부의 북한 납치 사건(77년)에 고암 부부가 연루되면서 함께 고통을 당했다.

고국이 돌아갈 수 없는 땅이 되자 살기 위해 국적을 프랑스로 바꿀 수 밖에 없었던 고암 부부에게 ‘그림’은 삶의 모든 것이었다. 박 여사는 고암이 그림을 그릴 때 곁에서 먹을 갈고 붓을 빨았으며 파리에 세운 동양미술학교에서 3,000명 정도의 문하생을 배출하는 동안 불어를 못하는 고암을 대신해 그의 입과 손발 역할을 하였다.

1989년 고국에서의 초대전을 앞두고 고암이 파리에서 급서하자 박 여사는 고암의 유품을 정리, 국내전을 열고 지난 5월 개관한 대전 이응노미술관에 작품을 기증하는 등 고암의 환국에 앞장서왔다.

11월 말 월간 미술세계가 주최한 ‘화가의 아내전’을 통해 첫 국내전을 연 박 여사는 “고암의 남은 작품을 고국의 품으로 옮길 예정”이라고 했다. 사진은 80년 대 중반 파리의 자택에서 고암 부부가 차를 마시며 담소하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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