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리히 폴라트, 알렉산더 융 외 지음 / 김태희 옮김 / 영림카디널 발행 / 1만5,000원

2008년 새해 벽두부터 ‘국제유가 100달러’ 뉴스가 전세계를 강타했다. 미국 서부텍사스중질유(WTI) 선물 가격이 배럴당 100달러까지 올랐다는 지극히 우울한 소식이었다.

지난해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에 따른 신용경색 여파가 올해까지 계속되며 미국 경기가 침체(recession)에 빠져들 가능성이 고조되고 있는 마당에 유가까지 급등, 인플레이션과 경기 후퇴가 겹치는 스태그플레이션 위험까지 우려하게 된 것이다.

미국인들의 소비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나라와 같은 수출 위주 제조업 국가들은 원료비 상승과 매출 부진의 이중고를 겪을 수밖에 없다.

유가 급등으로 에너지 수입국의 고통이 커지는 반면 원유를 수출하는 나라들의 목소리는 날이 갈수록 커져 가고 있다. 러시아의 국제적 위상은 에너지 가격 상승과 함께 최근 1, 2년 동안 급격히 높아졌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동유럽 국가에 미사일 방어(MD) 기지를 설치하려는 미국에 정면 도전했고, 코소보 독립 문제와 이란의 핵 개발 등 굵직한 국제 이슈에 대해 미국과 유럽 등에 반대되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푸틴 대통령의 목소리가 이처럼 커진 것은 러시아가 유럽에 대부분의 가스를 공급하고 있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이처럼 에너지가 경제뿐 아니라 안보와 정치에 미치는 중요성이 엄청나게 커졌다. 핵무기가 아니라 천연자원이 국제 역학관계를 좌우하게 된 것이다.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 소속 특파원과 편집자 등 저널리스트 20여명이 쓴 <자원전쟁>은 세계 각국이 자원을 놓고 벌이는 숨가쁜 전쟁의 현장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반미의 기수인 이란과 베네수엘라는 공공연히 자원을 무기화할 것이라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텍사스 석유재벌들을 정치적 기반으로 삼고 있어 집권 초반부터 교토의정서를 임의로 탈퇴하고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한 온실가스 배출 절감 정책을 배척해 왔지만, 이제서야 에너지가 안보와 직결돼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에너지 전쟁은 산유국들의 권위주의적, 독재적 지도자들에게 면죄부를 부여한다. 인권단체들이 이들 국가들의 국민들이 얼마나 비참한 상태인지 고발해도 강대국 정부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원을 얻기 위해 이들을 지원한다.

미국은 아제르바이잔에서 그루지야, 터키로 이어지는 송유관 건설을 위해 아제르바이잔의 유혈 통치자 일함 알리예프와 손잡았다. 2006년 12월 사망한 투르크메니스탄의 엽기 독재자 니야조프에게도 자원을 노린 선물 공세를 폈다.

니야조프는 전국에 자신의 동상을 세우는 것은 물론 자신의 어록집을 펴내고 이를 전국민에게 아침 저녁으로 읽도록 강요하는 등 개인숭배 정책을 폈지만, 석유와 가스, 광물자원 매장량이 각각 세계 5위 안에 드는 자원 부국이라는 점 때문에 세계 각국 정부로부터 추파를 받았다. 또다른 자원 부국 리비아에도 거의 모든 국가들이 환심을 사려고 몰려든다.

산유국 정부의 도덕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나라로 중국을 빼 놓을 수 없다. ‘세계의 공장’이라는 별명처럼 중국은 제조업 중심의 고도성장을 계속하면서 엄청난 양의 석유, 가스, 석탄을 소비하고 있다.

이 때문에 중국 정부는 아프리카의 독재자든 중동의 극단주의자든 아랑곳없이 자원을 확보하는 데만 열중하고 있다고 이 책은 비판한다. 일례로 다르푸르 학살과 관련한 국제사회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수단의 이슬람 정권을 감싸고 그곳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석유 공급 계약을 맺는 것을 들 수 있다.

사탕수수 밭에서 대체에너지인 에탄올을 생산하는 브라질은 얼마 전 바다에서 어마어마한 규모의 원유가 매장된 유전까지 발견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데다 대체에너지 개발 노력도 더디다. 자원전쟁 시대에 우리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고민을 안겨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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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주 기자 pariscom@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