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멸의 작가, 위대한 상상력서머셋 몸 지음 / 권정관 옮김 / 개마고원 발행 / 1만8,000원'전쟁과 평화' 등 고전 10권의 장단점 분석한 예리한 서평 눈길

‘책에 대한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대부분 작가나 편집자, 또는 정치인, 재계 인사 같은 유명인들이 “나는 이런 책들을 읽었다”며 추천하는 책들이다. 최근 한달 사이에 나온 책만 해도 <책의 제국 책의 언어>(조우석,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그 남자의 비블리오필리>(허연, 해냄) <아주 특별한 책들의 이력서>(릭 게코스키, 르네상스), <만보객 책 속을 거닐다>(장석주, 예담), <홍사장의 책읽기>(홍재화, 굿인포메이션) 등등 다섯 손가락으로 셀 수 없을 정도다.

<문예춘추> 기자 출신 다치바나 다카시(立花隆· 68)가 평생에 걸친 독서 편력기를 정리한 <피가 되고 살이 되는 500권, 피도 살도 안 되는 100권>(청어람미디어)은 그 중에서도 압권이다. 제목만 보아도 질려버릴 지경인데, 실제 책 속에는 600권보다 훨씬 많은 책이 등장한다.

<불멸의 작가, 위대한 상상력>도 이 같은 ‘책에 대한 책’ 중 하나다. 하지만 앞에 열거한 다른 책들에 비해 훨씬 많은 매력을 갖추고 있다. 우선 이 책은 제목처럼 거장이 남긴 불멸의 소설 10권을 다루고 있어, 듣도 보도 못한 책을 소개하는 책들에 비해 훨씬 재미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 등은 누구나 한번쯤 읽어봤을 것이다.

더 큰 장점은 고전이라고 칭송을 남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달과 6펜스> <인간의 굴레>의 작가로 잘 알려진 서머셋 몸은 각각의 소설에서 개연성이 떨어지는 부분이나 비현실적인 인물 설정, 지루하게 늘어지는 부분 등을 냉정하게 지적한다. 한편으로는 작품의 어느 부분이 특히 재미있으며, 인간 본성에 대한 놀라운 작가적 통찰력을 드러내는지 알려준다.

뿐만 아니라 거장의 작품이라도 장편소설을 읽을 때는 지나친 묘사나 지루한 부분은 과감히 건너뛰는 게 낫다고 말한다.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는 최고의 걸작 중 하나이지만 절반을 삭제해도 원본을 읽은 것이나 거의 다름없다고 말하고 있다.

작품을 이해를 돕기 위해 저자는 각 작품의 서평에 앞서 우선 작가의 생애를 들여다 본다. 놀랍게도 인류 최대의 유산을 남긴 저자들의 인생은 다른 사람에 비해 훨씬 고결하거나 기품이 넘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의 괴벽이나 낭비벽, 방탕함, 볼품없는 외양은 천재적인 이야기꾼의 기질과 함께 불멸의 명작을 만드는 데 일조했음이 드러난다.

<톰 존스>를 쓴 헨리 필딩은 자기 소설의 주인공처럼 방탕하게 살았다. 평소 인세 몇 푼만 쥐면 순식간에 탕진하고 친구들에게 빌붙는 일을 반복했고 당시 영국 귀족들이나 상류층이 경멸하는 하류 인생들과 어울렸지만 그 같은 경험이 오히려 그의 작품에는 자양분이 됐다.

가장 먼저 아내를, 그리고 처제를, 이어 여섯 자녀를 모두 하늘로 보내고 홀로 86세까지 살았던 괴팍한 성품의 아버지와, 유부녀와 사랑에 빠지고 알코올 중독으로 일찍 숨진 오빠를 둔 괴짜 소녀 에밀리 브론테의 생애를 읽으면 <폭풍의 언덕>의 주인공들이 어떻게 탄생했는지를 느낄 수 있다.

“홀더 부인이 돌아가시다니! 불쌍한 사람 같으니, 세상 사람들이 더 이상 험담을 늘어 놓지 않게 할 유일한 방법이 그 길뿐이었던 게야.” 제인 오스틴이 언니에게 보낸 편지 중 한 부분이다.

그의 재치는 사람들의 어리석음과 허세를 꿰뚫어 보는 능력과 함께 아직까지도 전세계인들에게 가장 사랑 받는 소설에서 진가를 발휘한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은 많은 사람들이 ‘신’을 다룬 책이라고 하지만 저자는 ‘악’을 다룬 책이라고 평한다.

작가는 ‘선’을 응축한 알료샤를 주인공으로 삼으려 했지만, 몸은 “신이 창조한 이 세계의 잔인성”에 분노하면서 “죄 없는 이가 고통을 받는다면 신은 악마이거나 존재하지 않거나 둘 중의 하나”라는 이반의 물음이 독자에게는 훨씬 강렬하게 다가온다는 점을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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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주 기자 pariscom@hk.co.kr