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가신 감독'태평천국의 난' 배경의 정통 무협영화… 독특한 멜로까지 섞어 재미 두배

한국과 중국의 영화학자들이 국제학술 세미나를 개최한 적이 있다. 세미나에 참석한 중국의 영화학자들은 이름난 저명한 분들이었다. 그들이 강조한 주장 하나가 각인되었다.

그것은 중국 영화의 국가 대표급 장르가 무협영화이며 무협영화는 홍콩 액션영화에서부터 미국영화의 액션 장면에 이르기 까지 전방위적으로 영향을 주었다는 주장이다.

무협영화는 중국의 대표 장르라는 점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세계의 모든 영화에 일정한 영향을 주었다는 주장은 분명 되새겨보게 한다.

무협 영화는 중국 무협소설로 거슬러가는 뿌리 깊은 계보학을 갖고 있다. 중국 정신의 발원지와 무협영화의 뿌리가 맞닿아있다는 사실은 무협영화에 대한 장르적 종주권을 주장하는 이유이다.

천안문 광장이 북경의 얼굴이라면 무협영화는 중국영화의 간판 장르다. 할리우드가 서부영화로 주종 장르를 채택했을 때 중국은 무협영화로 자국의 영화사를 써내려가고 있었다.

중국무협영화는 장철과 호금전과 서극과 이안으로 이어지는 명장의 계보도를 보유하고 있다.

중국 제 5세대 감독들이 칸, 베니스, 베를린 영화제에서 바쁘게 수상자 대열에 합류하여 서구에서 중국영화가 재조명되기 전에 이미 동아시아의 수많은 관객들은 <협녀>, <산중전기>, <황비홍>, <소호강호>, <동방불패> 등을 관람하기 위하여 극장문턱을 열심히 드나들고 있었다. 동아시아 관객들이 지지했던 무협영화는 할리우드의 대작과 자웅을 겨루며 시장의 헤게모니싸움을 펼친 적도 있다.

이렇듯 무협영화는 중국의 대표적인 장르이지만 동시에 동아시아 관객의 고정관객층을 우군으로 둔 영화이기도 했다.

■ 중국은 무협영화 종주국

무협영화는 무인의 무술과 협객의 기개가 화면을 장악하면서 관객의 지지를 이끌어냈다.

중국무협영화 전문가인 박희성에 의하면 ‘무협영화는 중국에서 우시아핀(武俠片 )으로 통용되고 있으며 홍콩에서는 고대 의상을 하고 칼을 사용하여 화려한 검술을 펼치는 우시아핀(武俠片)과 현대 의상으로 쿵푸 무술을 보여주는 쿵푸피엔(功夫片)’으로 세분화된다고 한다.

무협영화는 권선징악과 복수의 드라마로 각인되었지만 내면에는 무(武)의 사상과 협(俠)의 사상을 주제로 깔고 있다. 특히 협의 사상은 ‘남을 돕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거나 구속되지 않은 정신의 자유로움과 친구에게 충성을 다하는 태도’로 중국무협영화의 매력적인 주인공으로 중요한 인간의 덕목을 실천하여 인물에게 매력을 더해준다.

동아시아에서 무협소설과 무협영화가 대중영화 담론의 한 축을 자리한 것은 일종의 문화다. 지금의 한국 식탁의 대화는 어느 펀드에 가입하여 수익률을 얼마나 냈는지에 대한 정보교환이 주류다.

문화코드로 한 나라의 문화와 정체성을 드려다 볼 때 ‘프랑스는 식탁에서 오고가는 대사는 주로 섹스’라고 한다. 미국은 ‘섹스에는 그다지 전폭적인 관심을 보이지 않지만 재테크에는 밤을 새운다’고 한다. 저자의 주장대로 ‘프랑스에서 섹스가 우상이라면 미국에서는 돈이 종교’다.

■ 협객의 의협심은 영화 성공의 열쇠

영화로 문화 코드를 읽어보면 미국영화에서 영웅의 승리담이 돈만큼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지만 중국 무협영화에서는 영웅의 의협심이 영화적 성공의 열쇠가 된다.

무협영화는 주인공이 어떻게 행동하고 어떻게 죽으며 무엇을 위해 목숨을 내놓느냐가 중요하다.

미국영화에서는 주인공이 장애물을 어떻게 돌파하여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이루어내어 이를 지켜보는 관객들에게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게 만드는가에 목숨건다. 중국의 무협영화는 주인공이 자기단련을 통해 얼마나 깊은 정신의 세계로 접어들며 그 정신을 몸소 실천으로 지켜내느냐의 문제에 주목한다.

진가신의 <명장>은 태평천국의 난을 배경으로 하지만 난세에 자신의 뜻을 세우고 이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무협영화다. 낙방거사인 홍수전이 선교사에게 전해 받은 <권세양언>이라는 책을 읽고 나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첫째아들이며 자신은 하나님의 둘째 아들’이이라고 지칭하면서 난세에 중국일부를 접수하고 남경에 천경이라는 도읍을 정하고 황실을 위협하였던 태평천국의 난이 <명장>의 배경이다.

청나라 장군 출신 방청운(이연걸)과 도탄에 빠진 민생을 구제하기 위해 도적떼를 이끌던 조이호(유덕화)와 강오양(금성무)이 우연히 만나 의형제를 맺고 난세를 바로 잡기위해 청군에 입대한다.

그들은 뛰어난 무술과 일당 백의 용기와 타고난 의협심으로 무장하여 파죽지세로 남경을 함락시킨다. 이 영화는 젊은 영웅들이 <산군>을 이끌고 반란의 무리들을 진압하는 과정에만 시선을 두면 8할은 놓치고 만다.

자신과 주변 식솔의 호구지책을 위해 군에 입대하여 전투에 나서는 절박함과 “우리를 해치는 자 목숨으로 갚을 것이고 우리 중 형제를 해치는 자 목숨으로 갚을 것이다”라는 비장함이 난세의 영웅을 갈망하게 한다.

여기에 <첨밀밀>과 <금지옥엽>이라는 멜로 영화에 일가를 이룬 진가신 감독의 멜로가 개입해 들어가 금상첨화를 이룬다. 남성적 영웅 서사와 여성적 연애 담이 시선과 시선 사이에 스며들어 거대한 서사시를 역어간다.

하지만 여인 연생은 방청운과 조이호 사이에서 감정이 서성댄다. 연생은 남성 중심적 시각의 볼모다. 욕망의 주인으로서 남성과 욕망의 대상으로 전락한 여성의 문제는 대중영화의 동어반복이다. 지루하게 거듭된 지적을 반복하면 ‘여성은 남성 욕망의 대상으로 자리할 뿐 여성 스스로 욕망의 주체가 되지 못하는 수동적 인간으로 자리한다.’

이 영화에서 연생 역시 스스로의 주체적 감정의 선택권은 없으며 방청운과 조이호에 의해 간택되어질 뿐이다. 연생은 의형제의 균열 책임으로 강오양에게 희생된다. 희생양과 욕망의 대상으로서 여성은 무협영화의 비장함보다는 슬픔의 분사기가 된다.

자신의 권력 의지로 총독의 자리에 오른 방청운도 의형제의 룰을 지키기 위해 죽어간 조이호도 방청운을 처형하는 강오양도 무협영화에서 보여주는 협객의 숭고한 정신에서 미끌진다. 그들은 난세의 권력자들에 의해 조종되는 자동인형이자 꼭두각시로 전락한다.

무협영화가 분출하는 무와 협은 스펙터클과 용기백배 한 영웅의 행보에 묻히고 연애 감정에 희석되고 난세의 제단에 바쳐지는 희생양처럼 처연함이 가득하다.

무엇보다 이연걸과 유덕화 그리고 금성무로 이어지는 배우들의 연기가 의협심의 공백을 성공적으로 채워 넣어 완성도에 일조했다. 전투 장면의 스펙터클과 내공 있는 연기가 난세의 영웅들이의 비장함을 살려냈다. 하지만 연기와 스펙터클은 우수하나 무협영화의 정수에는 한발 못미치는 아쉬움은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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