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대부'와 '아메리칸 갱스터'로 살펴본 미국 느와르 영화의 변화과정

한국에 조직폭력배 영화가 있다면 할리우드에는 마피아 영화가 있다.

홍콩의 경찰영화는 조직폭력배를 소탕하는 경찰에 방점을 찍지만 일본은 사무라이 정신을 계승한 야쿠자 영화로 승부한다. 한국의 조폭영화는 갱스터 영화나 느와르보다는 멜로나 코미디와 결합하여 르 혼합의 양념으로 용도 전환되었다.

올해 한국영화는 <열혈남아>와 <우아한 세계>와 같은 장르의 한계를 뛰어넘는 조폭 영화에 수확을 올리는 한해로 기억될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조폭의 인물에 대한 깊이있는 공감을 끌어내지 못하고 조직폭력배의 역사는 지워지고 일명 깍두기 머리로 대표되는 그들의 헤어스타일처럼 익숙한 이야기의 동어반복에 열중하고 있다.

즉, 조폭은 언제나 깍두기 머리에 검은 양복을 입고 언어는 전라도 사투리를 사용하며 일상어는 상스러운 욕설이 8할 이상을 차지하며 가방끈은 너나할 것 없이 짧아서 지식 수준이 낮아 무식함과 바보스러움이 트레이드 마크가 된 규격화된 조폭들이 한국영화 프레임을 부지런히 접수해왔다.

한국의 조직폭력배는 두 가지 업무에 집중한다. 하나는 조직 확장이며 다른 하나는 마약밀매다.

조직 확장은 조직과 주인공의 성장의 시나리오를 써내려가며 결국 한 구역을 평정하고 보스에 오르는 서사를 만든다. 마약밀매는 조직원들에게 자금줄이며 사활이 걸려있다. 미국 갱스터 영화에서 조직의 자금원은 한국에 비해 다양화 되어있다.

미국의 마피아는 세 가지 주된 수입원에 의존하여 조직을 유지한다. 그것은 바로 마약과 주류 밀매와 도박 그리고 매춘이다.

마약 밀매와 주류 밀매는 초창기 미국 마피아의 성장에 직접적으로 기여했다.

특히 금주법이 전국 33개 주에서 실시된 1920년대 이후 미국은 금욕적인 나라로 변화하기 보다는 전국 규모의 지하 유통망을 장악하려는 거대한 마피아 조직이 세워지기 시작했다. 금주법은 청교도 국가에 금욕과 절제를 가져오기보다 자본주의의 암흑세력의 기업화에 지대한 공헌을 한 셈이다.

금주법 실패에 대해 영화평론가이자 역사학자인 연동원은 ‘국내적으로 불법적인 양조업소와 주류 밀매점은 물론 밀주를 만들지도 모를 2천만이나 되는 가정집을 감시해야한다는 것과 국외적으로는 주류 유통을 막기 위해 1만 8천마일의 해안선과 수천 마일 이상의 국경선을 끊임없이 순찰해야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금주법 시행이 실패했다고 진단했다.

금주법의 실패는 표면적인 결과이며 이면에는 범죄 조직의 기업화로 귀결되어 암흑세계의 위계질서가 재편되는 지각변동을 가져왔던 것이다.

사회적 악으로 규정한 술과 마찬 가지로 마약도 규제의 법망이 강할수록 밀매조직의 수법도 지능화된다. 마약 밀매역시 금주법과 동일하게 규제의 강도가 강해질수록 강도에 비례하여 위험 수당이 부과되어 지하세계에서 고수익 사업으로 각광받게 될 것이며 범죄 조직의 기업화에 결정정인 공헌을 하게 될 것이다.

범죄영화는 이들을 주인공으로 하여 관객에게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하는 상업적 계산에서 양산될 수밖에 없다. 영화는 늘 규법과 법의 울타리 밖의 세계에 카메라가 향하게 한다는 기본 원칙을 져버린 적이 없다.

미국 갱스터 영화에서 주인공 직업이 주류 밀매나 마약밀매 아니면 도박장 관리로 정형화된 것은 이 같은 미국 역사와 제도에 직접적인 원인이 있다.

<대부>는 마약을 기반으로 조직이 거대화 되었으며 돈세탁과 위장 사업을 통해 양성화 하려다 실패하는 파국을 맞게 된다.

<아메리카 갱스터>는 암거래 되었던 저질 마약을 질 좋고 저렴한 제품으로 상품화하여 대량 유통에 성공한 범죄조직의 성장사이면서 동시에 사회적 타자가 어떻게 지하경제 먹이 사슬 속에서 목숨을 담보로 생존하는 가를 보여준 교과서적으로 보여준다.

이 영화는 원료 공급과 제품 제조와 유통까지 전 과정을 컨베이어 벨트에서 하나하나 부품이 조립되어 완제품을 생산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재미와 흥미를 유감없이 제공한다. 이 영화는 여러 측면에서 <대부>와 나란히 두고 볼 때 닮은꼴과 차이점을 관전하는 재미가 만만치 않는 텍스트다.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의 <대부>가 이탈리아 이민자들의 패밀리라면 리들리 스콧의 <아메리칸 갱스터>는 뉴욕 할렘가 출신의 흑인 조직이다.

<대부>는 마피아의 눈으로 마피아를 바라보면서 관객을 흡입하는데 집중하였지만 <아메리칸 갱스터>는 프랭크 루카스와 그를 잡으려는 형사 리치 로버츠의 캐릭터에 공을 들인다.

<대부>는 마피아의 문화사이며 마피아의 미시사를 역사책을 기술하는 태도로 만들었다. 같은 갱스터가 등장한 <아메리칸 갱스터>는 마약은 어디서 공급되며 어떻게 가공되어 누구의 손에서 밀매되며 마약 운반책들은 어떻게 소탕되는가에 대해 수사반장 드라마를 기술하는 성실한 작가의 시선으로 다뤄진다.

<대부>는 인물의 대사에 밑줄 긋고 싶고 인물의 사랑과 복수에 가슴이 저리며 관객의 감정을 뱀처럼 파고든다. 리들리 스콧은 갱스터의 보스인, 델젤 워싱턴이 연기한 프랭크 루카스의 연기에 카리스마를 심기위해 무진 애를 쓰지만 인간에 대한 깊이있는 성찰의 자리에 까지 관객을 끌고 오는 것에는 소홀하다.

갱스터의 문화와 인간적 매력을 뒤로 미루는 대신 그가 어떻게 품위있게 몰락하는가와 갱스터의 상도덕은 과연 존재할 수 있는가에 대해 포기하지 않고 집착한다.

프랭크는 마약밀매를 하였지만 대가족의 부양 의무와 마피아의 상도덕을 지키려는 개인적인 도덕성으로 인해 면죄부를 받게 된다.

프랭크의 면죄부에 대해 관객의 동의를 얻어내게 하는 것은 리들리 스콧의 프랭크에 대한 애정고백으로 가능한 일이다. 왜냐하면 느와르와 갱스터 영화에서 범죄조직의 조직원과 조직의 보스가 주인공일 경우 반드시 죽는다는 장르적 불문율이 있기 때문이다. 이 불문율에 의하면 마약밀래 조직의 보스인 프랭크는 반드시 죽어야한다.

범죄조직원의 죽음은 사회악을 행한 인물에 대한 도덕적 응징이다. 도덕적 응징은 관객의 도덕관에 눈높이를 맞추기 때문에 반드시 이루어져야한다. 즉 사회적 악을 행하는 자가 불행해지는 권선징악적 도덕관만 관객의 동의를 얻을 수 있으며 다수의 관객을 설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메리칸 갱스터>는 프랭크가 순식간에 죽음과 불행을 맞이하는 것을 지연하고 거절한다. 그것은 바로 프랭크의 가족 부양과 조직의 운영에 대한 나름의 도덕률이 관객의 공감과 지지를 얻어냈으므로 면죄부를 받게 된 것이다.

이 영화는 형사인 리츠 로버츠가 어떻게 블랙 매직을 제작한 범죄조직의 보스를 체포하느냐에서 출발하여 주인공인 프랭크의 운명이 어떻게 전개될 것이냐로 관심을 이동시킨다.

녹슬지 않은 리들리 스콧은 프랭크를 범죄조직과 커넥션을 유지한 부패 경찰 척결에 활용함으로서 영화적 타협을 시도한다. 관객은 프랭크의 비극적 파국보다 그의 사회에 공헌을 통한 속죄의 길에 손을 들어주게 될 것이다.

최근 미국영화는 사회의 악을 사회의 공헌의 도구로 변화시키는 영화적 교정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느와르 장르는 사회적 악의 응징에서 사회적 악의 재활용으로 주제가 변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이 영화는 구체적으로 입증해준다.

■ 문학산 약력

영화평론가. 영화학 박사. 현 세종대 강사, 영등위 영화등급 소위원, 한국영화학회 이사.저서 <10인의 한국영화 감독>, <예술영화는 없다><한국 단편영화의 이해>. 영화 <타임캡슐 : 서울 2006 가을>, <유학, 결혼 그러므로 섹스>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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