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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의 명반·명곡] 산울림 1집 아니 벌써 / 1977년 서라벌레코드
해맑은 동요 가사와 신나는 사운드 새로운 록음악에 대중은 열광했다
대마초 파동 칙칙한 세월 뚫고 신선한 코드로 가요계 평정



록그룹 산울림의 등장은 충격이었다. 맑은 감수성과 실험성이 듬뿍 배인 사운드는 신선했고 무엇보다 재미있었다. 앨범재킷도 가수 얼굴이 대문짝만하게 장식된 기존의 그것들과는 달랐다.

동네 애들이 담을 넘어와 후추가루, 고춧가루 통을 다 열어 놓고 난리를 치는 모습을 생각하며 김창완이 직접 그린 그림이었다. 타이틀 곡 ‘아니 벌써’를 처음 들었을 때 한바탕 웃음보가 터진 기억이 선명하다. 비웃음이 아니라 “어떻게 우리나라에 이런 재밌고 동요 같은 록음악이 나왔을까!”하는 놀라움 때문이었다.

3인조 형제 록그룹 산울림의 1집은 대마초 파동 망령들로 가득 찬 어둡고 칙칙했던 터널을 탈출하게 한 전혀 새로운 사운드였다. 그들이 등장한 1977년은 소위 대마초 파동의 된서리로 빚어진 2년여의 무주공산 시대를 지나 상큼한 캠퍼스 사운드 전성시대로 넘어가는 원년으로 기록된다.

그들의 음악은 저항적 이미지로 포장된 메시지의 성찬과는 거리가 멀었다. 신나는 사운드와 동요 같은 해맑고 순박한 가사들이었다. 그 낯선 경험은 그 어떤 강력한 이념과 메시지를 담은 이전의 음반보다 강력하게 당대의 대중에게 파고들었다.

“음악학원에 다닌 적도 없고, 대학 1학년 때 동네 고물상에서 클래식 기타 교본과 1,500원짜리 세고비아 통기타 2대를 사서 교본의 첫 장에 나오는 D코드를 잡으며 30분 동안 쳤어요.

그 소리가 참 아름다워 음악을 하게 되었지요.” 삼형제는 왕십리에 가서 계란 판을 사와 방에다 붙여 놓고 학교를 마치는 주말마다 모여 연주를 했다. 이들은 유명 외국그룹의 곡을 카피하기보다는, 100곡 정도를 스스로 작곡해 연주하는 놀라운 음악재능으로 미8군 무대에서 '다름이 없다'라는 뜻의 그룹 ‘무이(無異)’로 연주하기에 이르렀다.

역사적인 1977년 제 1회 MBC 대학가요제. 서울대 농대 록 그룹 샌드 페블스 6기가 ‘나 어떡해’로 대상을 수상했다. 5기 출신인 둘째 김창훈이 대상곡의 작곡자로 알려지면서 음반 제작 제안이 들어왔다. 직업 음악인이 될 생각은 없었지만 기념 앨범 한 장을 갖고 싶다는 마음에 응했다. 문제가 생겼다.

대학을 졸업한 리더 김창완의 은행 입사 시험 날짜와 레코딩 날짜가 겹쳤던 것.

“레코딩은 평생에 한번 있을 일 같아서 은행 시험을 포기했어요.” 처음 녹음 때 김창훈의 베이스는 국산 싸구려 기타였고 김창완은 필리핀 밴드가 버린 중고 기타라 평론가 이백천에게 악기를 빌려 재녹음을 했다. 눈감고도 연주할 만큼 연습이 되어 있어 녹음은 단 하루 만에 끝났다. 그룹명 ‘산울림’은 이흥주 사장이 지어 주었다.

이 앨범은 외국에서도 ‘산울림 류’로 오리지널리티를 인정받을 만큼 전례가 없는 사운드를 담았다. 당대의 히트곡 ‘아니 벌써’도 그렇지만, 짧은 가사로 그렇게 긴 노래가 가능함을 보여준 ‘문 좀 열어줘’는 세월의 간극이 무색한 시대를 앞선 음악이었다.

베토벤, 바흐, 슈베르트의 그것처럼 자유로운 낭만이 가득 찬 변형적이고 반복의 미학이 돋보인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꺼야’, 한국적 이미지가 선명한 ‘청자(아리랑)’, 애틋한 발라드 록 형식의 ‘그 얼굴 그 모습’ 또한 꼭 들어봐야 할 추천 곡들이다.

“처음 여기저기서 우리 노래가 나오고 음반가게에 우리판이 걸려있다는 게 적응하기 힘들었어요. 음악에 담겨 있는 것은 저의 내밀한 마음인데 그게 주렁주렁 정육점 고기처럼 매달려있다고 느껴져 창피했었지요.”

총 9곡을 담은 데뷔음반이 발표되자 대중은 ‘괴상한 음악이 나왔다’는 반응 속에 단 20일 만에 신드롬에 가까운 산울림 돌풍으로 이어졌다. 무려 40만장이 팔려 나간 이 음반은 한국 록의 신세대 개막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다.

1978년 문화체육관 첫 단독 콘서트공연. 공연장에서부터 덕수궁 앞까지 관객 행렬이 장사진을 이루었고 관객들이 던진 꽃으로 무대는 꽃밭이 되었다. 데뷔 1년 만에 산울림은 그해 TBC 가요대상 중창부문상을 수상하며 주류무대까지 평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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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08/01/16 16:18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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