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은지가 익어가는 조붓한 기차터널지하 40m 초대형 숙성실서 사과와인 발효… 김치담기·음악감상 이색 체험도

외국 사람이 한국에 오면 맨 먼저 배우는 말이 무엇일까? 보통은 “안녕하세요” 같은 인사말이 되어야 하나 많은 외국인들이 “빨리 빨리” 같은 말을 먼저 배우게 된다고 한다.

무엇이든 “빨리 빨리”를 원하는 우리 사회의 독특한 분위기를 꼬집는 대목이다. 우리나라가 언제부터 이렇게 속도 위주의 급박한 사회로 변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어쨌든 빠른 것이 미덕이고 빨리 먹을 수 있는 패스트푸드가 우리 식생활 전반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 편승해 패스트푸드가 우리 식생활을 위협하자 슬로푸드 운동이 점차 힘을 얻어가고 있다. 슬로푸드는 패스트푸드와는 반대되는 의미로,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한 후 최소 20~30분 정도 소요되는 음식들을 말한다.

슬로푸드 운동은 86년 이탈리아에서 처음 시작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로마의 스페인광장에 세계적인 햄버거 체인 맥도널드가 진출하자 이에 대한 저항으로 급격히 확산된 것으로 보인다.

먹을거리 문제에서 시작된 슬로푸드 운동은 안전하게 생산하기 위한 영농방식, 생물학적 다양성 보호, 지구 생태계 보호, 느리게 살기 운동 등으로 점차 확산되고 있는 추세다.

우리가 먹고 있는 음식의 상당부분은 패스트푸드다. 그렇지만 우리 전통 음식은 대부분 슬로푸드였다. 특히 김치는 짧게는 서 너 시간, 길게는 수십 년간 숙성을 거쳐야 하는 대표적인 슬로푸드다.

몇 년 전 조류인플루엔자(AI)가 아시아의 몇 나라를 휩쓸고 난 후 김치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진 적이 있다. 김치 유산균이 AI의 예방 효과 및 치료 효과가 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국의 건강 전문 월간 잡지인 헬스 매거진(Health Magazine)은 한국의 김치를 세계 5대 건강 음식으로 선정해 눈길을 모았을 정도로 김치에 대한 평가는 높은 편이다.

김치는 발효 식품이라는 점에서 대표적인 슬로푸드로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김치를 오랜 시간 숙성시킨 묵은지는 완벽에 가까운 슬로푸드로 평가받고 있다. 묵은지는 <오래된 김장김치>라는 뜻으로 김장을 하기 전에 담가 저온에서 6개월 이상 저온 숙성 저장하여 입맛 없는 계절에 김장김치의 맛을 느끼게 하는 별미 김치다. 간단하게 밥반찬으로 먹을 수도 있지만 찌개, 구이, 쌈 등 다양한 형태로 우리전통의 맛을 느낄 수 있는 전통발효 먹을거리다.

충북 충주에 가면 묵은지 와인 카페 터널이라는 곳이 있다. 충주 시내에서 충주댐을 거쳐 박달재로 넘어가는 길목에 있는 이 곳은 충북선 일부 구간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1952년 충북선 기차터널로 만들어져 1980년까지 이용되다 충북선 복선화 사업으로 폐선되면서 쓸모없이 버려졌지만 지금은 묵은지와 와인이 익어가는 이색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이 터널의 길이는 530m로 지하 40미터에 자리잡고 있어 기온이 항상 13°C, 습도는 70~80%를 유지하고 있다.

묵은지와 와인의 깊은 맛은 저장조건이 좌우한다. 이런 점에서 묵은지 와인 터널은 항상 일정한 온도와 습도가 요구되는 발효식품을 만드는데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는 초대형 자연 발효 숙성실인 것이다. 이곳에는 묵은지와 와인 및 개인 와인 셀러가 있다. 1년 정도 발효된 묵은지를 구입할 수 있으며 와인은 충주 사과와인을 시음 후 구입할 수 있다.

충주 특산물 사과로 만든 100% 순수 사과 발효주 사과와인은 과일 주 특유의 숙취성분을 제거하고 세 번의 발효와 세 번의 여과를 거쳐 은은한 사과 향과 부드러운 맛을 지닌 새로운 사과와인으로 본고장에서 제대로 숙성된 와인을 맛볼 수 있다. 와인 셀러는 개인적으로 소장하거나 보관하고 싶은 와인을 보관해 주는 서비스로 보관 후 필요한 날짜에 택배로 배송해 주고 있다.

회원제로 운영되고 있는 묵은지 와인터널에서는 사전예약(최소 1일전)을 하면 묵은지와 함께 삼겹살을 구워 먹을 수 있는데 아쉽게도 겨울철에는 이 서비스가 제공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충주의 명물 사과와인 시음은 언제나 가능하다.

회원의 경우에는 터널에서 개최되는 음악회나 김치담기 체험 등의 행사에 참여하실 수 있다.(문의 유한회사 산앤들 043-851-3630 http://www.winetn.co.kr)

■ 주변에 가볼만한 곳

충주의 명소 탄금대가 건너다 보이는 충주박물관 근처에는 국보 제6호 중앙탑(중원탑평리칠층석탑)과 술 박물관인 ‘리쿼리움’(043-855-7333, www.liquorium.com)이 있다.

1만 리터짜리나 되는 거대한 증류기로 만든 입구가 인상적인 이 박물관에서는 고대 이집트 와인의 변화부터 시작해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와인의 역사를 다운 와인관, 위스키를 다룬 오크통관, 깊은 맛이 느껴지는 동양주의 오래된 전통과 역사를 한눈에 알 수 있는 동양관 등을 구경할 수 있다. (관람시간 10:00 ~ 18:00 / 입장료 : 대인 3,000원, 소인 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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