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의 슬픈바다에 격려 메세지

겨울바다라는 말을 떠올리면 언제나 감상적인 기분이 먼저 들었다. 연인과의 여행, 추억, 해돋이나 철새들의 군무가 보여 주는 장관, 혹은 철지난 장소의 쓸쓸함 …. 올해 겨울바다는 기름유출이라는 참혹한 사고, 드리고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과 노력이 모여 점차 거두어져 져는 모습을 바라보는 감동과 같은 조금은 다른 빛깔로 나타난다.

태안의 바닷가에 이름도 알 수 없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진정 소중하듯, 장구밤나무는 그 해안들에서 오래도록 터 잡고 살아온, 그간 특별히 눈여겨보지 않을 만큼 소박하고 평범하지만 정겹고 그래서 더 마음이 가는 작은 나무이다. 모르긴 해도 이 장구밤나무도 태안의 어는 바닷가 언덕진 곳이나 산기슭에서 애타는 마음과 격려를 그 따뜻하게 붉은 열매의 빛깔로 한껏 보냈을 것임에 틀림없다.

장구밤나무는 피나무과에 속하는 작은키나무이다. 이 나무를 소개하며 바다이야기를 꺼낸 것은 주로 바닷가 주변에 많이 살기 때문이다. 내륙에 없는 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기억에 남는 이 나무와의 조우는 모두 바닷가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이 나무는 나무의 전체 모양으로 치면 참 볼품없다. 작은 나무이니 웅장함은 물론 이고, 균형감이나 하다못해 섬세함도 부족하다. 그저 적절한 야산자락이나 들판에서 그 자리에 맞게 삐죽삐죽 가지를 내어 자란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생명들이 다 그러하듯 다가가 하나하나 들여다 보면 새록 새록 눈에 들어오는 모습 하나하나가 특별하고도 아름다워 이내 감동을 하기 마련인데 이 장구밤나무도 다르지 않다. 특히 지금은 장구처럼 잘록한 허리를 가지고 처음엔 둘이었을 것이 붙어버린 모습을 하고 있는 열매가 곱다. 모양도 독특하지만 내겐 색이 인상적이다. 정말 익어가면서 이 나무의 열매들은 불게 익어 가는데 세상의 따뜻한 붉은 빛을 다 모아 놓은 듯, 조금씩 농도를 달리한 붉은 빛들이 줄기에 가득하여 좋다.

물론 한여름에 피는 꽃송이들은 아주 연하디 연한 노란색이라고 할까 아님 노란빛을 띤 흰색이라고 해야 할까. 어찌되었든 5장의 꽃잎이 별같이 모여 벌어지고 이런 꽃송이 예닐곱개 정도가 옹기종기 모여달린 달린 모습은 보기도 좋고, 비슷하지만 서로 약간 다른 암꽃과 수꽃이 따로 있는 꽃이니 이를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할 듯 하다.

앞의 설명에서 짐작하셨겠으나 장구밤나무란 이름은 열매의 모양에서 따온 것이다. 장구밥나무라는 이름으로도 많이 알려져 있는데, ‘밤’이 더 적절한지 ‘밥’이 더 적절한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밤이든 밥이든 다 먹을 수 있는 것이고 실제로 맛있다고 한다. 왜 그동안 이 열매들을 보았을 때 맛볼 생각을 못했는지 후회스럽기도 하다. 잘먹기나무란 별명도 있다.

특별한 쓰임새가 있을 만큼 유명한 나무는 아니지만 마당 한 켠에 한 무리 만들어 심어 두면 꽃도, 열매도 모습도 고운 빛깔도 그리고 그 열매의 맛도 이리저리 팽겨 즐길만 할 것이다.

혹, 한 해의 마지막 남은 날들을 더러워진 바닷가를 깨끗이 하는데 쓰려는 훌륭한 생각을 품고 계시다면 혹 그 언저리에서 함께 격려를 보내고 있을 장구밤나무의 열매도 한번 둘러보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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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