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물이 멀겋다고? 맛보면 생각이 달라질걸'

꼬리곰탕국물(앞)과 사골국물.
설렁탕이나 곰탕 전문집은 찾기 그리 힘들지 않다. 심지어 도가니탕 전문점도 더러 보인다. 그런데 꼬리 곰탕은? 시내를 아무리 오래 둘러 보아도 전문점이라고 간판을 내건 곳은 그리 많지 않다. 식당 안 메뉴판에 꼬리곰탕을 적어 놓은 곳들이 있지만 주메뉴는 아니다.

서울 남대문 시장 안켠에 자리한 은호식당. 입구에 70년 역사의 꼬리곰탕집이라고 쓰여 있다. 그리고 서소문과 여의도에도 같은 간판이 눈에 띈다. 프랜차이즈인가? 알고 보면 세 군데 모두 같은 집안에서 3대째 맛을 이어오고 있는 집들이다. 이 중 일제시대부터 문을 연 남대문점이 본점이다.

‘왜 꼬리곰탕 국물이 이렇게 멀겋죠?’ 이 집 꼬리곰탕을 처음 찾는 이들이 가끔 이런 질문을 던진다. 덜 끓여서? 우러나온 게 아직 부족해서? 뽀얀 국물이 최고라고 믿는 이들에게는 의심스러울 수 밖에 없다.

실상 알고 보면 꼬리곰탕은 아무리 끓여도 하얘지거나 뽀얗게 되지는 않는다. 실제 설렁탕 등 국물이 뽀얀 우유빛을 띠는 것은 사골 뼈를 끓여내기 때문. 꼬리만으로 끓인 육수는 결코 색을 띠지 않는다. 이는 양지 등 내장을 주로 끓이는 곰탕도 마찬가지.

그런데 국물을 한 숟갈 떠 먹어 보면 향긋하면서도 진국의 깊은 맛이 우러난다. 기름지다기보다는 기름기 흐르는 느낌이면서도 바로 시원 담백한 맛. 어딘가 깊고 고소한 듯한 설렁탕 국물과는 성격이 제법 다르다.

뚝배기에 나오는 꼬리곰탕은 꼬리부터 먹는 것이 순서. 꼬리를 집어 들고 살을 젓가락이나 포크로 발라 내 새콤하면서도 짭짜름한 양념에 찍어 먹는다. 그래도 모자라면 두 손가락으로 양 옆을 쥐고 손으로 살을 찢어내면 그만.

보통 소 꼬리는 살점이 질기거나 건조한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만 이 집에서는 그런 불평이 거의 터져 나오지 않는다. 꼬리를 너무 질기지도, 또 퍼석해지지도 않게 적당히 잘 삶아내기 때문.

재료와 물의 양, 불의 세기,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데 이는 주인 정용식 씨의 노하우이기도 하다. 같은 재료라도 조리를 시켜 보면 100사람이 100가지 맛이 나는 것과 마찬가지. 물론 최상급 꼬리만을 가져다 쓰는 것도 기본적인 요건이다.

무엇보다 꼬리가 뼈의 마디를 단위로 잘라져 있다는 것도 남다르다. 보통 마디에 관계없이 소꼬리를 슬라이스 치듯 잘라놓다 보면 육즙이 달아나거나 살 맛이 떨어지기 일쑤. 꼬리뼈 마디를 고집하는 것 역시 맛을 위한 수고인 셈이다.

꼬리곰탕.

살을 다 발라 먹고 나서 다시 뚝배기를 보면 국물이 그리 많지 않다. 이 즈음 직원이 작은 뚝배기에 국수와 육수가 담긴 주전자를 들고 나타난다. 새로 뜨거운 국물을 붓고 국수 사리와 공기밥을 말아 식사하라는 메시지. 처음부터 끝까지 뜨겁게 고기와 국물을 맛보라는 배려에서다.

이 집은 매일 새벽부터 소꼬리 삶는 냄새가 새나온다. 점심때 다 팔고 나면 오후에 새로 또 끓이고 그러고도 모자라면 하루 장사를 마친다. 주방은 3대째 잇고 있는 정 씨의 아내가 도맡아서 맛을 책임진다.

변함없는 맛이 유지되는 것은 이 때문이라고. 남대문과 2005년 문을 연 여의도점은 정씨가 가족과 운영하고 2002년 오픈한 서소문점은 정씨의 여동생이 차렸다.

■ 메뉴

꼬리곰탕 1만5,000원, 꼬리토막 1만7,000원(꼬리곰탕과 같은데 고기 양만 조금 더 많다) 꼬리찜, 꼬리전골 등 안주류는 3만원부터.

■ 찾아가는 길

여의도점 KBS별관 뒤 센터빌딩 지하1층 (02)782-6193, 남대문점 753-3263, 서소문점 2130-2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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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박원식기자 park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