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살·아동 성추행·테러 등 사랑과 자비 잃어버린 종교 비판■ 신은 위대하지 않다크리스토퍼 히친스 지음 / 김승욱 옮김 / 알마 발행 / 2만5,000원

요즘 미국 대선후보 경선 레이스를 관전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민주당에서는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과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이 접전을 벌이고, 공화당에서는 존 매케인 상원의원과 미트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 마이크 허커비 전 아칸소 주지사 등이 번갈아 주(州)별 경선에서 승리하며 혼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

성별도 인종도 지향하는 바도 다르지만 이들이 공통적으로 주장하고 있는 것이 하나 있다. 기독교 신자라는 점이다. 무슬림이라는 흑색선전에 시달리는 오바마는 자신이 20년 동안 같은 교회를 다녔다는 점을 항상 강조한다.

롬니는 몰몬교 신자이지만 가정적이고 종교적 삶을 살아간다며 전통적 가치를 중요시하는 기독교 신자들의 표를 노린다. 목사 출신인 허커비는 아예 “나의 러닝메이트는 예수 그리스도”라고까지 말하며 선거운동을 한다.

미국은 아직도 독실한 청교도들의 나라이다. 올해 대선에서 흑인과 여성 대통령은 나올 수 있어도 무신론자 대통령은 앞으로 몇 십 년이 지나도 나오기 힘들 것이다. 누구도 “나는 무신론자요” 하고 ‘커밍아웃’하기 어려운 분위기이다.

이런 미국에서 지난해 9월 말 무신론자들의 대회가 열렸다. 무신론자들이 강요된 침묵을 깨고 발언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국제무신론자협회 회원은 두 배로 증가했고, 미국 무신론자들의 모임인 종교자유재단은 “이제 벽장 속에서 나오라”고 무신론자들에게 외치기도 했다.

이 같은 움직임은 사실 영국 옥스퍼드대 출신 두 무신론자의 저서가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투적 무신론자’를 자처하는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을 비롯, 크리스토퍼 히친스의 <신은 위대하지 않다> 등 무신론 관련 서적이 지난해 뉴욕타임스와 아마존 선정 베스트셀러 순위에 수십주 연속 머무르는 등 화제가 됐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해 번역 출간된 <만들어진 신>이 베스트셀러가 됐다.

히친스의 <신은 위대하지 않다> 역시 기독교 등 유일신교의 문제점을 비판한 무신론 책이다.

그러나 실제 일어난 역사적 사건과 현재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는 종교 분쟁, 그리고 철학적 논증을 통해 종교의 부당성을 주장한다는 점에서 진화생물학이라는 과학에 기초해 기독교를 비판한 <만들어진 신>과는 접근 방법이 다르다.

사실 과학이나 논리 자체를 부정하는 신자들을 대상으로 과학의 성과를 들이대며 논쟁을 하는 것 자체가 허무한 일이다.

히친스의 어린 시절 선생님처럼 “하느님이 인간의 눈에 가장 편안하도록 나무와 풀의 색깔을 초록색으로 만드셨어요”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광합성이 어쩌고 진화가 어쩌고 말하는 게 통하겠느냐 말이다.

차라리 기독교인들이 역사적으로 저지른 대학살, 미국 가톨릭 성직자들의 아동 성추행, 신의 이름으로 각종 테러를 저지르는 이슬람 무장세력 등 실제 사례를 나열하는 것이 “신을 믿어야 착해지고 신을 위한 모든 행동은 정당화된다”는 얄팍한 주장을 논파하기에 적당하다.

9ㆍ11 테러 후 미국 사회에서 커다란 정치, 사회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복음주의 목사들(팻 로버트슨, 제리 폴웰)은 “동성애와 낙태를 묵인한 세속적인 사회에 신이 심판을 내렸다”고 말했다.

이런 사례들을 통해 히친스는 유일신교가 사랑과 자비의 종교가 아니라 배타적이고 심지어 파시즘적인 성격까지 있다고 주장한다.

무엇보다 이 책의 가장 큰 강점은 문체다. 저널리스트 특유의 쉽고 간결한 문체와 냉소적이지만 재치 있는 표현들 덕분에 다른 인문학 서적들과 달리 책이 술술 읽힌다.

물론 신자들은 이 책을 읽고 분노하거나 하나하나 반박하는 책을 낼지도 모른다. 하지만 히친스는 그들이 뭐라 하든 별 상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독실한 신자들에게 신을 버리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단지 신자들이 자신과 같은 무신론자들과 인류가 쌓아 온 위대한 지식들을 그대로 내버려두었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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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주 기자 pariscom@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