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우대칭'의 생명원리 드러낸 산뜻한 붓터치 일품

새 봄을 잉태하는 겨울은 겉과는 달리 한 켠에 따스한 내피를 두르고 있다. 그것이 움터 생명의 환희를 부를 때면 덩달아 움츠렀던 마음들도 기지개를 켠다.

요즘 세계적 조각가 문신(1923~1995)의 색다른 예술세계가 그러한 봄을 손짓한다. 지난 14일부터 서울 인사동 본화랑에서 열리고 있는 ‘채화’ 전시회 ‘모세혈관(생명)의 합창’전을 통해서다.

좌우대칭(시메트리)의 형태로 우주와 생명의 리듬을 작품으로 표현한 문신은 올림픽공원에 있는 25m 높이의 ‘올림픽 1988’으로 국민에게 친숙한 작가. 그러한 문신이 이번에는 ‘채화’라는 독특한 예술로 거장의 면모를 전하고 있다.

70년대부터 95년까지 그린 채화 50여 점은 조각을 위한 구상스케치를 뛰어 넘어 새로운 장르를 여는 또 다른 예술세계를 보여준다. 선과 원, 타원, 반원 등을 유기적으로 구축하고 기하학적으로 분할, 배치하여 고도의 통합적 조화미를 완성하고 있는 것. ‘모든 생명체는 좌우 대칭’이라는 문신 조각의 ‘생명 원리’가 채화에도 잘 드러나 있다.

채화는 67년 문신이 재차 프랑스로 건너간 후 조각창작과 더불어 채화예술에도 심혈을 기울이면서 독보적인 ‘문신의 양식’을 정립해 가던 중, 73년 운명적인 사고를 계기로 완성됐다. 73년 8월, 서거한 피카소를 추념한 조각이 센세이션을 일으킨데 고무된 문신은 8m짜리 대형조각 작업을 하다 사다리 위에서 떨어져 척추를 다쳤다.

그는 4개월 동안 병석에 있으면서 채화와 드로잉을 집중적으로 창작해 구상과 비구상을 아우르는 ‘모세혈관의 합창(작가 표현)’이란 ‘문신 채화예술세계’를 구축했다.

그가 그린 채화는 모두 400여 점. 마산시립 문신미술관이 100여 점, 가나아트센터가 150여 점을 소장하고 있고 나머지는 흩어져 있다. 이번에 출품한 작품은 대부분 그의 아내이자 화가인 최성숙씨 소장품이다.

최씨는 “난을 칠 때처럼 호흡을 중단한 채 단숨에 집중해서 그려낸다. 그래서 선이 흔들리지 않고 끊겨 있지 않다”고 채화의 특징을 설명했다. 전시된 채화는 70년대 초기 완전추상에서 80년대 후기로 가면서 호랑이 얼굴 등 구체적인 형태를 띠기도 하고 부드러운 채색이 가미된 것 등 문신일대기 채화의 대표작들이다.

이번 전시회에는 채화 외에 해외순회 조각 7점, 1959년 부산에서 전시하였던 유화 및 희귀품인 수채화 ‘가고파’의 원작이 처음 공개되고, 1943년 스무살 때 그린 자화상을 만날 수 있다. 자화상은 도쿄화단의 실력자가 보고 감탄해 징병에서 빼줬다는 일화가 있다.

문신의 일대기를 담은 책 <문신-노예처럼 작업하고 신처럼 창조하다>(주임환 지음)와 30년 간 문신의 삶과 예술을 카메라에 담아 온 마산MBC 정견 국장의 ‘거장 문신-자연과 생명의 빛’영상도 전시회에 함께 선보여 채화전을 더욱 빛내고 있다. 1월 31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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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주기자 pinplu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