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몸에 문신 도배한 조폭? 아니죠, 백화점 지원이죠남의 시선 개의치 않는 튀는 개성… 평범한 사람들도 "내멋에 산다"

나는 사람 구경을 좋아한다. 특히 미국 사람 구경은 할 만하다. 얼굴과 몸의 골격, 눈과 피부 그리고 머리카락 색깔도 인종에 따라 각양각색이지만, 입고 걸치고 꾸미고 다니는 것은 각 개인의 기호와 취향에 따라 더욱 천차만별, 제멋대로이기 때문이다.

미국 생활 십여 년 만에야 웬만큼 튀는 미국인은 그냥 지나 지나쳐 줄 수 있는 노련미를 갖게 됐다고 생각 했었는데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몇 주일 전 주린 배를 채우러 샌드위치 가게에 들어갔을 때, 나의 시선을 사로잡은 어떤 미국 여인이 있었다. 이십대 후반쯤 되 보이는, 전체적으로 좀 푸짐한 편인, 그리고 밉지 않은 외모의 얼핏 평범한 인상의 그녀.

아무리 별것 아닌 이곳 로스앤젤스 추위라지만 그래도 명색은 겨울인 십이월에 위통을 다 드러내는 좀 파격적인 나시티 차림의 그녀를 가뿐히 지나치려는 찰나, 그녀의 등판 가득히 화려하게 자태를 드러낸 문신을 보고야 말았다.

아, 그녀가 이 한 겨울에 나시티를 입은 이유가 있었구나! 한국 텔레비전 뉴스에 심심찮게 나오는 “조폭” 아저씨들의 남성미(?) 넘치는 몸에서나 볼 수 있었던 그런 대단한 규모의 문신을 이 평범한 젊은 여인에게서 보다니. 혹시 이 언니도?!

비록 한두 달 채 안된 경력이지만 풋내기 사진사로서의 작가 정신을 발휘하여 용기를 내어 그녀에게 접근했다.

네 문신이 참 인상적이고 멋지니 사진 한 장 찍을 수 있겠냐고 물었더니, 그러라며 그 넓은 등판을 선뜻 내 개 들이미는 것이었다. 허락 해 준 것만도 감지덕지하여 아무 생각 없이, ‘머리 없는’ 등판 사진 몇 장만 달랑 찍고 나중에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미국에서의 문신에 대한 인식, 한국에서처럼 그리 부정적이지만은 않다.

여인네 몸 은밀한 곳 어딘가에 살짝 새겨 넣은 보기도 앙증스러운 사랑의 증표용 문신. 어디 어디에 가서 무엇 무엇을 했던 사람이라는 인생역정을 알려주는 이력서 대용 문신. 인생 역전의 드라마를 이뤄 보겠다는 의지가- 많은 경우 ‘의지만’- 빛나는 결단 용 문신.

유방암으로 양쪽 가슴을 절제해야 했던 한 중년여인이 허전함을 채우기 위해 ‘빈’ 가슴에 새겨 넣은 눈물겨운 삶의 의미 찾기 용 문신. 그리고 놀랍게도 이런 구구한 사연 없이, 단순히 자기표현의 수단으로 하는 칼라 풀한 ‘한 작품 하는’ 문신도-물론 조잡한 경우가 대부분인 것 같지만- 심심치 않게 보인다.

■ 고삐풀린 표현 자유 용납 안하는 세력도

미국 헌법으로도 보장하는 "자기표현의 자유" (Freedom of Expression) 라는 것 주로 하고 싶은 말을 맘 놓고 할 수 있는 의사표현의 자유와 연결되어 쓰이는 말이다. 그런데 ‘입’이 아닌 ‘몸’으로 표현하는 이런 자유도 미국 헌법이 보장해 주는 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런 화려한 문신으로 몸의 상당 부분을 도배하고 다니는 사람들도 비교적 큰 차별대우를 당하지 않고 살 수 있는 곳이 이 나라인 것 같다.

예를 들면, 팔에 칼라 문신을 한 미국 여인의 사진에는 한 팔만 보이지만 사실 이 여자분 두 팔 모두에 동일한 문신을 했다. 복장을 주의 하여 보시라. 유니폼을 입고 있다! 미국 어느 유명 백화점의 직원으로 당당히 일하던 중 한 컷 찍힌 것이다.

한국에서 이런 문신하고도 서비스 직의 일종인 백화점 직원으로 취업이 가능할까? 아마 아닐 것이다. 소위 “해결사” 같은 직업이라면 또 몰라도. 그리고 놀랍게도 나 같은 호기심 많은 이방인 말고는 이런 튀는 이들을 ‘두 번 이상’ 쳐다보는 미국 사람들은 별로 많지 않다.

그렇다고 미국에서는 무조건 나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다녀도 되는 것은 또 아닌 것 같다. 최근 어떤 젊은 미국 여자가 노출이 좀 심한 미니스커트 차림으로 비행기를 타려다 승무원에게 탑승 거부를 당해 TV 뉴스에 보도된 적이 있었다.

그 여자분 이 일로 하루아침에 거의 유명 스타가 됐다. 항공사의 사과를 받아내고 공짜 비행기 표도 받고, 아침 TV쇼에 초대 손님으로도 나왔으니 말이다. 이 여자 분의 승리는 자기표현의 자유에 대한 대다수 미국인의 동조가 없었다면 아마 불가능 했을 일이다.

하지만 고삐 풀린 자기표현의 자유를 용납하지 않으려는 보수적인 세력이 이곳에 분명히 존재 한다는 것 또한 간과 할 수 없는 사실이다. 미국에는 어떤 특정한 장소에 갈 때 어떤 정해진 스타일의 옷을 입어야 하는 룰인 ‘드레스 코드’ 라는 것이 있다.

예를 들면 거리의 여인역의 줄리아 로버츠가 어떤 잘 나가는 사업가와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의 ”귀여운 여인“ 이란 미국 영화, 아마 많은 한국 분들도 보셨을 것이다.

거기 보면 거리의 여자 역에 걸 맞는 “다 보여주기” 식 패션으로 등장한 여주인공이 한 고급 레스토랑에서 우아하게 고기 한번 썰기 위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그야말로 ‘미운 오리새끼 백조 되기’ 식의 변신을 하는 과정이 잘 나온다. 그런 곳에 멋모르고 청바지에 운동화를 신고 갔다가는 아마도 문전 박대를 당하기 십상일 것이다.

평생 이런 고급 레스토랑에 갈 일이 없을 나 같은 평범한 사람에게까지 적용되는 미국의 드레스 코드 중 하나는 미국 교회 가는 복장일 것이다. 물론, 시카고에 있는 어떤 대형 미국 교회는 드레스 코드를 과감히 없애고 목사님은 제복이 아닌 평상복에 노타이 차림으로, 그리고 교인들은 청바지에 티셔츠 차림으로 자유롭게 예배를 드리는 곳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다닌 미국 장로교 계통의 교회들에 오는 사람들은 거의가 다 정장차림 이다.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고 간다고 누가 뭐라고 대놓고 말은 안하겠지만, 그들의 전통과 마음의 평화를 존중하는 차원에서 가능한 나도 정장 차림으로 교회에 간다.

■ 눈치 덜 보는 해방감… 인생이 덜 피곤

이 글 쓰는 이는 한국에서 단발과 교복 시대를 몸으로 겪은 사람이다.

우리 중학교 때만 해도, 앞이마를 살짝 가리는 애교머리 때문에, 또는 정해진 길이를 불과 몇 센티 넘은 단발머리 때문에 생활지도 선생님께 불려가 군밤 맞는 일이 흔히 있었다.

또 박 대통령 때의 “장발단속”은 어떻고. 애매하게 경찰서에 끌려가 ‘죄 없이’ 가위질을 당한 ‘긴 머리’ 남자 분들의 수난을 몸소 보고 듣고 자란 세대이기도 하다. 물론 당시엔 “미풍양속 위반 사범”이란 엄연한 공적인 죄목이 있었지만.

세상 달라진 요즘은 어느 방송국 코미디 소재로나 쓰일 법한 기찬 일들을 ‘당연시’ 보고 겪으며 자란 내게, 남의 시선을 개의치 않는 듯 한, 더 나아가 오히려 남의 시선을 끌고자 하는 것처럼 보이는, 좀 별난 미국인들의 자기표현의 자유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 일 것이다.

나는 지금 미국에서 자유 만끽 중이다. 한창 더운 칠팔월에 털목도리에 겨울 코트를 입고 도서실에 가기도 한다. (나는 여름 냉방이 겨울 추위 보다 무섭다) 한국에서라면 절대 못 입을 좀 파인 나시티도 몇 개 사놓고 입을 기회만 기다리고 있다.

남에게 어찌 보일까 눈치를 덜 봐도 되는 자유가 가져다 주는 해방감, 한국의 동포 분들은 아실라나 모르겠다. 인생이 한결 덜 피곤합니다!

■ 나종미 약력

나종미 씨는 1998 년 미국으로 유학 와서 프린스톤 신학교 기독교 교육석사, 유니온 신학교 신학석사를 마치고 현재 클레어 몬트 신학교 기독교교육학 박사 과정에 재학 중이며 문화전문자유기고가로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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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종미 자유기고가 najongmi@netzero.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