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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이 공존하는 인간의 야누스적 얼굴
■ '악인(惡人)'
요시다 슈이치 지음 /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발행 / 1만2,000원
살인사건 배경으로 인간의 순수와 악마적 본성을 추리소설 기법으로 그려



후쿠오카와 사가를 연결하는 263번 국도의 미쓰세 고개에서 젊은 보험설계사 이시바시 요시노가 목 졸린 시신으로 발견된다. 살해되던 날 밤, 요시노는 친구들에게 잘 생긴 부자 남자친구 마스오 게이고를 만난다고 거짓말을 하고 외출했다.

하지만 실제로 약속한 상대는 만남 사이트에서 알게 된 남자 시미즈 유이치였다. 경찰은 게이고가 며칠 전부터 행방불명이라는 것을 알아내고 지명수배하는 한편, 요시노가 만남 사이트를 통해 만났던 남자들을 상대로 조사를 시작한다.

살인사건이라는 자극적 소재로 시작, 범인을 찾아나가는 미스터리 소설 기법을 차용하고는 있지만 이 소설을 추리소설이라 할 수는 없다. 용의자는 게이고와 유이치 두 사람뿐이다.

요시노가 만났던 여러 다른 남자들도 나오지만 이들 중 혹시 진범이 있지 않을까, 하는 식으로 기대해선 곤란하다. 이 소설에는 독자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반전 같은 건 없다.

하루하루 평범하게 살아가는 소시민들과 젊은이들의 내면을 리얼하게 그려내면서 인간의 본성을 탐구하려는 작가적 욕심이 있을 뿐이다.

<퍼레이드> <랜드마크> 등으로 한국 젊은이들에게도 잘 알려진 작가 요시다 슈이치는 그동안 주로 도시 젊은이들의 공허한 내면과 무의미한 일상, 사랑과 외로움을 그려낸 소설들을 발표했다.

젊은이들의 잔잔한 로맨스를 그린 <동경만경>과 같은 작품이 TV 드라마로 방영되기도 했지만, 그의 소설의 주조를 이루는 정서는 짙은 외로움과 공허다.

2006년부터 아사히신문에 연재된 <악인>에서 그는 무대를 지방으로 옮긴다. 등장인물들은 목적 없는 삶을 이어가며 겉으로 허세나 부리는 속물이다. 그러나 내면은 너무나 유약하고 그러한 자신을 피해자라고 생각하며 합리화한다. 홀로 있는 주인공들의 인생을 교차시키는 장치인 ‘만남 사이트’는 의미 있는 상대를 현실에서 찾지 못하고 위태로운 만남을 추구하는 현대인들의 공허한 인간관계를 상징한다.

요시노는 살인사건의 피해자이지만 작가는 조금도 감싸려는 시선을 보이지 않는다. 단기대학을 나와 기껏해야 부유한 남자친구나 사귀어 결혼하는 게 목표인 요시노는 보험설계사를 하면서 푼돈을 모아 주말에는 명품 가방을 사며 뿌듯함을 느끼는 부류다.

게이고와는 단 한 번 술집에서 만난 뒤 문자 몇 번 주고 받은 게 전부이지만, 친구들에게는 테마파크에 함께 놀러 갈 것이라 거짓말을 해 부러움을 산다. 사건 당일, 요시노는 유이치와 만나기로 한 장소에서 게이고를 우연히 만나고, 이미 만나기로 약속했던 유이치를 야멸차게 내버린 채 게이고의 차에 타 버린다.

살인사건의 피해자와 가해자, 그리고 이들을 둘러싼 주변 인물들을 돌아가며 인터뷰하면서 마치 TV 다큐멘터리처럼 진행되던 소설은 중반 이후 마고메 미쓰요가 등장하면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다.

사가 시 교외의 대형 신사복 매장에서 근무하는 마쓰요는 역시 만남 사이트를 통해 문자를 주고 받았던 유이치와 직접 만난 후 곧바로 격렬한 사랑을 느낀다. 하지만 일생 동안 처음으로 찾아 온 사랑이 파국으로 치닫는 것은 예정된 운명.

자신을 어릴 때 내다 버린 어머니를 만나면서, 어머니가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오히려 ‘피해자’라고 생각하도록 원치도 않는 돈을 요구했던 유이치는 마찬가지로 최후의 순간, 자신을 버리고 미쓰요의 미래를 위해 미쓰요의 목을 조르기 시작한다.

이 책은 ‘악인’을 찾는 추리소설의 기법을 사용하지만 결말 부분에 다다르면 범인이야말로 등장인물 중 가장 이타적이며 가장 순수한 사람으로 드러난다. 그렇다면 악인은 이기적이고 속물적인 다른 등장인물인가? 꼭 그렇진 않다.

누구도 인간의 숙명적 외로움을 극복할 수 없기에 무의미하나마 새로운 관계를 꿈꾸고, 이기적인 생각이긴 하지만 악인이 되고 싶지는 않아서 피해자인 연한다. 인간이란 다 그런 것이다, 누구나 악인일 수도 선인일 수도 있다는 게 작가의 시선이다.

<저작권자 ⓒ 한국아이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입력시간 : 2008/01/11 14:59




최진주 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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