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적인 여성미 추구한 패션 거장변화된 트렌드 거부로 고전… 46년 디자이너 생활 아듀

조르지오 아르마니, 크리스찬 디오르, 샤넬 등과 함께 20세기를 대표하는 패션의 거장으로 꼽히는 발렌티노 가라바니(76)가 지난 주 파리에서 열린 2008 오트 쿠튀르(고급 맞춤복) 패션쇼를 끝으로 패션계를 떠났다.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발렌티노는 17살이 되던 해 오트 쿠튀르를 배우기 위해 파리로 유학을 떠났다. 1962년 이탈리아 플로렌스의 피티 궁(Pirri Palace)에서 데뷔 컬렉션을 선보인 이래 ‘이탈리아 오트 쿠튀르의 거장’이라 불리며 세계적인 디자이너로서 입지를 굳혔다.

그는 패션계의 아카데미상이라고 불리는 니만 마커스상과 프랑스의 최고훈장인 ‘레지옹 도뇌르’를 수상하는 등 숱한 상을 받으며 최고의 영예를 누렸다.

마지막 패션쇼는 ‘스완송(백조의 노래)’이라는 테마로 파리 로댕 갤러리에서 진행됐다. 패션쇼에서 발렌티노가 가장 선호하는 색과 디자인인 빨간색의 우아하고 정제된 롱드레스가 등장해 역시 발렌티노 답다는 평가를 받았다. 뿐만 아니라 크리스찬 디오르, 지방시, 장 폴 고띠에 등 이번 파리 오트 쿠튀르 쇼에 참가한 명품 패션하우스 중 발렌티노만이 유일하게 전통적인 스타일을 고수했다는 평도 나왔다.

지난해 로마에서 열린 데뷔 45주년 기념파티에서 은퇴의사를 밝히는 등 발렌티노의 은퇴는 예견돼 있었다. 하지만 막상 그의 고별에 많은 팬들이 아쉬워 하고 있다. 한번도 그가 만든 옷을 입어보지 못했거나 앞으로도 사실상 입어볼 기회가 없다고 해도 여자라면 한번쯤 발렌티노의 드레스를 입는 꿈을 꾸어봤을 법하다.

지난 주 내내 미국 뉴욕타임스를 비롯해 국내외 주요 언론들은 ‘살아있는 패션의 전설’로 불리는 발렌티노의 은퇴소식을 다룬 뉴스를 쏟아냈다.

그만큼 그의 은퇴는 여성들 개개인에게 커다란 아쉬움을 남길 뿐 아니라 패션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기 때문이다.

발렌티노 의상은 여성미를 극대화시킨 아름다운 실루엣과 꽃과 리본 등을 모티브로 한 로맨틱한 장식으로 전세계 상류층 여성들에게 사랑 받아 왔다.

전세계의 공주들과 그리스 선박재벌 니아르코스, 자동차 재벌 포드가의 여자들이 파티에서 입을 드레스를 사기 위해 그의 부띠끄를 찾아왔고, 오드리 햅번과 소피아 로렌과 같은 당대 최고의 여배우들도 발렌티노의 옷을 즐겨 입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발렌티노가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 계기는 재클린 케네디가 1968년 오나시스와의 결혼식에서 발렌티노의 드레스를 입으면서부터다. 레이스를 단 보디스(드레스 위에 입는 여성용 조끼)와 하늘하늘한 스커트로 만든 재클린의 하얀 드레스는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재클린과의 인연은 그 이전부터 시작됐다. 60년대 초반 한 파티에 참석했던 재클린이 패션잡지 보그의 에디터였던 콘수엘로 크리스피의 여동생이 입고 나온 발렌티노의 드레스를 무척 마음에 들어 한 것. 재클린은 디자이너의 이름을 알아낸 뒤 파티 다음날 패션쇼를 위해 뉴욕에 와 있었던 발렌티노에게 연락해 컬렉션을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재클린은 컬렉션을 보자마자 그 자리에서 드레스 여섯 벌을 주문했다고 한다.

60년대 패션 아이콘이었던 재클린은 우아하고 여성스러운 의상을 만든 발렌티노의 뮤즈였으며, 발렌티노와 각별한 우정을 쌓기도 했다. 재클린이 케네디의 장례식 때 입었던 옷도 발렌티노가 디자인한 것이었다.

■ 변화된 취향에 반대한 발렌티노

그러나 80~90년대를 거치면서 화려하고 여성스러운 발렌티노 디자인은 고전하기 시작했다. 시대가 변하면서 미니멀리즘이 주를 이루게 됐고, 여성의 사회진출이 늘면서 완벽한 여성스러움을 추구하기보다는 간편하고 실용적인 복장을 선호하는 경향이 두드러졌기 때문이다.

아르마니는 시대의 변화를 읽고 여성들에게 맞는 기성복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하이힐과 미니스커트 대신 납작한 단화에 남성양복의 딱딱한 어깨선을 부드럽게 수정한 여성용 바지정장을 선보여 사업적인 성공을 거뒀다.

루이뷔통과 프라다 등 대부분의 명품 브랜드들은 개성 있고, 변덕스러운 소비자 취향에 맞춰 변신을 시도했다.

다소 투박한 느낌의 가죽 소재에 모노그램 문양이 대부분이었던 루이뷔통 가방은 청바지 소재인 데님을 이용한 가방이나 루이뷔통의 상징인 모노그램을 팝 아트풍으로 재해석한 ‘무라카미 백’을 출시해 이미지 변신을 꾀해 매출신장에 성공했다.

프라다는 그래피티나 애니메이션을 전통적인 디자인과 혼합해 젊은 감각을 표현한 티셔츠 시리즈를 내놓고 있다.

크리스찬 디오르는 노화돼 가는 브랜드 이미지를 막기 위해 명품 브랜드 중 가장 먼저 이미지 혁신을 시도한 브랜드다. 엄숙한 분위기의 기존 핸드백을 하얗고 빨간색이 혼합된 꽃무니와 스팽글 장식의 발랄한 핸드백으로 변신시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체크무늬’와 ‘트렌치코트’로 확고한 브랜드 이미지를 쌓아온 버버리 역시 트렌드의 변화에 발맞추지 못해 한동안 고전을 면치 못했다. 소비자들에게 진부하게 인식됐기 때문이다. 이에 버버리는 가볍고 밝은 느낌의 ‘버버리 프록섬’ 라인을 개발하고 광고컨셉트와 모델을 발랄한 이미지로 바꿔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샤넬과 셀린느 등 모든 명품 브랜드들이 전통적인 명품 이미지에서 탈피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여기서 예외인 명품 브랜드는 발렌티노와 칼 라거펠트 뿐이다. 특히 발렌티노는 끝까지 전통을 고수했다. 빠르게 변하는 소비자 취향에 부응하기 위해 명품 하우스들이 매 시즌 새로운 스타일을 선보이며 트렌드를 이끌어가는 동안 발렌티노는 클래식한 여성의 아름다움에 반하는 모든 트렌드에 반대했다.

발렌티노는 “요즘 줄리아 로버츠나 카메론 디아즈 같은 여배우들은 조깅복을 입고 거리를 활보한다. 그들은 마치 매춘부나 노숙자처럼 보인다”며 편안한 차림을 즐기는 유명인들의 패션경향에 강한 불만을 나타내기도 했다.

이러한 그의 패션 보수성향에 많은 이들은 반감을 가지게 됐고, 그의 제품은 패션시장에서 점점 소외돼갔다.

발렌티노는 비즈니스 파트너 지안카를로 지아메티와 함께 몇 번의 파산위기를 넘겼고, 사업 소유권도 3번이나 바뀌는 부침을 겪어야 했다.

물론 현재도 할리우드 여배우들이 아카데미시상식장에서 가장 선호하는 의상이 발렌티노 드레스다. 줄리아 로버츠, 기네스 펠트로, 엘리자베스 할리 등이 발렌티노 드레스를 입고 레드카펫을 밟는다.

그러나 변화된 패션취향에 그는 결국 손을 들어야 했다. 완벽한 여성미를 추구하는 그의 스타일에 오늘날 여성들은 부담스러워 하고 있다. 발렌티노는 35세의 젊은 디자이너에게 하우스를 맡기고 떠났다. 그는 “은퇴 후 로마에 발렌티노 패션 박물관을 세울 계획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여성들에게 꿈의 옷’이었던 고상하고 아름다운 그의 옷들은 이제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게 될지 모르겠다.


전세화 기자 cand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